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운문록 雲門錄

[운문록 하(下)] 감변(勘辨) 106~120.

쪽빛마루 2015. 5. 25. 06:37

106.

 스님이 서울에 들어가 배알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큰 다리에 이르자 절 앞에서 차를 끓여 스님을 맞이하였다.

 스님이 다과를 드는데 한 스님이 옆에 모시고 서 있었다. 스님은 같이 따라갔던 세 명의 스님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너희들이 서울에선 먹을 수가 없던 것이다.”

 그리고는 과자 한 조각을 한 스님에게 주었더니 그 스님은 받아 가지고 가버렸다.

 또 한 스님에게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주지 않겠다.”

 그 스님이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저쪽에도 있지.”

 그 스님이 또 대꾸가 없자 다른 스님이 나오더니 말하였다.

 “저는 오늘도 스님을 따라 왔습니다. 한 쪽 나누어 주실는지요?”

 “에[嗄].”

 “잘못했습니다. 스님의 기분을 거슬렸군요.”

 “너에게 침을 뱉지는 못하겠다.”

 대꾸가 없자 앞의 말에 대신 말씀하셨다.

 “과자가 모자라서 두 사람이 한 쪽을 나눴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다시 말씀하셨다.

 “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스님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뒷말에 대신하였다.

 “제가 확실히 옳습니다.”

 

107.

 스님께서 산으로 돌아와 대중들의 참례를 받고 나서 말씀하셨다.

 “내가 산을 떠난 지 67일이 되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

 대중이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스님께서는 서울 갔다 오셨으면서 선물[信物]도 없군요.”

 다시 말씀하셨다.

 “스님께선 서울에서 국수 많이 잡수셨겠네요.”

 

108.

 스님 몇이 찾아와 참례하자 물었다.

 “무엇하러 왔느냐?”

 “땔감 나르려고 왔습니다.”

 “북쪽으로 돌아가거라. 노승을 저버려선 안된다.”

 대꾸가 없자 다시 말씀하셨다.

 “이리 좀 와라. 바보 셋이 함께 지혜로운 이 하나를 만들면 어떻겠느냐?”

 대신 말하였다.

 “한 뙤기 땅[一畝地]이지요.”

 앞의 말을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일 하나를 겪지 않으면 지혜 하나가 늘지 못합니다.”

 

109.

 공양하면서 말씀하셨다.

 “오늘 밥을 먹으면 천화(遷化)하지 못하리라. 죽 늘어놓고 창의(唱衣)를 하겠느냐?”

 대꾸가 없자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나에게 묻거라.”

 한 스님이 그대로 물었다.

 “무엇을 가지고 창의하지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느 세월에 더듬어나 보겠느냐?”

 다시 말씀하셨다.

 “내 너희들에게 변변찮은 말을 해주리니 다시 묻도록 하라.”

 그 스님이 다시 묻자 스님께서 두 손으로 주발을 들고 말씀하셨다.

 “이는 정주(定州)의 차그릇이다. 한 번 부르면 30푼[文]이다.”

 앞의 말을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백전(百錢)은 족히 되겠습니다.”

 

110.

 공양하면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말해보라. 사람이 밥을 먹느냐, 밥이 사람을 먹느냐?”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나에게 묻거라. 말해 주리라.”

 그 스님이 그대로 질문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대답에 감사한다.”

 앞의 말을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공양 때가 아니라면 이런 말을 하기 어렵겠지요.”

 

111.

 한 스님이 스님을 따라 절 문 밖으로 나가던 중 스님께서 물었다.

 “옛사람이 말씀하시기를, ‘큰 작용이 눈앞에 나타날 때 일정한 법칙을 갖지 않는다’ 하였는데 무엇이 일정한 법칙을 갖지 않는 것이냐?”

 대꾸가 없자 다시 말씀하셨다.

 “네가 나에게 묻거라. 말해 주리라.”

 그 스님이 질문하자 스님께서는 소리를 질렀다.

 “석가노인이 왔다.”

 그 스님이 이번에도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는 드디어 몇 걸음을 가더니 주장자로 소나무를 한 번 치고는 말씀하셨다.

 “어험, 어험.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네가 그 모양이니 어느 세월에 알겠느냐?”

 앞의 말을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꽃 많은 나무가 열매 없는 나무를 조롱합니다.”

 뒷말을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112.

 한 스님이 쌀을 헤아리는 것을 보더니 물었다.

 “광주리 안에 달마가 얼마나 있느냐?”

 대꾸가 없자 말씀하셨다.

 “네가 나에게 묻거라.”

 스님이 그대로 질문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말[斗]로 헤아려선 끝이 없다.

 대신 말씀하셨다.

 “일 하나 겪으면 지혜가 하나씩 늘어납니다.”

 또 대신 말하였다.

 “쌀광주리를 팔짝 뛰어넘고 가버렸습니다.”

 

113.

 원두(園頭)가 스님께 차를 권하자 말씀하셨다.

 “네가 차를 달인다면 나는 너에게 보답할 것이 있다.”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나에게 묻거라. 내 말해 주리라.”

 원두스님이 말하였다.

 “스님께서 보답해 주십시오.”

 “물은 많이 하고 쌀은 적게 해라.”

 대신 말씀하셨다.

 “소 한 마리를 얻고 말 한 마리를 되돌려주시는군요.”

 다시 말씀하셨다.

 “금자차(金子茶)는 한 근에 600전(錢)이다.

 

114.

 스님께서 공양 때 찐 떡을 들어올리며 말씀하셨다.

 “나는 이것을 북쪽 사람에게만 공양하겠다. 나희들은 아무도 갖지 못한다.”

 그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째서 저는 가질 수 없는지요?”

 “사람 바보 만드는군.”

 대신 말씀하셨다.

 “저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앞의 말을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두 가지 색깔로 된 주사위로군요.”

 

115.

 한 스님에게 물었다.

 “옛사람이 말씀하시기를, ‘반드시 한마디 말끝에 깨달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어떠하냐?”

 “반드시 한마디 말끝에 깨달아야만 합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콧구멍 속에서 나에게 대꾸하느냐?”

 “저의 어떤 점이 콧구멍 속에서 대꾸하는 것입니까?”

 “꿈에서인들 보겠느냐?”

 대신 말씀하셨다.

 “저는 처음을 조심할 터이니 스님께선 끝을 지키십시오.”

 다시 “남가일몽(南柯一夢)이로다” 하더니 “조금만 먹어라” 하고는 또 말씀하셨다.

 “계문(戒文)을 조금도 어기지 않아야 한다.”

 

116.

 스님께서 시자에게 물었다.

 “손님이 찾아오면 무엇을 가지고 대접하려느냐?”

 대꾸가 없자 대신 말하였다.

 “스님께서 주장자가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117.

 설날 큰방에서 차를 달여 마시면서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나한재(羅漢齋)를 열면 하늘에 태어날 복을 얻는다. 밥은 먹었느냐?”

 대꾸가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나에게 묻거라. 내 말해 주리라.”

 그 스님은 질문하였다.

 “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이제까지는 편안하질 못하더니 지금에야 똥을 누웠다.”

 앞의 말을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시주뿐만 아니라 저도 복을 받습니다.”

 

118.

 북소리를 듣더니 한 스님에게 물었다.

 “북은 누구를 위해서 치느냐?”

 말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나에게 묻거라.”

 그 스님이 그대로 질문을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북을 치는 것은 3군(三軍)을 위해서지 너희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대신 말하였다.

 “땔감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119.

 스님이 앉아 있는데 어떤 스님이 불쑥 올라왔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하려구?”

 “법문을 더 해주십사 합니다.”

 “그래, 무슨 의심이 있느냐?”

 “제가 전번에 스님께 ‘일숙각이 땔감을 날랐습니까, 땔감이 일숙각을 날랐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스님께서는 의자를 세 번 치더니 말씀하셨다.

 “너는 어떻게 이해하느냐?”

 “모두가 그때그때 상황따라서입니다.”

 스님께서 이에 주먹을 걷어부치면서 말씀하셨다.

 “한판 붙어 보겠느냐?”

 대꾸가 없었다. 다음날 그 스님이 다시 올라왔을 때, 마침 스님은 세수를 하던 참이었다. 스님은 물그릇을 그에게 건네주면서 말씀하셨다.

 “부엌으로 보내라.”

 그 스님이 보내고 돌아오자 스님은 그가 오는 것을 보더니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그 스님은 말하였다.

 “와서 법문을 청했다가 도리어 그릇만 하나 얻었네.”

 

120.

 한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조용하기만 한 한마디냐?”

 뉘라서 감히 나서겠습니까?“

 “네가 나에게 묻거라.”

 그 스님이 그대로 질문을 하자 스님은 주장자로 땅을 한번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