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下] 1. 상 당 7~10.
7. 앉은 채로 왕을 맞이하다.
스님께서 언젠가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처음 약산(藥山)에 도착하여 한 구절을 듣고 나서는 지금까지도 넉넉히 배가 부르다.”
스님께서 방안에서 좌선하고 있을 때, 소임자가 대왕이 뵈러 왔음을 알렸다. 대왕이 절을 다 마치자 주변사람들이 물었다.
“나라의 왕이 오셨는데 무엇 때문에 일어나지 않으십니까?”
“그대는 여기 나를 모르는가? 하급 사람이 오면 절 문까지 나가서 맞이하고, 중급 사람이 오면 선상을 내려가서 맞이하고, 상급 사람이 오면 선상에 앉은 채로 맞소. 대왕을 중급이나 하급 사람이라 부를 수 없으니, 대왕을 욕되게 할까 두렵소.”
대왕은 매우 기뻐하며 스님께 진부(鎭府)에 오셔서 공양 받으실 것을 두 번 세 번 청하였다. 스님께서 주원외(周員外 : 員外는 정원외에 두는 관직명)에게 물었다.
“그대는 꿈에라도 임제스님을 보았는가?”
원외가 주먹을 세우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
“이쪽에서 봅니다.”
“어느 곳에서 임제스님을 보았는가?”
원외가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물었다.
“주원외는 어디서 왔는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습니다.”
“날아왔다 날아가는 늙은 까마귀가 아니겠느냐.”
8. 조주의 관문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 ‘시비가 있기만 하면 어지러히 본 마음을 잃는다.’고 하였는데, 여기에 대답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
나중에 어떤 스님이 낙포(洛浦)스님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낙포스님은 이를 딱딱 부딪쳤다. 또 운거(雲居)스님에게 말하자, 운거스님은 “뭘 그럴 것까지 있겠는가!” 하였다. 그 스님이 스님께 말씀드리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남방에서는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다.”
“이에 대해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무어라고 하려는 차에 그 스님이 옆 스님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스님은 밥을 다 먹었는데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스님께서는 거기서 그만두었다.
스님께서 「금강경」을 보고 있을 때 한 스님이 문득 물었다.
“‘모든 부처님과 그분들의 위 없는 깨달음이 모두 이 경으로부터 나왔다.’고 하였는데, 무엇이 이 경입니까?”
“금강반야바라밀경, 나는 이와같이 들었다. 한때에 부처님께서 사위국에 계셨다.․․․”
“그게 아닙니다.”
“내 스스로 경의 뜻을 어쩌지 못한다.”
한 스님이 하직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밖에 나갔을 때 갑자기 어떤 사람이 조주를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그저 보았다고만 해야 되겠지요.”
“나는 한 마리 나귀인데 그대는 어떻게 보느냐!”
그 스님은 말이 없었다.
스님께서 새로 온 납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남방에서 왔습니다.”
“조주의 관문이 있음을 아느냐?”
“관문을 상관하지 않는 자가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스님께서는 “이 소금 암거래하는 놈아!” 하고 꾸짖으시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형제들이여! 조주의 관문은 통과하기 어렵다.”
그러자 그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주의 관문입니까?”
“돌다리다.”
한 스님이 설봉에서 왔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여기에 머물지 말라. 나의 이 곳은 다만 피난하는 곳일 뿐, 불법은 모두가 남방에 있다.”
“불법에 어찌 남북이 있겠습니까?”
“네가 아무리 설봉에서 왔다 하더라도 판대기를 진 놈[擔板漢]일 뿐이다.”
“저 쪽의 일은 어떻습니까?”
“너는 왜 어젯밤 자리에 오줌을 쌌느냐?”
“깨치고 난 뒤에는 어떻습니까?”
“어! 똥까지 쌌군.”
9. 설봉스님에게 괭이를 갖다 주어라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여기 내게는 굴에서 나온 사자도 있고 굴 속에 들어있는 사자도 있는데, 다만 사자 새끼를 얻기가 어렵다.”
그 때 한 스님이 손가락을 퉁겨서 응수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게 뭐냐?”
“사자 새끼입니다.”
“내가 사자 새끼라고 부른 것도 벌서 허물인데, 너는 한술 더 떠 깡충깡충 뛰기까지 하는구나.”
스님께서 새로 온 납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설봉에서 왔습니다.”
“설봉은 무슨 법문으로 납자를 가르치더냐?”
“스님께서는 늘 말씀하시기를 ‘온 시방세계가 사문의 외눈[一隻眼]인데, 너희들은 어디다 똥을 싸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대가 돌아가는 편에 괭이를 갖다 주어라.”
스님께서 옷을 대중에게 나눠 주니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모두 다 주고 나면 무얼 입으십니까?”
스님께서 “호주자(湖州子 : 호주에서 온 스님)야!” 하고 불렀다.
그 스님이 “예!”하고 대답하자 스님께서 말하였다.
“무얼 입겠느냐?”
10. 경론도 불법은 아니다.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세계가 있기 전에도 이 성품은 있었고, 세계가 무너질 때라도 이 성품은 무너지지 않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이 성품입니까?”
“5온, 4대이다.”
“이것 역시 무너지니 무엇이 이 성품입니까?”
“4대, 5온이다.”
정주(定州)에서 한 좌주(座主 : 강사)가 오자 스님께서 물었다.
“무슨 공부[業]를 익혔는가?”
“경, 율, 론을 듣지 않고도 강의할 수 있습니다.”
스님께서 손을 들어 보이면서 “이것도 강의할 수 있는가?” 하니 좌주가 어리둥절하며 무슨 말인지 몰라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설령 네가 듣지 않고 강의할 수 있다 하여도 그저 경론이나 강의하는 놈일 뿐이니 불법이라면 아직 멀었다.”
“스님께서 지금 하신 말씀은 불법이 아닙니까?”
“설령 그대가 묻고 답할 수 있다 하더라도 모두 경론에 속하는 것이요, 불법은 아직 아니다.”
좌주는 아무 말이 없었다.
스님께서 한 행자에게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북쪽 절[北院]에서 왔습니다.”
“그 절은 이 절과 비교해서 어떠냐?”
행자가 아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는 곁에 서 있는 한 스님에게 대신 대답하게 하니 그 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그 절에서 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웃고 나서 다시 문원사미에게 대신 말하게 하자, 문원이 말하였다.
“행자는 도리어 스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한 좌주에게 물었다.
“무슨 공부(業)를 해왔는가?”
“유마경을 강의합니다.”
“유마경에서 ‘걸음마다 도량이다’라고 하였는데 좌주는 어느 곳에 있는가?”
좌주가 아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전익(全益)을 시켜 그 대신 말하게 하니 전익이 말하였다.
“다만 이 한 물음으로 도량을 알 수 있습니까?”
“그대의 몸은 도량 안에 있는데, 마음은 어느 곳에 있느냐? 어서 말해 보아라.”
“스님께서는 저의 마음을 찾으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그럼 이렇게 묻고 대답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심소(心所)안에 있지 않다. 법(法)이란 눈, 귀, 코, 혀, 몸, 뜻을 초월하여 아는 것이다.”
“이미 심소(心數:心所)에 있지 않다면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찾으십니까?”
“그대가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은 눈, 귀, 코, 혀, 몸, 뜻을 초월해서도 알지 못하는데, 무엇을 말할 수 없습니까?”
“내 침이나 핥아 먹어라.”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법화경을 본 적이 있느냐?”
“보았습니다.”
“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누더기를 입고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절[阿練若]이란 이름을 빌려 세상 사람들을 속인다’고 하였는데, 그대는 어떻게 이해하느냐?”
그 스님이 절을 하려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누더기를 입고 왔느냐?”
“입고 왔습니다.”
“나를 속이지 말라.”
“어떻게 해야 속이지 않겠습니까?”
“스스로 살 궁리를 해야지, 내 말을 따르지 말라.”
스님께서 한 좌주에게 물었다.
“익힌 공부(業)가 무엇인가?”
“유마경을 강의합니다.”
“누가 유마힐의 할아비인가?”
“저올시다.”
“무엇 때문에 도리어 자손을 위하여 말을 전하는가?”
좌주는 아무 대꾸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