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현사록玄沙錄

[현사록 上] 10~18.

쪽빛마루 2015. 6. 18. 22:46

10.

 한 스님이 설봉에서 찾아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산중스님께선 요즈음 무슨 법문으로 학인을 지도하시던가?"

 "산중스님께서는 '남산에 자라코뱀 한 마리가 있으니 여러분은 잘 살펴다녀라' 하셨습니다."

 "아는 사람이 있던가?"

 "절중(浙中)의 능상좌(稜上座)가 '오늘 승당(僧堂)에서 크게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대꾸했습니다."

 "역시 능도자라야만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나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그러자 그 스님이 물었다.

 "스님이라면 무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남산을 들먹여서 무얼 하겠는가."

 "무엇이 자라코뱀입니까?"

 "내 그대에게 남산은 들먹여서 무얼 하느냐고 말하지 않았더냐."

 "설봉스님께서 '남산에 자라코뱀 한 마리가 있다'고 했던 뜻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대인데도 그대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나도 모른다."

 

11.

 하루는 한 스님이 문안을 드리자 스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여기에서 동서사방으로 이르는 것을 아는가?"
  행사(行思)스님이 말하였다.
 "다 압니다."

 "불법은 그런 도리가 아니다."

 "무엇이 동서 사방으로 이르는 것입니까?"

 "사옹(謝翁 : 玄沙)이 방금 말했는데도 모르는구나."

 

1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불법은 아무 일이 없으나 사람을 살릴 수도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성품을 보아 성불함은 고금에 통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이미 불법이라면 무엇 때문에 도리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고 합니까?"

 "그대는 산 사람이다."

 "무엇이 사람을 살리는 불법입니까?"

 "그대는 죽은 사람이다."

 

13.

 스님께서 설봉스님께 올라가 뵙고 인사를 드리자 설봉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래로 내려가 여러 사람들이 어떤지를 살펴보게."

 스님께서 원주(院主)의 방에 이르러 문에 들어서면서 좌복을 집어들고 원주에게 물었더니 원주가 말하였다.

 "이 무슨 짓이오?"

 "불법은 그런 도리가 아니다."

 다시 목욕탕에 이르러 태원 부(太原孚)상좌가 물을 붓고 있는 것을 보고 말씀하셨다.

 "스님 인사나 합시다."

 "이미 인사는 끝났습니다."

 "어느 해에?"

 부상좌는 바로 방으로 돌아갔다.

 스님께서는 올라가 "부상좌를 간파해버렸습니다."라고 하자 설봉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떻게 간파했는가?"

 스님께서 앞서의 대화를 말씀드리자 설봉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의 말이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늙은이는 발꿈치가 땅에 닿지도 않았구나...."

 

14.

 설봉스님이 스님과 함께 산구경을 하다가 설봉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한 조각 땅으로 장생지(長生地)를 만들고 싶구나."

 "이 한 조각 땅을 보니 무봉탑(無縫塔)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설봉스님이 측량하는 시늉을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옳기는 합니다면 저라면 그렇게 하질 않겠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탑을 조성하겠습니다."

 "좋다, 좋아."

 "녜, 스님."

 

15.

 천주(泉州)의 왕태위(王太尉 : 王延彬)가 능도자를 초경사(招慶寺)에 주지로 청하였다(906년). 설봉스님은 사람을 시켜 스님의 처소에 편지를 보내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디서 왔는가?"

 "설봉에서 왔습니다."

 "불법은 그런 도리가 아니다."

 스님께서는 능도자를 전송하러 설봉에 올라 인사를 마치고는 말씀하셨다.

 "스님께선 기쁘시겠습니다. 또 한 가지가 저곳으로 뻗어나가는 군요."

 설봉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 그렇지. 인연이란 그런 것이니 고향에만 집착해서는 안되네."

 "그도 자리를 정했습니다."

 "그래, 그렇지."

 "녜, 녜."

 스님께서 능도자가 오는 것을 보자 인사하고는 말씀하셨다.

 "그대는 복이 있는 사람이다. 태위가 절을 짓고 청할 수 있었지."

 능도자가 말하였다.

 "이 모두가 당두(堂頭 : 설봉)스님과 스님의 덕택이지 저 때문은 아닙니다."

 "나는 특별히 그대를 위해 올라왔는데 그대는 어찌하려는가?"

 "그렇다면 저는 스님께 감사하는 뜻으로 절을 올리겠습니다."

 "그런 도리는 아니다."

 스님께서 다시 설봉스님께 들려드리고는 능도자의 인연을 묻자 설봉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는 본래 양절兩浙 사람이다."

 그러자 능도자가 말하였다.

 "천주(泉州 : 설봉스님의 고향)는 결코 이 산이 아닙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 곳에 가서 주지를 잘하게."

 "녜, 녜."

 "나는 본래 사씨謝氏 성을 가진 적이 없다네."

 "저는 또 어찌 소주(蘇州 : 혜릉은 소주 통현사에 출가하였다) (蘇州 : 혜릉은 소주 통현사에 출가하였다) 사람이었겠습니까."

 "그렇지, 그래. 그래야만 하지."

 "사람마다 고향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작용과 처소가 한결같아선 안된다."

 "모든 것을 상황에 맞게 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정말 그렇다네."

 "녜, 녜."

 

16.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행각하는 일을 아느냐? 내 지금 그대로 말해 주겠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나와 동참하여 함께 행각하면서 도반이 되니 밤낮으로 일찍이 행각 아닌 적이 없다. 알겠는가. 알았다면 지금 바로 알겠지만, 몰랐다면 또 어떻게 모른다 말하겠느냐. 그렇게 언어문자만을 설명하지 말라. 몸조심하라."

 

17.

 스님께서 하루는 무우를 들고 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 무우를 그대는 어떻게 하겠는가?"

 앞뒤로 백여 명이 대답을 하였으나 모두 맞지 않았다.

 뒤에 원창(元昌)이라는 자가 있어 대꾸하였다.

 "저는 스님을 먹겠습니다."

 "무얼 먹겠다고?"

 "무우를 먹겠다고요." 

 "알았다, 알았어."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요즈음 여러분에게 이것이 먹는 것이냐고 물었으나 그대들은 알지 못하고 오로지 대꾸할 말만 찾으니 언제 끝날 기약이 있겠는가.

 내 이제 곧장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말을 들으면 바로 종지를 알아야 한다. 먹을 것은 먹고 쓸 것은 써야지, 이처럼 흑백을 분간 못해서는 안된다. 나는 때때로 그대들에게 말했다. 검고 흰 것을 그 자리에서 분별해야지 이처럼 멍청해가지고는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다고. 나는 하루 종일 이를 가지고 일삼지만 그래도 이러한데 한마디[一轉語] 던져놓고 다 되었다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보통 있는 일일 뿐이다.

 이처럼 한다면 그대들 마음대로 높이 멀리 날아다닐 일이지 여기에 있으면서 산에 오를 것이 없다."

 한 스님이 도리어 무우를 가지고 산으로 되돌아와서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그대가 먹게 하려 할 뿐인데...."

 "어떤 것이 무우를 먹는 것입니까?"

 "너도 배 부르고, 나도 배 부르는 것이다."

 

18.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이여, 같은 법[一法]이 같은 법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법[異法]이 다른 법을 이루지 못한다. 알겠는가. 모른다 해도 모르는 것이 아니며, 안다 해도 아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들이여, 무슨 깨달은 점이라도 있는가? 깨달았다 해도 그러할 뿐이고, 깨닫지 못했다 해도 그러할 뿐이다.

 스님네들이여, 이것이 무슨 도리이길래 이렇게 난해한가. 견문각지(見聞覺知)는 항상 그러할 뿐이다.

 여러분들이여, 이 말이 무슨 말인가? 명백히 여러분은 반드시 한결같아야만 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같은 법'입니까?"

 "다른 법이다."

 "무엇이 '다른 법'입니까?"

 "같은 법이다."

 "무엇이 부처의 마음입니까?"

 "중생의 마음이다."

 "무엇이 중생의 마음입니까?"

 "부처의 마음이다."

 "무엇이 학인 자기입니까?"

 "자기는 어디다 쓰려고?"

 "도인이 서로 만났을 때는 어떻습니까?"

 "난들 또 어떻게 그대인 줄 알았으랴."

 "무엇이 현사의 진짜 주인입니까?"

 "그대는 주인이고 나는 객이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무얼 묻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