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록 하(下)] 감변(勘辨) 52~69.
52.
한 스님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하는 사람이냐?”
“지객(知客)입니다.”
“객이 찾아오면 무얼 가지고 대접하겠느냐?”
“집안의 형편을 따르겠습니다.”
“이것은 질그릇 주발과 대나무 젓가락이다. 객이 찾아오면 무엇을 가지고 대접하겠느냐?”
“스님의 자비에 감사합니다.”
“새우는 뛰어봤자 말통[斗]을 벗어나지 못한다.”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나에게 묻거라.”
그 스님이 그대로 물었다.
“무엇을 가지고 대접하시렵니까?”
스님은 별안간 후려치고는 처음 질문했던 곳을 대신해서도 대뜸 후려쳤다. 그리고는 “밥 한 그릇에 차 두 사발이로다” 하더니 다시 “하늘의 달에 혹해서 구경한다” 하셨다.
53.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너는 어디로 출가하였느냐?”
“조주(趙州)의 법손입니다.”
“스승은 어디 사람이냐?”
대신 말씀하셨다.
“밥이나 먹는 늙은 스님입니다.”
54.
스님이 물방아를 보고서 그 대들보에 써 놓았다.
“영원히 썩지 않고자 하나 뒤에는 무너지리라.”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영원히 썩지 않는다 했는데 어째서 도리어 물에 꺾이느냐?”
대꾸가 없자 대신 말씀하셨다.
“일 하나를 겪지 않고서는 지혜 하나가 늘어나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씀하셨다.
“요순(堯舜)같은 임금도 교화에는 고개 숙였다.”
55.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고 어떻게 말하겠느냐?”
대신 말씀하셨다.
“남산에서 북을 치니 북산에서 춤을 춥니다.”
56.
공양 시간에 한 스님에게 물었다.
“여기에 불조를 초월할 만한 말이 있느냐?”
“있지요.”
“어디로 갔느냐?”
대꾸가 없자 대신 말씀하셨다.
“신라국으로 갔습니다”
다시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제가 진실하지 못할까 염려하시는군요.”
그리고는 앞말에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밥 먹을 때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57.
스님께서 시두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큰 톱을 끌고가다가 부러뜨렸느냐?”
“그런 일 없습니다.”
“없으면 그만두지.”
대신 “피차 그렇지 않습니까?” 하더니 다시 “평지(平地)에서 였습니다”라 하고, 다시 “스님께서 소임자[頭首]들을 위해 고생하시는 줄을 알겠습니다”라고 하였다.
58.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남악에서 옵니다.”
“여기 나는 한번도 복잡한 말을 납자들에게 해준 적이 없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그 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가자 스님은 “가거라” 하셨다.
대신 “제가 멀리서 왔다는 점을 생각해주십시오” 하더니 말씀하셨다.
“오늘은 빛깔이 없다.”
59.
한 스님이 마침 스님 앞에 서 있었는데 주장자를 한 번 내려쳤다. 그 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스님께서는 손을 펴면서 말씀하셨다.
“돈을 가져 오너라.”
대꾸가 없자 대신 말씀하셨다.
“머리를 돌리지 않으면 어떻게 뒷일을 알겠습니까?”
다시 말씀하셨다.
“얼굴에 침을 확 뱉을 뿐이다.”
60.
부엌에 들어간 차에 채두(菜頭 : 반찬 담당)에게 물었다.
“남비에 가지가 얼마나 있느냐?”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나에게 물어라. 내 말해 주리라.”
채두가 그대로 질문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다 소비하지 못하겠구나.”
대신 “한 통 남았습니다” 하더니 다시 뒷 말에 대신하여 “그렇습니다” 하셨다.
61.
운력하고 절 입구로 돌아오면서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피곤하면 어떤 얼굴이 되느냐?”
“스님께서는 아실텐데요.”
“나는 모른다.”
이번에는 그 스님이 물었다.
“피곤하면 어떤 얼굴이 됩니까?”
스님께서는 주장자를 잡더니 말씀하셨다.
“긴 것을 만나면 길어지고 짧은 것을 만나면 짧아진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군요. 피곤이 그렇다는 말인지, 스님이 그렇다는 말인지를.”
“나도 네가 자상하다는 것을 안다.”
대꾸가 없자 대신 말씀하셨다.
“어떻게 알겠습니까?”
또 앞의 말에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늙은이, 젊은이, 노란색, 흰색”
62.
스님께서 밥 짓는 스님[飯頭]에게 물었다.
“부처님은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이다. 너는 매일 밥을 짓는데, 한 주걱에 석가부처님이 몇이더냐?”
대꾸가 없자 대신 말씀하셨다.
“중 하나에 쌀 한 되입니다.”
다시 말씀하셨다.
“오늘 공양은 비교적 고운 편이구나.”
63.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남화탑(南華塔)에서 옵니다.”
“조사께선 무슨 말씀이라도 하시더냐?”
“하셨습니다.”
“잘못 전해서는 안된다.”
“스님께선 말을 들어 주십시오.”
“내 너에게 말하겠는데 하나라 해도 안되고 둘이라 해도 옳지 않다.”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께선 너무 엄청난 명령을 내리시는군요.”
64.
마두(馬頭 : 방아 찧는 것을 관리하는 스님)에게 물었다.
“사람이 징[羅]을 치느냐, 징이 사람을 치느냐?”
대꾸가 없자 대신 말씀하셨다.
“요즘 들어서는 국수를 많이 먹었습니다.”
다시 말씀하셨다.
“손님이 찾아오거든 반드시 살펴보고 도둑이 오거든 꼭 두들겨야 한다.”
65.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남화탑에서 옵니다.”
“조사를 뵈었느냐?”
“뵈어서 무엇 하려구요?”
“그렇다면 너는 거기 가서 무엇을 하였느냐?”
“무슨 허물이 있습니까?”
“간 것부터가 이미 허물이 없는데 본들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
대꾸가 없자 대신 말씀하셨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비를 알겠습니까?”
66.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재(齋)에 갔다 옵니다.”
“시주받은 돈을 가져 오너라.”
“스님께서는 조금이라도 부족한 게 무엇인지요?”
“너는 또 조금이라도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
“조금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면 재에 가서 무엇을 했느냐?”
대꾸가 없자 대신 말씀하셨다.
“가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씀하셨다.
“흙덩이를 쫓는군.”
67.
한 스님에게 물었다.
“너는 북쪽지방 사람이냐?”
“그렇습니다.”
스님이 한 번 후려쳤는데도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나에게 묻거라.”
이번에는 그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선 어디 사람입니까?”
스님께서 다시 한 번 후려쳤는데 대꾸가 없자 앞에 했던 질문에 대신하여 한 번 후려치고, 다시 뒷말에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인의(仁義)의 도(道) 가운데 있습니다.”
68.
어떤 스님이 죽을 먹은 뒤에 찾아와 뵙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죽은 먹었느냐?”
“다 먹었습니다.”
“법당 앞 기둥도 씹느냐?”
“씹습니다.”
“살펴보니 너를 딱딱하게 하는구나.”
대꾸가 없자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께선 사람이 진실하지 못할까 염려한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다시 말씀하셨다.
“누구를 딱딱하게 하는데?”
69.
문을 열자마자 한 스님이 불쑥 들어오니 스님께서 갑자기 멱살을 잡고 말씀하셨다.
“무슨 일이냐?”
“무슨 일입니까?”
스님께서 한 번 후려쳤는데도 대구가 없자 대신 말씀하셨다.
“자기는 물러나면서 다른 사람을 나아가게 함은 손님과 주인간의 예의를 간직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멱살 잡았던 곳을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이 여우같은 망상꾸러기 얼굴에 침을 퉤 뱉는다.”
다시 대신 말씀하셨다.
“저 때문에 그렇게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