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상당법어(上堂法語) 3.
3.
상당하자 한 스님이 물었다.
“조계산(曺계山)의 한 길은 온 나라사람이 들어 알고 있습니다마는 설봉산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의사의 문하에는 병귀(病鬼)가 많다.”
한 스님이 물었다.
“고금에 서로 전해온 일에 무슨 할말이 더 있습니까?”
“그대 스스로 보라.”
“그래도 보고 듣는 것이 없을 수야 있겠습니까?”
“귀머거리가 될까봐 근심만 해서는 안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임금과 신하의 도가 딱 맞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나는 이제껏 늙은 오랑캐(달마)의 살림살이를 챙겨본 적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눈앞에 있는 경계를 건드리지 말고 스님께서는 한마디 해 주십시오.”
“보아하니 너 역시 스스로 헤아릴 재량이 없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이 안에도 말을 꺼낼 곳이 없습니까?”
“너의 두 조각 입술을 닫았으면 좋겠다.
한 스님이 물었다.
“세 치 혓바닥을 빌리지도 않고 또 말 없는 경지를 묻지도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너는 죄지은 놈이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세간을 벗어나 몸에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될 수가 있느냐?”
“어찌 선지식이 세상에 나오는 일이 없겠습니까?”
“저 놈을 끌어내라.”
한 스님이 물었다.
“길을 가다가 만길 절벽 끝에 이르렀을 때는 어떻게 더 발걸음을 내딛습니까?”
“움직이면 목숨을 잃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활시위로 다리를 만들고 그 위를 건너갈 수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몸이 함정에 빠진다.”
한 스님이 물었다.
“화살촉* 을 씹을 때는 어떻게 됩니까?”
“볼에 구멍이 날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지극히 존귀한 분은 어떻게 해야 뵐 수 있습니까?”
“아무 일 없는 사람이라도 역시 뵐 수가 없다.”
“당장에 몸이 없어진다면 뵐 수 있습니까?”
“분수에 따라 뵙는 것은 무방하다.”
“ 뵙고 나서는 어떻게 합니까?”
“외벌[胡蜂]은 옛 집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이어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이렇게 이곳에 와서 모두 나를 친견하겠다고들 하지만, 그래 어떻게 친견하겠다는 말인가? 친견하려 하면 벌써 멀어지는 것이다.”
한 스님이 이때 질문을 하려는데 스님께서 갑자기 불자로 그의 입을 때리며 “알겠느냐?” 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그 어떤 것과도 이웃이 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너의 귀가 시끄러울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입을 아끼지 마시고 문답을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위기를 만나면 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3세 모든 부처는 풀 속에 있는 사람들이고, 10경(十經)과 5론(五論)이란 당나귀를 매어두는 말뚝과 같은 것이다. 또한 「화엄경」80권은 쑥대머리로 주먹밥을 먹으면서 한 말이며, 12분교란 개구리의 입속에서 나온 말이다. 알겠느냐? 그러므로 말하노니, 지금 여기 백천명 가운데 나를 기꺼이 당나귀나 낙타 같은 동물이 되게 할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에게 공양을 올린다 해서 무슨 허물이 있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의 뜻과 경전의 뜻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그대는 행각하면서 무슨 일을 했소?”
한 스님이 물었다.
“향상일로(向上一路)는 어떻습니까?”
“입에 쇠고량을 채우는 일도 유분수지.”
그리고는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3세 모든 부처도 이곳에 와서는 머리를 내밀 수 없고, 대장경도 이곳에 와서는 한 글자도 나타낼 수가 없고, 천하 큰스님의 입도 이곳에 와서는 산산히 부숴지고 말 것이다. 알겠느냐?
여러분이 진실로 밝아질 수 있다면 남에게 혹하는 일을 면하게 될 것이고, 설혹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남에게 의심받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기도 밝히지 못하였거든 절대 헛되이 시간만 낭비해서는 안된다. 또 여러 큰스님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턱 아래서 한마디나 반마디를 주워듣고 그것을 기억하여 가슴에 담아 두었다가 형제들을 그르쳐서는 안된다.
나는 말하노니, 이 세 치 혓바닥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 내가 평소 스님네들에게 ‘이것이 무엇인가?’ 라고 하면 그들은 어지럽게 무어라고 떠들어대지만 이런 무리들이 당나귀해가 된들 내 말뜻을 알아차릴 수 있겠느냐? 그렇다면 내가 그대들에게 물어 보겠다. 여러 큰스님들이 그대들에게 무엇을 설법해 준 일이 있던가, 여러분들에게 보여 준 법이 있던가? 아니면 그대들과 선(禪)도리를 묻고 답한 적이 있던가?
여러분은 반드시 몸소 체험하여 진실을 보기 바란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얼굴을 마주보는 일입니까?”
“천리(千里)도 멀다고 할 수는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이곳의 일입니까?”
“이것이 무엇인가?”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신라에나 가 보아라.”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강물 옆에서 목말라 죽는 사람이 무수히 많고 밥통 옆에서 주리는 사람이 항하수 모래알처럼 많으니, 이러한 예는 비단 하나 둘에 그치는 일이 아니다.
그대들이 만약에 6근으로 헤아리며 머뭇거리고 있거든 절실히 어서 땅에 발을 붙여야 한다.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저곳에서 여름을 보내면서 얼마간의 눈물, 콧물들이나 주워 모아놓고는 ‘나는 내 일생의 일을 다 마쳤다’ 라고 하여서는 안된다. 그저 추려내고 외우고 하는 것은 모두가 지식으로 배우고 남에게 의지하여 통달하려는 것이니, 이런 사름들을 나는 ‘청개구리옷을 입고 사는 나그네’ 또는 ‘검은 소가 썩은 물 속에 누워 있는 꼴’ 이라고 부른다 알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여섯 나라[六國]에서 보물을 비치면 왕은 그것을 받습니까?”
“늙은 오랑캐(달마)의 가풍은 시골 주막집과는 다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세상에 너같이 멍청한 사람은 없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조사의 뜻과 경전의 뜻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우뢰소리가 땅을 진동하는데도 방안에서는 듣지 못하는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큰 인물의 모습입니까?”
“우러러보는 것도 유분수지.”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말이든 꺼냈다 하면 다 잘못이라 하니 잘못되지 않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눈은 어디를 보고 있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유마거사와 문수보살은 무슨 일을 이야기했습니까?”
“논리에 떨어졌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고해(苦海)바다에 배가 없으니 어떻게 건너야 합니까?”
“풀 한 포기도 빌릴 수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일단 떨어버린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그대의 목숨을 위해서는 절대로 다시 만들지 말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푸른 하늘에 밝은 해가 떴는데 잠꼬대는 해서 무엇을 하려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폭포가 쏟아지는 바위 앞에서 어찌하여 썩은 나무토막은 멈추지 않고 떠내려갑니까?”
“위험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여러 사람이 사금(沙金)을 일어내는데 누가 금을 얻는 사람입니까?”
“그대는 얻지 못한다.”
“맑은 강물을 다 퍼냈는데 금은 어디로 갔습니까?”
“물이 흘러오면 도랑을 이룬다.”
한 스님이 물었다.
“고요하여 아무 것도 붙잡을 것이 없을 때는 어떻습니까?”
“그렇다 해도 아직은 병들어 있다.”
“그곳에서 몸을 돌린 다음에는 어떻게 됩니까?”
“뱃사공은 양주(楊州)로 내려가고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동산 양개스님과 도오 원지(道吾圓智)스님은 늘 여기에서 간절하였다고 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나는 아홉 번이나 동산(洞山)에 올랐다.”
그 스님이 막 무슨 말을 하려는데 스님께서 “이 중을 끌어내라!” 하셨다.
한 스님이“옛사람이 말씀하시기를 ……”하고 물으려는데 스님께서는 벌렁 누워버렸다가 한참 후에야 일어나서 “조금 전에 무슨 말을 물었느냐?” 하셨다. 그 스님이 다시 “옛사람이 말씀하시기를……” 하는데 스님께서 “헛살다 죽을 놈아!”하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아직 모양[文彩]이 분명하지 않을 때도 주인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만약 주인이 있게 되면 곧 그것이 모양이다.”
“바뀌는 일도 있습니까?”
“그대 스스로 보아라.”
한 스님이 물었다.
“화살 끝에 칼날이 보일 때는 어떻게 합니까?”
“고수는 표적을 맞추지 않는다.”
“눈을 씻고 보아도 표적이 없을 대는 어떻게 합니까?”
“형편 따라 고수가 되는 것도 무방하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법복 속의 일입니까?”
“법복 속에서 찾아 가져라.”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이 스님이 정주(定州)에서 뼈 한 구를 메고 이곳에 왔다’라고 하셨다는데 제가 무슨 물건을 메고 왔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분명히 그대에게 말하지 않았더냐?”
한 스님이 물었다.
“허공에도 말뚝을 박는 일이 있습니까?”
“나는 허공이 말뚝이라고 말하겠다.”
한 스님이 스님의 회하를 떠나면서 말하였다.
“제가 다른 곳에 갔을때, 그곳 큰스님이 불쑥 저에게 묻기를‘설봉스님은 무슨 법문으로 학인들을 지도하시더냐?’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말씀드리면 되겠습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내 법문을 이해하느냐?”
“모릅니다.”
“칠통이나 되어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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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의 ‘鏇’은 ‘鏃’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