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현사록玄沙錄

[현사록 上] 24~25.

쪽빛마루 2015. 6. 18. 22:49

24.

 설봉(雪峰)의 여러 선객(禪客)들이 특별히 내려와 찾아뵙고 절하자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이렇게 찾아와 무엇을 찾는가. 나인들 무엇이 있어서 여러분을 이끌어주겠는가. 응당 스스로가 만나보아야 하며, 상응하는 곳이 있어야만 하리라. 만나지 못했다면 이렇게 말이나 찾고 쫓는대서야 언제 끝날 기약이 있겠는가. 여러분은 말에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알아야만 한다."

 혜릉(惠稜)이 물었다.

 "저 혜릉(惠稜)은 스님께 묻습니다. 말에 떨어지지 않고 올가미에도 떨어지지 않는 것을 스님께서는 헤아려 주십시오."

 "저울대를 꺾어버리고 오너라. 내 그대에게 헤아려 주겠다."

 

 홍도(弘瑫)가 물었다.

 "무엇이 스스로 만나는 도리입니까?

 "5온(五蘊)만 갖추지 말고 오너라. 내 그대에게 말해 주겠다."

 

 언빈(彦玢)이 물었다.

 "종문(宗門)의 일은 어떻습니까?"

 "종문도 모르다니...."

 

 혜참(惠參)이 물었다.

 "당장에 한 물건에도 매이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이렇게 전도되다니..."

 

 종정(宗靜)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만 생사에 매이지 않을 수 있습니까?"

 "생이고 사이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잠꼬대냐."

 

 문등(文僜)이 물었다.

 "무엇이 3승(三乘)과 다른 일입니까?"

 "그대는 문등스님이 아니더냐."

 

 언은(彦恩)이 물었다.

 "무엇이 모든 부처님이 사람을 위했던 구절입니까?"

 "그대 스스로 말해 보아라."

 

 도부(道怤)가 물었다.

 "어떻게 걸어가야만 말에 매이지 않겠습니까?"

 "스님은 절(浙) 지방의 선객이 아닙니까?"

 

 유경(唯勁)이 물었다.

 "말로는 미치지 못하는 곳을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미칠 것인지, 미치지 않을 것인지...."

 

 언휘(彦暉)가 물었다.

 "무엇이 일상사입니까?"

 "그대는 이름이 무언가?"

 "언휘입니다."

 "언휘이군."

 

 광휘(光暉)가 물었다.

 "무엇이 자수용삼매(自受用三昧)입니까?"

 "그대가 언제 수용(受用)한 적이 있느냐."

 

 행부(行怤)가 물었다.

 "어째서 이렇게 알기 어렵습니까?"

 "무엇이 있거든 가져 오십시오."

 

 태원 부(太原孚)상좌가 물었다.

 "지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으니 스님께서도 단도직입적으로 말씀해 주십시오."

 "이렇게 전도되다니..."

 

 종전(從展)이 물었다.

 "눈앞의 경계에 떨어지지 말고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앞입니까? 뒤입니까?"

 

 영조(靈照)가 물었다.

 "옳지 않은 곳이 있으면 스님께서 집어내 주소서."

 "스님은 어린 나귀가 아닙니다."

 "곧장 일색(一色)을 얻었을 땐 어떻습니까?"

 "갖가지 색입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사의 경계입니까?"

 "경계도 모른다."

 

 종엄(宗弇)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해 주십시오."

 "스님은 종엄이 아닙니까."

 "아마도 종엄이라고 물으셨습니까?"

 "제가 그대 종엄에게 대꾸했습니까."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학인을 낳아준 본래 부모입니까?"

 "나는 낚시하는 사씨(謝氏)네 셋째 아들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비로자나의 스승이며 법신의 주인입니까?"

 "비로자나도 모른다."

 "나뉘기도 나뉘지 않기도 합니까?"

 "나뉘어도 그대이고 나뉘지 않아도 그대이다."

 

 전탄(全坦)이 물었다.

 "법신인데도 설법할 줄을 압니까?"

 "잠꼬대하는 놈아!"

 

2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특별히 이렇게 올라와 서로 만났으나 대접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대체로 불법 심신으로 사나흘을 지내는 동안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나물밥뿐이었으니 각자 알아서 먹어야 한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각자가 먹어서 배부르면 나도 자연히 배가 부르니 이렇게 말하는 것을 알겠는가.

 그렇게 머리를 끄덕이고 수긍하지만 말라. 도리를 설명하는 것으로는 아무 관계가 없다. 각자 스스로 곰곰히 생각해서 질문을 할 수 있어야만 말 없는 대꾸에 문득 합한다.

 여러분이 떨쳐버릴 인연은 나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또한 여러분의 날카로운 논변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본분의 행각하는 일은 어찌되었는가. '이것이 무엇이냐'고 하지 말고, '무엇이라도 얻었느냐'고 하지도 말며, 따로 '그 밖에 따로 있다고 해선 안된다'라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매우 분명하다'거나 '다시 말해 보라'거나 '다시 한번 쭉 거론해 보라'고 하지 말라.

 또 어떤 사람들은 좋고 나쁜 것도 모르고 이렇게 말한다. '모조리 설명해버렸다. 사람마다 완전하고 사람마다 완성된 모습으로 나난다. 온 시방세계가 다가온다 해도 내 갈 곳일 뿐, 청황적백(靑黃赤白)이나 명암색공(明暗色空), 지수화풍(地水火風)은 결코 없는데 무엇을 말해야 하겠는가'라고.

 그러나 이러한 견해라면 다행히도 전혀 관계없는 미련한 진여(眞如)를 이를 뿐이다. 길흉을 분별하지 못하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응당 각자가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도부상좌(道怤上座)가 고요한 밤에 방에 들어와 이름을 대며 절하고는 였다.

 "저는 이렇게 특별히 찾아와 스님의 자비를 빕니다. 들어갈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대는 언계(偃溪)의 물소리를 듣느냐?"

 "듣습니다."

 "이 소리를 따라 들어오너라."

 

 또 여러 선객들이 설봉으로 돌아가면서 하직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지금 어려분은 곧장 산으로 돌아가려느냐, 아니면 다른 곳으로 가려느냐?"

 능선객(稜禪客)이 말하였다.

 "여기는 산중(山中 : 설봉)이 아닙니다."

 "어떤데?"

 "역시 그럴 뿐입니다."

 "그렇지, 그래."

 "녜, 녜."

 다시 물으셨다.

 "참형(參兄), 올 땐 스님께 며칠이나 있겠다고 말했는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님께서는 "옳지 않네" 하더니 대신 말씀하셨다.

 "미상불 옳습니다."

 다시 도부에게 물으셨다.

 "이제 산으로 오르려는가?"

 "알았습니다. 스님."

 또 물으셨다.

 "전형(展兄), 그대는 지금부터 여기에 있으면서 도반이 되지 않겠는가?"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스님께서 저를 필요로 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런 도리는 아니지" 하더니 대신 말씀하셨다.

 "사람마다 다 그렇습니다."

 다시 부형(怤兄)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가려는가?"

 "어디든 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런 도리는 아니지" 하더니 대신 말씀하셨다.

 "이제 산에 오르겠습니다."

 다시 도형(瑫兄 : 弘瑫)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여기에 돌아와 얼마나 살았지."

 "날로 헤아리면 옳지 않습니다."

 스님께서는 "옳지 않지" 하더니 대신 말씀하셨다.

 "예나 지금이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