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법 어 14~29.
14.
스님이 문도들을 거느리고 남방으로 행각을 떠났다. 그때 황열반(黃涅槃)스님이 오는 것을 미리알고 지팡이에 몸을 기대 앞길에 마중을 나가 스님을 맞이하였는데
소계(蘇谿)에서 서로 만나게 되었다.
이에 스님께서 열반스님에게 물으셨다.
"이제 어디서 오는 길입니까?"
"벽지암(辟支巖)에서 오는 길입니다."
"그 암자에도 주인이 있습니까?'
열반스님이 대나무 지팡이로 스님의 가마를 두드리니 스님이 마침내 가마에서 나와서로 인사를 하였다.
열반스님이 "옛 낭군님! 안녕하십니까?" 라고 하니 스님께서 갑자기 일어나 남자 절[丈夫拜]을 하자 열반스님은 여자 절[女人拜]로 답하였다. 이에 스님께서 "이제보니 여자였잖아!" 라고 하자 열반스님은 다시 두 번 절하고 대나무 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스님의 가마를 오른편으로 세바퀴 돌았다.
이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3계 안에 사는 사람이고 스님은 3계 밖에 사는 사람이니 스님이 앞서 가는 것이 좋겠소, 나는 뒤에 따라 가리다."
마침내 열반스님이 먼저 돌아가고 스님이 뒤따라와서 함께 낭산사(囊山寺)로 가서 며칠을 쉬었다. 열반스님은 스님을 모시면서 공양하였고, 따라온 납자들에게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이 대접하였다.
15.
아호 지부(鵝湖智孚)스님이 암자에 살 때 임금의 사신이 한 사람 찾아와 불자를 보고 물었다.
"저는 이것을 보면 불자(拂子)라고 부르는데 암주께서는 무엇이라 부르십니까?"
"불자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세상에 큰 스님들이 삼대[麻] 같고 좁쌀같이 많이 나와 계시는데 암주는 어째서 행각을 떠나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암주는 길을떠나 설봉에 이르렀다. 스님께서 암주가 오는 것을 보고 물으셨다.
"스님은 어찌해서 다시 이곳에 왔소?"
"어느 사신이 와서 불법을 묻는데 그를 당할 수가 없기에 다시 왔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
암주가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가 한 번 나에게 물어보아라."
암주가 전의 이야기대로 물으니 스님께서는 "불자다"라고 대답하셨다.
16.
고산 신안(鼓山神晏)국사가 처음 스님을 찾아뵈었을 때였다. 신안 국사가 막 문에 들어서자 스님께서 그의 멱살을 잡고 "이것이 무엇인가?" 하니 신안국사는 얼음이 풀리듯 깨닫고는 손을 들고 흔들며 춤을 추었다.
이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무슨 도리를 지었는가?"
"무슨 도리라는 것이 있겠습니까?"
스님께서는 마침내 그를 어루만지며 인가해 주셨다.
17.
하루는 스님께서 혜릉(慧稜)스님에게 말씀하셨다.
“지난날 위산(潙山)스님께서 앙산(仰山)스님에게 ‘예로부터 모든 성인들은 어디로 갔는가?’라고 묻자 ‘어떤 사람은 하늘세계에 있고 어떤 사람은 인간세계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는 기록을 보았는데, 그대가 한번 말해 보아라. 앙산스님의 말은 무슨 뜻인가?”
"만약 모든 성인이 나왔다가 사라진 곳[出沒處]을 묻는다면 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대는 도무지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저는 다만 틀렸다[錯]라고만 대답하겠습니다."
"그것은 그대가 틀리지 않았음을 뜻한다."
"틀렸다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18.
하루는 스님께서 혜전(慧全)스님에게 물었다.
“그대의 깨달아 들어가는 일[得入處]은 어떻게 되었느냐?”
“스님과의 거래는 다 끝났습니다.
”어디서 나와 거래를 하였느냐?“
“어디 갔다 오셨습니까?”
“그대의 깨달아 들어가는 일은 어떻게 되었느냐니까?”
이에 혜전스님이 말이 없자 스님께서 때렸다.
19.
혜릉스님이 물었다.
“예로부터 성인들께서 전해주신 한 가닥 길을 스님께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스님께서 한참을 잠자코 계시자 혜릉스님이 큰 절을 하고 물러났다. 이때 스님께서 미소를 지으셨다.
20.
한 스님이 물었다.
“생사의 큰 일을 어떻게 합니까?”
스님께서 그 스님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런 일을 누구에게 묻고 있는가?”
그 스님이 대답을 못하자 스님께서도 그만두셨다.
21.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의 향상사입니까?”
스님께서 그의 멱살을 잡고 “말해라, 말해!” 라고 소리치니 그 스님이 어찌할 바를 모르자 스님께서 그를 발길로 차서 넘어뜨렸다.
22.
하루는 스님께서 현사스님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때때로 온 기틀[全機]을 들춰낸다. 이럴 때는 세 개의 나무공을 한꺼번에 집어던지는데 그 전부를 잡아야 한다.”
“스님이 나무공을 던진 다음 갑자기 어떤 스님이 스님께 ‘공을 보시오!’라고 소리치면 그때는 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뭐라고?'라고 하겠다.”
“저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말하겠느냐?”
“ ‘그것도 분수 밖의 일은 아니다’라고 하지요.”
23.
하루는 스님께서 현사스님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이곳에는 요즘 하늘과 땅을 손아귀에 꽉 쥔 사람이 하나 있다. 그대는 아마 정신[精彩]을 바짝 차려야지 자칫 도반과 형제도 건지기 어려울 것이다.”
“옳은 말씀이긴 합니다만 어떻게 하늘과 땅을 손에 쥡니까?”
“아마도 그것은 스스로의 작용, 바로 손에 쥐는 일이 아니겠느냐.”
“스님께서는 무엇을 써서 그렇게 되었다 하겠습니까? 저 같으면 그렇게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말하겠나?”
“스님은 하늘이고 저는 땅인데, 어떻게 형제도 건지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대가 그렇게 자유자재함을 얻었느냐? 쓰고 싶으면 쓰고 거두어 들이고 싶으면 거두어들이니....”
“분수 밖의 일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이것은 제 일이니까요.”
“그대에게는 격식을 벗어난 안목이 있구나. 훗날 어느 때고 자손이 번창해도 이 도리로 해나갈 것이다. 지금도 그러하니 말이다.”
“그렇습니다. 사형사제들도 모두 그런줄 알고 있습니다. 두서너 해 뒤부터 비로소 응용하게 될 것입니다.”
“나도 그대가 그대의 도반들과 같은 이치를 보는 안목이 있음을 알고 있다."
“6근(六根)의 문에 힘쓸 것[功用] 없습니다. 스님께서도 그렇게만 된다면 비로소 자재할 수가 있습니다.”
24.
하루는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하안거는 어디서 지냈느냐?”
“용천(湧泉)에 있었습니다.”
“물이 오래오래 솟아나던가[湧], 잠시만 솟아오르던가?”
“스님의 질문이 틀렸습니다.”
“내 물음이 틀렸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에 스님께서 그를 때려 주었다.
25.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경산(徑山)스님께 인사드리러 갑니다.”
“경산스님이 이곳 불법은 어떻더냐고 묻는다면 그대는 무어라고 대답하겠느냐?”
“묻는대로 대답하겠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를 때려 주었다. 그 후 얼마 있다가 이 문제를 가지고 도부(道怤)스님에게 물으셨다.
“그대가 한 번 말해 보아라. 이 스님의 잘못은 어디에 있었는가?”
“경산스님에게 물었다가 되게 혼만 났습니다.”
“경산스님은 원래 절(浙) 땅에 있는데, 그대는 무슨 인연으로 그에게 물었으며 어째서 되게 혼만 났느냐?”
“옛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먼 곳에서 묻고 가까운 곳에서 대답한다 하지 않았습니까?”
스님께서는 “그렇지, 그래!” 라고 하셨다.
26.
하루는 현사스님이 모시고 계셨는데 스님께서 화로를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3세 모든 부처님이 이 안에서 큰 법륜을 굴리고 있다.”
현사스님이 말하였다,
“요즘 나라 법이 조금 엄해졌습니다.”
“어떻게 엄해졌느냐?”
“길 가는 사람 보따리를 빼앗아 저자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만두셨다.
27.
스님께서 하루는 장생(長生)스님과 나무를 쪼개다가 말씀하셨다.
“나무를 쪼개다가 도끼가 나무의 심(心 : 한복판)에 닿거든 멈추어라.”
장생스님이 말하였다.
“다 쪼개버리겠습니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마음으로 마음에 전한다’ 하였는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다 쪼개버린다고 하느냐?”
장생스님이 도끼를 내던지며 “전합니다” 라고 하자 스님께서 주장자로 한 대 때려주었다.
28.
하루는 스님께서 한 스님이 찾아오는 것을 보고는 “길을 열어드려라! 달마스님이 오신다” 하고는 또 “내가 너에게 물어보자. 어떻게 하겠느냐?” 하셨다.
그 스님이 “스님의 면상[鼻孔]을 그대로 들이받겠습니다” 라고 하자 스님께서는 그만두셨다.
29.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모르겠거든 한번 가섭문(迦葉門)으로 들어가 보라.”
이때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가섭문입니까?”
“실오라기 하나도 보지 않아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