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마루 2015. 5. 25. 06:49

청하는 글[請疏]

 

 

  제자인 소주방어사 겸 방알지휘사 권지군주사 은청광록대부 검교병부상서 어사대부상주국(韶州防禦使兼防遏指揮使權知軍州事銀靑光祿大夫檢校兵部尙書御史大夫上柱國) 하희범(何希範)과 온 군의관료들 모두는 영수선원(靈樹禪院)의 제일좌(第一座)이신 문언(文偃)스님께 청하옵니다.

  바라옵건대 황제폐하를 위해 개당설법(開堂說法)을 하시어 위로 황제의 장수를 빌어주소서.

  가만히 생각하오니 가발(伽跋)존자가 서쪽에서 찾아와 대승의 가르침을 일으키고, 달마스님이 동쪽에 와서 심인(心印)의 종지를 전하였으니 법의 횃불을 태워 어둠을 밝히고 자비의 배를 저어 생사에 빠진 중생을 구제하였습니다.

  스님을 생각하오니 지혜는 구슬같이 영롱한 빛을 뿜고 마음은 거울같이 맑은 빛을 냅니다. 성품은 바다같이 깊고 깊어 헤아림으로는 알아내지 못하며, 말씀의 샘물은 매우 심오하여 지혜로도 알지 못하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일상문(一相門)을 닦아 6진(六塵) 경계를 아득히 벗어나셨습니다.

  영수선원은 아득한 옛날부터 도인들의 영험한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며 경치는 더없이 아름답습니다. 지성(知聖)대사가 돌아가시면서 부촉의 말씀을 은밀히 전하시고 황제께서 납시어 영광되게도 은혜로운 명을 내려주시면서부터 모든 총림의 요지(要地)가 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스님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귀의하였고 신도들은 마음을 다해 신앙하고 있습니다.

  저 희범은 외람되게도 나라의 명으로 임시 유명한 지방을 다스리게 되었다가 다행히도 종장(宗匠)의 가풍을 만났습니다. 청하옵건대 방장실에 앉으시어 중생을 널리 구제하여 이익되게 하시고 이제 혼자만 깨쳐야겠다는 마음을 품지 마소서. 그리하여 숲에 사는 스님네들 보살펴주시는 일을 줄이시고 구름처럼 모인 대중들을 맞이해 주소서. 저희들의 바람을 굽어 살펴주시리라 생각하고 글을 적어 아뢰옵니다.

 

  스님이 돌아가신 지 17년째 되던 해, 웅무군절도추관(雄武軍節度推官)인 원소장(院紹莊)의 꿈에 나타났다.

  꿈에 스님이 불자로 소장을 부르더니 말씀하셨다.

  수화궁사(秀華宮使)에게 부탁하노니 이탁(李托)을 특별히 보내어 조정에 아뢰고 탑을 열어 달라고 청하라. 내가 오랫동안 탑 속에 갇혀 있었으니 잠시 밖으로 나왔으면 한다.”

  그때 이탁은 소양감(韶陽監)으로 재직하며 여러 사찰을 짓고 수리하였는데, 때마침 원소장의 말을 듣고는 그 꿈을 임금에게 아뢰었다. 드디어 임금의 명을 받들어 소주자사인 양연악(梁延鄂)이 이탁과 함께 운문산의 탑을 열어달라고 하였다. 열어보니 그 몸[眞身]은 과연 옛모습 그대로였고 수염과 머리카락은 마치 산 사람 같았다.

  이 사실을 자세히 글로 적어 아뢰었더니, 다시 이탁에게 명하여 몸[眞身]을 대궐로 모셔오도록 하였다. 그리고는 궐안에 한 달이 넘도록 모셔두고 공양을 하고서야 탑으로 되돌려보냈다. 이어서 절 이름을 ‘대각사(大覺寺)’라 고치고 ‘대자운광진홍명선사(大慈雲匡眞弘明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