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주 황벽산에서 남긴 법어 1~9.
균주 황벽산에서 남긴 법어
[筠州黃檗山法語]
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해는 동쪽에서 떠오르고 달은 서쪽으로 진다. 하나가 뜨면 하나가 짐을 예로부터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모두 알고 모두 보아왔다.
비로자나부처는 끝도 없고 한계도 없어 매일매일 천차만별로 인연따라 자유로운데,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보지 못하느냐? 아마도 마음에 헤아림이 남아 있고 견해가 인과에 머물러서 성인이라는 생각을 넘고 모든 자취를 초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념연기(一念緣起)함이 남이 아님[無生]을 안다면 해와 달이 누리를 비추듯 하고 하늘과 땅이 만물을 덮어주고 실어주듯 하겠지만 알지 못한다면 지옥귀신이 발칵 성을 내어 그대들의 머리를 일격에 부숴놓으리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오늘은 5월 1일, 중하(仲夏 : 음력5월)로 들어서는 아침이다. 여러 지사(知事 : 절의 관리를 맡은 여러 소임)와 수좌(首座)와 대중은 도체(導體)가 안락하여 하루밤을 긴 선상 위에서 다리를 폈다 오므렸다 하여 남을 개의치 않았다. 날이 밝아 일어나서는 호떡과 대궁밥과 떡을 야금야금 씹으면서 배 부르면 쉰다.
바로 이런 때라면 옛도 아니고 지금도 아니며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으니 귀신도 그의 자취를 찾지 못하고 만법이 그의 짝이 되질 못하며 땅이 싣지 못하고 하늘도 덮지 못한다. 그렇긴 하나 눈 속에는 눈동자가 있어야 하며, 살 속에는 피가 흘러야 한다. 눈에 눈동자가 없다면 눈먼 사람과 무엇이 다르며, 살 속에 피가 흐르지 않는다면 죽은 사람과 무엇이 다르랴. 30년 뒤에 나를 괴이하게 여기는 잘못을 범하지 말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3.
상당하여 대중이 모이자마자 악! 하고 할을 한 번 하고는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아무 일도 없는데 할은 해서 무엇하겠느냐?"
또 할을 한 번 하더니 말씀하셨다.
"한 번 할하고 두 번 할한 뒤엔 어떠하겠느냐?"
불자로 공중에 한 획을 긋더니 말씀하셨다.
"백장(百丈)스님이 '귀가 먹었던 일'은 그런대로 그렇다 하겠으나 삼성(三聖)스님의 '눈먼 나귀'는 사람을 근심하게 하는구나."
선상을 치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4.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화장세계(華藏世界)에 끝도 없이 계속 유람하고 다니다가 연등불(然燈佛)의 처소에 이르러선 한 법도 없다. 그러므로 무(無) 속에도 유(有)이며 덕산스님의 몽둥이는 별똥이 튀듯 하니 유 속의 무이다. 임제스님의 할은 우뢰가 진동하듯 하며 귀 먹은 듯 벙어리인 듯하다. 천지를 곽 채우고 아픔과 가려움을 아는 이 몇이나 있을까.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도는 닦음[修]을 빌리지 않으니 더럽히지만 않으면 될 뿐이며 선(禪)은 배움을 빌리지 않으니 마음 쉼[息心]을 중히 여긴다. 마음이 쉬었기 때문에 마음마다 생각이 없고 닦지 않기 때문에 걸음마다 도량이다. 생각이 없으면 벗어날 3계도 없고 닦지 않으면 구해야 할 보리도 없다. 벗어날 것도 구할 것도 없다는 것은 오히려 교종[敎乘]에서 하는 말이니, 납승이라면 어떻게 해야겠느냐?"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머리 없는 보살은 부질없고 합장하고 다리 없는 금강역사는 아무렇게나 주먹을 폈다 쥐는구나[菩薩無頭空合掌 金剛無脚謾張拳]."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는 어떤 때는
큰 길로 가고 어떤 때에는 잡초 속으로 달린다.
그대들
납자여!
날카로운 송곳
끝을 보지 말지니,
뚫어야할
귀퉁이를
잃어버린다.
듣지도
못했더냐.
옛날에
말하기를,
'열어놓고 막지를
못하면 도적을 불러다가 집을 파산 시키며,
끊어야
하는데 끊지
않으면 도리어 그 난리를 만난다'라고 했던
말을."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7.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헤아림은 부질없이 힘만 허비하는 일이고 벽돌을 갈아
거울을 만듦은 쓸데없는 헛공부이다.
보지도
못하였느냐.
높고 높은 산
위의 구름은 스스로 걷히고 스스로 퍼지는데 무슨 가깝고
멀고가 있으며,
깊고 깊은 산골물은 굽은 길 곧은 길
만나는대로 흘러가면서 여기저기 가리지 않음을.
중생이 매일
작용함은 구름같고 물같으니 구름과 물도 그러한데 사람만 그렇지
않구나.
그러함을
체득했다면 3계 윤회가 어느
곳에서
일어나겠느냐."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금란가사(金
袈裟)가 전해지고
나서도 아난은 오히려 의심을 품었고
찰간(刹竿)대를
거꾸러뜨리지 않아서 가섭이 수고를 면치 못하였다.*
여러
스님들이여!
말해
보라.
어떤 찰간대를
거꾸러뜨렸는지를.
초학자든
만학이든 모두 헤아리지 못함은 평소에 총림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열이면 열,
모두가
흐리멍텅해서이니 성인의 시대와 간격이 멀어
사람들에게 게으름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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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난이 가섭에게 묻되 "세존께서 금란가사를 전해주신 이외에 무슨 법을 전해주셨습니까?" 하니 가섭이 아난을 불렀다. 아난이 대답하니 가섭이 "문 밖에 서있는 깃대[刹竿]를 쓰러뜨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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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고을에 가느라고 절에서 나갔다가 되돌아와서 상당하더니 말씀하셨다.
"흐르는 물이 산에서 내려감은 그리움이 있어서가 아니며, 조각 구름이 동구로 되돌아오나 본래 무심하다. 대나뭇집 · 띳집은 누가 주인일까. 달 밝은 밤중에 늙은 원숭이가 읊조리는구나."
선상을 치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