[운문록 중(中)] 수시대어(垂示代語) 73~105.
73.
화두[火頭 : 불을 관리하는 사람]를 만나자 말씀하셨다.
“그대가 고생을 하니 내 그대에게 보상을 하지. 이 주장자가 조사를 삼켰버렸다.”
대꾸가 없자 대신 말씀하셨다.
“쓸데없이 헛수고하지 마십시오.”
다시 말씀하셨다.
“재앙은 저 혼자 오는 법이 없구나.”
74.
스님께서 누더기를 입으면서 말씀하셨다.
“옛사람은 ‘옷을 걸치면 천지를 덮는다’ 하셨다.”
이어서 누더기를 들고 먼지를 털면서 말씀하셨다.
“북두(北斗)가 온통 깜깜해진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께서 너무 성급히 벗어나셨음을 알겠습니다.”
다시 말씀하셨다.
“그런 말 하지 말아라.”
75.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불법에서도 변해감[變易]이 있느냐?”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발우 · 가죽신 · 주장자 · 침통(針筒)입니다.”
76.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불법은 내 그대에게 묻는 것을 접어 두겠거니와 세제법(世諦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있느냐?”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있다고 말하면 제가 스님께 허물을 끼칠텐데요.”
77.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마누현정(摩㝹顯正)이 허물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무슨 허물이 있겠습니까?”
78.
시중하여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여, 천지를 다 덮고 눈대중으로 아주 조그마한 것[銖兩]까지도 짐작하면서 더러운 인연에 끄달리지 않는다. 이것을 어떻게 알아차리겠느냐?”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화살촉 한 발로 세 관문을 뚫습니다.”
79.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이리저리 오가며 나는 새와 달리는 짐승은 무엇 때문에 종류가 다르냐?”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을 분별하십니다.”
80.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발우와 바랑을 걸머지고 행각하면서도 불법이 있는 줄을 모르나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르는 법당의 치문(蚩吻)*은 불법이 있는 줄을 안다”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법당 안에서 향을 사르니 3문 밖에서 합장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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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문(蚩吻) : 「조정사원(祖庭事苑)」에는 현문(糸鳥 吻)으로 되어 있다. 한나라 때 백량전(栢梁殿)에 자주 화재가 나자 현어(糸鳥 魚)의 꼬리를 제물로 바치고 무술(巫術)을 베풀었는데 시대가 내려오면서 ‘현문’으로 바뀌어 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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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스님께서 언젠가는 주장자로 한 번 긋고 말씀하시기를, “티끌같이 많은 부처님이 모두 이 안에 있다. 완전히 알아차렸느냐?”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해가 동쪽에서 떴다가 밤에 서쪽으로 집니다.”
82.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어떤 것이 관문을 두드리는 한마디냐?”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치는 것입니다.[打].”
83.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근본에 미혹한 사람은 부딪치는 곳마다 모두 막히지만 근본을 깨달은 사람은 무엇 때문에 4대(四大)의 견해가 있느냐?”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익주(益州)의 부자(附子), 건주(建州)의 생강입니다.”
84.
스님께서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그대 여러분들은 문답하기를 좋아하는데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말이 있느냐?”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오십시오[來].”
85.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왔을 때 무엇 때문에 법손을 만나기 어려웠겠느냐?”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놓아주었기 때문입니다[放].”
86.
스님께서 어떤 일을 다 말하고 일어나면서 말씀하셨다.
“그대 여러분들은 홀연히 오늘밤 모두 깨달아서 아침에 일어나 칼을 가지고 내 머리를 베어라. 나는 할말 다했다.”
이어서 누더기를 집어들고 털면서 “어떠냐?” 하더니 대신 말씀하셨다.
“저는 스님을 저버리지 못하겠습니다.”
87.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입은 밥 먹는 일만 할 뿐이다. 말해보라. 옛사람이 백추를 잡고 불자를 세우며 눈썹을 날리고 입을 씰룩했던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느냐?”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위산(潙山)의 삿갓이 강서를 떠납니다”* 하더니 다시 “용두사미가 되었구나”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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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산 영우(潙山靈祐)스님이 백장(百丈)스님을 떠나 남쪽 위산으로 간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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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불법에서는 보리 · 열반 · 진여 · 해탈이 모두 군더더기 말이다. 말해보라. 세제(世諦)에서는 무엇을 군더더기 말이라 하는지” 하셨다.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시기를, “시끄러운 시장 속에서 하나요 둘이요 하는 소리입니다” 하더니 다시 “보리 · 열반이다” 하셨다.
89.
언젠가는 말씀하셨다.
“옛사람은 ‘눈에 보이는 족족 다 도이다’ 하였는데, 물 항아리를 집어든다면 어떤 것이 도이겠느냐?”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는 “아이고, 아이고” 하시더니 앞의 말에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이 무슨 마음[心行]이십니까?”
90.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볼 때에 자세히 봐서는 안된다”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장안(長安)이 즐겁긴 합니다만…”
91.
시중하여 말씀하시기를, “15일 이전은 그대에게 묻지 않겠다. 15일 후를 한마디 해보라”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나날이 좋은 날입니다.”
92.
상당하여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시기를,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군” 하더니 갑자기 법좌에서 내려와 대신 말씀하셨다.
“혼자가 아닙니다.”
93.
지공(誌公)의 게송을 보던 끝에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 ‘한밤중[子時]의 마음은 무생(無生)에 머무니 그것이 곧 생사일세’ 하였는데, 옛사람의 의도가 무엇이었겠느냐?”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아무리 여우같은 생각을 짜내봤자 안될 것입니다.”
94.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옛사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밝은 빛을 가지고 있는데 볼라치면 보이지 않고 깜깜하고 어두울 뿐이다’ 하였다. 어떤 것이 그 빛이겠느냐?”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시기를, “부엌 · 창고 · 3문(三門)입니다” 하더니 다시 말씀하셨다.
“좋은 일도 없느니만 못하다.”
95.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불법이 매우 많기는 하나 혀끝이 짧을 뿐이다” 하더니 대신 말씀하셨다.
“길군요.”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큰 도끼로 찍고 나서 손을 비빈다.”
96.
스님이 공양을 하다가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이제껏 총림에서 배웠던 말들을 모조리 떨어내야 한다. 말해보라. 내 밥이 무슨 맛인가.”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나물에 소금과 식초가 적게 들었습니다.”
97.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여러분, 행각을 하려면 반드시 격신구(隔身句)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격신구이냐?” 하더니 대신 말씀하셨다.
“초하루 31일입니다(음력 말일은 30일이므로 31일은 다음 달 초하루가 된다).”
98.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큰 지혜는 밝은 것이 아니며 진공(眞空)은 자취가 끊겼다. 이 도리를 밝힐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 있다면 나와서 말해 보아라”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헛것을 불러들이는구나[捏].”
99.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보통 사람의 허물은 어디에 있느냐? 나에게 집어내보라.”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시기를, “평지에 언덕을 쌓지 마십시오.” 하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들의 불법과 심신은 어디에 있느냐?”
100.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한마디만 들추었다 하면 천차만별하던 것이 똑같아진다. 이것이 무슨 말이겠느냐?” 하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如是我聞]…”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말하고 싶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
101.
개를 보더니 한 대 때리고는 “어째서 그 기둥[露柱 : 법당 앞 큰 돌기둥)을 물어뜯느냐?” 하시더니 다리로 개쫓는 시늉만 대신하고는 가버렸다.
102.
「화엄경」에 ‘반짝이는 금빛 구름 반짝이는 구름’이라 한 구절을 들고서 “말해보라, 나의 일상생활에도 이러한 경계가 있는가?” 하시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과연 스님은 못 당하겠습니다.”
103.
법당문을 열면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문에 들어가는 한마디이냐?”
어떤 스님이 “녜”하고 대답하자 “이 먹통아” 하셨다.
대꾸가 없자 대신 말씀하시기를, “얼굴을 가리고 나가거라” 하시고는 뒷말을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말씀드렸습니다.”
104.
하루는 대중이 모여 자리하자 말씀하시기를, “하나[一著子]를 잘못 알지 말라” 하시더니 바로 법좌에서 내려와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께서 거듭거듭 위해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
105.
언젠가는 말씀하시기를, “여러분, 행각을 하려면 반드시 들어가는 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누구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느냐? 나와서 말해보라” 하더니 대신 말씀하셨다.
“정말 스님을 저버리지는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