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사록 上] 19~23.
19.
설봉스님께서 스님에게 물으셨다.
"그대가 그곳에 있을 때 어떤 형제가 그대를 가까이하던가?"
"완전히 공부한 사람도 있고 전혀 공부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겠다."
"녜, 그렇군요. 저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어떤데?"
"공부하지 않은 이도 있고 완전히 공부한 이도 있습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색(色)을 보는 것이 바로 마음을 보는 것이라 하였는데, 무엇을 색을 보는
것입니까?"
"마음을 보는 것이다."
"무엇이 마음을 보는 것입니까?"
"색을 보는 것이다."
"색과 마음은 나뉘어집니까? 나뉘어 지지 않습니까?"
"나뉘어도 나뉘질 않는다."
"어떻게 체득해야 부합하겠습니까?"
"체득하지 않아야 부합한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학인의 안목입니까?"
"그대는 이름이 무엇인가?"
"교연(皎然)입니다."
"그대는 안목을 알지 않는가."
20.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실로 한 법도 옳지 않음이 없다. 여러분은 알고 있는가. 나는 지금도 그대에게 묻겠다. 시냇물을 보는가? 불전(佛殿)을 보는가? 승당을 보는가?
본다고 한다면 무엇으로 보며, 보지 않는다고 한다면 지금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불전과 승당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데, 어떻게 보지 못한다고 하겠는가. 모든 스님네들이여, 시냇물은 시냇물이고, 불전은 불전이며, 승당은 승당이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불전입니까?
"불전도 모르다니."
"무엇이 승당입니까?"
"승당이 아니다."
"무엇이 시냇물입니까?"
"민(閩) 지방에 맑은 계곡이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체득해야 합니까?"
"체득함이 필요치 않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3승(三乘)의 가르침 밖에 따로 전한 일입니까?"
"무엇이 3승의 가르침 밖에 따로 전하지 않은 일이더냐?"
한 스님이 물었다.
"언어로 미치지 못하는 곳을 스님께서는 도와주십시오."
"이 죽은 놈아!"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이 법이 법의 위치에 머문다' 함입니까?"
"그대는 이렇게 뒤집힐 수 있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모든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까?
"그때 너를 어디다 쓰려고?"
"아마도 이것이 아닐는지요."
"이 미련한 놈아!"
2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이 세간에 출현하신 이래 자비를 일이켜 운행하심은 마치 허공꽃[空花]과 같아서 실다움이 없다. 여러분은 그것이 세간에 출현한 적도 없고 입멸한 적도 없으며, 허깨비의 변화 · 허깨비 명칭이라서 실체가 없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4대(四大)의 성품은 본래 진공(眞空)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래 멸한 적도 없고, 태어난 적도 없었으며, 중생을 교화한 적도 없없다.
중생의 성품이 여여하기 때문에 색신(色身)도 여여하며, 중생의 성품이 멸하기 때문에 색신도 멸한다. 알겠는가. 알았다면 여러분의 이론을 꺼내 놓을 것이요, 몰랐다면 내가 지금 당장 말해 주겠다.
자성(自性)은 자성을 낳지 않고, 자성은 자성을 멸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해해야 옳겠는가. 여러분은 이 성품이 본래 여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말라. 알았다면 바로 대중 앞에서 알아내 보라. 몰랐다 해도 어느 점이 그들 모든 부처님과 같지 않으랴. 곧장 이렇게 되어야만 한다. 상근기라면 한 번 듣고 모두 알 것이며, 하근기도 역시 한 번 듣고 알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무슨 말이겠는가? 알겠느냐, 깨달았느냐, 사람마다 완전하게 갖추었고, 사람마다 있는 그대로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모든 부처님이 자비를 일으키고 운행함'입니까?"
"고양이와 개이다."
"어째서 도리어 그렇습니까?"
"그대는 무엇을 물었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4대의 성품은 본래 진공(眞空)이다' 한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대는 그렇게 쓴 고생을 해서 무얼 하려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자성은 자성을 낳지 않음'입니까?"
"그대는 누구를 의지해서 얻었느냐?"
"그렇다면 모든 법은 태어남이 없습니까?"
"스스로 전도되었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밝고 묘한 참마음입니까?"
"견유나(堅維那)도 그대가 이렇게 질문하는 것을 본다."
한 스님이 물었다.
"밝음과 어둠이 나뉘지 않았을 땐 어떻습니까?"
"먹같이 깜깜하지."
"나뉜 뒤엔 어떻습니까?"
"칠흑같이 깜깜하지."
"스님께서는 곧장 말씀해 주십시오."
"조금 전엔 빙 둘러 말하지 않았더냐."
22.
영운(靈雲 : 靈雲志勤)스님이 찾아와 인사를 마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쪽은 이곳에 비해 어떻습니까?"
"그저 고향일 뿐 다른 점은 없습니다."
"있습니까?"
"항상 그렇습니다. 항상 그래요."
"왜 말하지 않습니까?"
"무슨 말하기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정말이라면 바로 말해 주십시오."
이에 영운스님이 말하였다.
30년을 검을 찾던 검객
몇 번이나 낙엽지고 새싹이 텄던가
한 번 복사꽃을 본 뒤로
지금까지 다시는 의심 않았네.
三十年來尋劍客 幾廻葉落幾抽枝
自從一見桃花後 直至如今更不疑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고향에서부터 타고난 재주가 무엇입니까?"
"조금 전에 진실로 다른 것[外物]이 아니라고 했잖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요."
"뭘요, 부끄럽습니다."
"마땅하기는 무척 마땅하지만 노형께선 아직 깨치지 못했음을 감히 장담합니다."
"스님은 깨쳤습니까?"
"그래야만 비로소 되는 것입니다."
"옛날과 지금에 항상합니다."
"좋습니다. 정말 좋습니다."
그리고는 게송을 지어 영운스님을 전송하셨다.
30년을 여여하게 변함 없으니
몇 번이나 낙엽에서 백호광을 놓았던가
한 번 은하수 밖으로 벗어난 뒤로는
원음(圓音)의 체성(體性)이 법왕(法王)에 호응하네.
三十年來只如常 幾廻落葉放毫光
自從一出雲霄外 圓音體性應法王
23.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이여, 한 법이 있으면 한 법에 메이고 한 법을 끊는다 해도 한 법에 매인다. 한 법이 있으면 그 법에서 자재(自在)를 얻고 한 법을 끊는다 해도 그 법에서 자재를 얻는다. 한법을 끊는다 해도 여러분의 눈이 손상되고 한 법이 있다 해도 여러분의 눈이 가리운다.
어떻게 이해해야겠는가. 한번 자세히 참구해 보라. 이것이 무슨 도리이겠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이 많으면 도와는 더욱 멀어집니다. 말에 떨어지지 않고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는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아서 또 무얼하려는가."
"그렇다면 말에 떨어지지 않겠습니다."
"계통을 어지럽히고 있군."
한 스님이 물었다.
"학인이 용문(龍門)을 꿰뚫으려 하는데 어떻습니까?"
"그대도 역시 업력(業力)일 뿐이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조금 전에 무얼 물었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취모검(吹毛劍)입니까?"
"바로 그대 자신인데 그대가 모르구나."
한 스님이 물었다.
"4구(四句)를 여의고 백비(百非)를 끊을 때는 어떻습니까?"
"4구를 어떻게 여의겠느냐."
"무엇이 백비를 끊음입니까?"
"4구를 떠남이다."
"저는 백비를 끊음을 물었을 뿐입니다."
"내가 왜 그대에게 4구를 여의는 것이라고 대꾸했더냐."
"어떻게 해야 옳겠습니까?"
"어떤 것이 옳지 않더냐."
한 스님이 물었다.
"산악이 이지러짐이 없을 땐 어떻습니까?"
"산악도 모른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그저 한결같을 땐 어떻습니까?"
"이 전도된 놈아!"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한 구절에 확실하게 백억을 초월한다'* 함입니까?"
"대중들이여, 이 스님의 망언을 들어보라."
"어째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대는 무얼 물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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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구요연초백억(一句了然超百億)'은 영가(永嘉)스님의 증도가에 나오는 구절. 원문의 '了念'은 '了然'이 잘못 표기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