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설봉록雪峰錄

설봉선사어록 서

쪽빛마루 2015. 6. 10. 20:48

설봉선사어록 서(雪峰禪師語錄序)

 

 

 옛 큰스님들이 남긴 말씀 중에서도 설봉스님 같은 분의 말씀은 흔히 듣기가 몹시 어렵다. 그 가운데에도 특히 조주스님이 긍정하지 않았던 기연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을 의아하게 하고 속아넘어가게 한다. 그러니 여기서 몸을 돌려 한 쪽 눈[一隻眼]을 갖추기 못한 사람이라면 좀이 쓸다 남은 책을 바라보면서 끊일 줄 모르는 맛을 쉽게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득산 임거사(得山林居士)는 도에 들어가는 인연으로 꿈속에서 설봉스님의 수기를 받았는데, 운문(雲門 : 湛然圓澄, 1561 ~ 1626)스승께서 이를 신기하게 여기셨다. 예전에 한산 · 습득스님만이 동시에 꿈 이야기를 한 줄 알았더니 거사도 기이한 꿈속 몸의 인연으로 차마 설봉스님의 법맥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남은 책 조각을 찾아다니다가 현사스님이 쓰신 원고를 얻어서 나의 스승에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그것이 설봉어록으로 간행되지 못해서 안타깝게 여겨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운수납자에게서 어록의 전부를 손에 넣게 되어 다시없는 기쁨을 맛보았고, 편지를 보내서 판각하게 하니 바로 그때가 이 산승이 서선사(西禪寺)에 도착한 날이다.

 그리하여 마침 설봉어록에 관해 물어 보았더니 거사는 뛸듯이 기뻐하며 무슨 인연이 이렇게도 신기한가라고 하였다. 이어 그가 전날 겪은 이야기와 꿈속에서 본 광경을 남김없이 말해 주며 나에게 머리말을 청하였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거사가 꿈속에서 설봉산에 들어가서 뵈었던 설봉스님은 붉은 거사를 입은 나한이었는데, 거사가 몸소 설봉산을 찾아갔을 때는 어찌하여 그 얼굴은 분명 같았으나 옷은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을까? 여기서 만약에 이 주지승의 설파가 없었다면 얼굴을 마주보면서도 의심이 생기는 꼴을 면하기 어려웠을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어록도 비록 옛 판을 지금 다시 만든 것이기는 하나 눈 안에 들어오면 한바탕 새로워지는 것이다 이번 판에도 이에 얽힌 한 번의 이야기를 별도로 붙여 주어야 비슷하게나마 설봉스님을 친견했다 하리라.

 돌이켜보니 거사가 꿈을 꾼 당시에 나의 스승에게 해몽해 달라 하였는데, 그 꿈이 오늘 이 산승에게서 헤쳐지게 된 것이 내게는 기쁜 일이다.

 

무인년(1638), 부처님 성도일

전조동정종(傳曹洞正宗) 석우 명방(石雨明方)이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