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사록 上] 35~37.
35.
스님께서 설봉에 계실 때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산 좋고 물 좋구나. 말은 언제나 맞고 이치는 언제나 실다우며 행은 언제나 원만하다. 도 그 자체는 일정한 방향이 없이 상황에 맞게 법을 설한다. 모습을 따라서 제각기 달라지되 어느 곳이든 옳지 않음이 없고 틀리지 않음도 없이 예와 지금에 통하며 자재함을 환히 드러낸다. 그러므로 '작은 몸은 작은 음성을 나타내 설법을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묻겠다. 오온신(五蘊身)의 밭을 갖추었는가, 갖추지 못하였는가? 갖추었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갖춘 도리를 말하겠으며, 갖추지 않았다고 한다면 뉘라서 오온신의 밭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겠는가.
여러분이 지금 비구(比丘)의 모습이듯이 나 역시 비구의 모습으로 그대들을 위해서 설법을 한다.
어째서 바로 알아듣지 못하는가? 아수라의 모습으로 설법을 한다면 당장 모른다고 말할 것이며, 아귀의 형상이나 나아가서는 형상 아닌 것으로 설법을 한다면 모른다고 할 것이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이러한 도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얼른 대중앞에 나와서 밝혀 보도록 하라.
만약 이렇게 도리를 설명할 수 있다면 시방세계가 모두 온다 해도 나의 이 도리일 뿐 어찌 다시 4생 9류가 있겠는가. 이렇게 말한다면 꿈엔들 불법을 보았겠는가. 그것은 손을 댈 때부터 훌륭한 인물을 만나지 못하고 멍청한 난두삼자(蘭頭衫子 : 속인이 입는 푸대자루 같은 옷)를 굳게 집착했기 때문이다. 귀먹은 속인 앞에서 '나는 할 수 있고 나는 안다'라고 하나 마치 한 봉사가 여러 봉사를 인도하듯 하여 줄줄이 쫓아가니 어디에 구제할 여지가 있겠는가.
여러 스님네들이여, 그대들은 의심하는가. 내가 지금 그대들에게 묻겠다. 눈앞의 청산을 보는가. 좋고 나쁜 것을 보는가. 고양이나 개, 모든 새와 짐승을 보는가. 보지 못한다고 한다면 멍청한 사람이 될 것이며, 본다고 한다면 그대들은 설명해 보시오. '이것은 색(色)일 뿐이다'느니 '이것은 어느 정도로 분명하다'느니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이렇게 가련하다'. '무엇이든 다 나일 뿐이니 다시 어느 곳으로 가겠는가'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면 멍청한 중에서도 가장 멍청하다고 할 것이다. 승속을 분별 못하며 길흉을 알아내지 못한 채 승복에 몸을 맡긴 어설픈 속인인데 어찌 함께 불법을 논할 만하겠는가.
여러 스님네들이여, 응당 가까이할 만한 사람[附近人]이라면 인아(人我)를 결택하고, 멍청함을 타파하여 청황적백을 분별하고 시비를 가려내며 좋고 나쁜 것과 길고 짧은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결정코 사람이고 하늘은 결정코 하늘이며 수라는 수라이다. 수라 가운데서 해탈을 얻으며, 나아가 아귀, 축생, 지옥에 이르기까지
제각기 모두 해탈을 얻어 형상에 따라 구분되면서 자유자재하다.
이렇게 밝음은 밝음, 어둠은 어둠, 나아가 청황적백까지도 낱낱이 그러하여 털끝만큼도 뒤섞일 수 없음을 응당 알아야 한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지금의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멍청함인가, 아니면 한결같이 똑같음인가. 설명도 끝나고 거론도 끝났는가. 다시는 한 법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하는 법이 없음인가. 다시 누구더러 설명하게 함인가.
여러 스님네들이여, 어떻게 이론을 체득해 알아야 하겠는가. 이런 말이 옛 성인에게 부합되겠는가. 기연에 응하여 설법하는 것인가. 승속을 분별하는 것인가. 같은 글자는 한 글자도 없다 함인가. 여러분이 이를 가지고 일삼지 않을 뿐, 나는 하루 종일 때때로 그렇게 하고 때때로 운행하면서 기연에 응해서 상황에 따라 교화한다.
이는 여러분에게 성품바다를 똑같이 설명해 내고 근본을 지적해 돌아가게 하려 함인데, 응당 자유로워 어디든 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은 언제나 맞고 이치는 언제나 실답다'라고 하였던 것이다. 천상 인간과 6도에 왕래하면서 곳곳마다 꿰뚫지 않음이 없으니 응당 그래야만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달마가 서쪽에서 와서 직접 심인(心印)법문을 전하여 부처와 중생이 심왕(心王)의 인(印) 아님이 없음을 일시에 밝혔다'라고."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기연에 응하여 설법하는 사람입니까."
"그대는 종전(從展)이 아닌가."
"무슨 말씀입니까?"
"귀머거리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기연에 맞추어 설법함입니까?"
"그대는 이름이 무언가?"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습니다."
"이 칠통아!"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기연을 관찰하여 설법함입니까?"
"그대를 속인이라 불러도 되겠느냐."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대는 무얼 물었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기연을 따라 설법함입니까?"
"그대는 어디서 헛딛고 왔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언어와 함께하지도 않고 마음의 길로도 가지 않음을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너의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왜요, 어째서요."
"이 눈 감고 조는 놈아, 어째서 사람이 되질 못했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작용하는 곳에서 바탕을 바꾸지 않음을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는 용화(龍華)에 신선처럼 노니는 홍도(弘瑫)가 아닌가."
"왜요, 어때서요."
"홍도야, 홍도야!"
"녜, 녜."
"무엇을 얻었는가?"
"물고기 낚는 늙은이를 얻었습니다."
"이처럼 실마리를 어지럽히다니."
"스님이야말로 실마리를 어지럽히지 않으십니다."
"그대야말로 실마리를 어지럽히지 않는구나."
"정작 제가 실마리를 어지럽힙니다."
스님께서 이리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자체의 성품은 여여하여 바탕을 바꾸지 않고
말을 하면 이치에 맞아 오묘함에 응하니
바로 이 자리에서 몸소 얻음이 진짜 큰 도이니
소리와 색, 보고 들음이 부사의하여라
세 곳에서 일시에 백호광을 놓으니
색상은 제각기 청황을 드러낸다
시방삼세가 모두 이러하니
마음대로 다니면서 실로 당당하구나.
體性如然不換機 言來理契應玄微
直下親親眞大道 聲色聞見不思議
三處一時放毫光 色相箇箇顯靑黃
十方三世皆如是 任運行來實堂堂
36.
하루는 참형(參兄 : 혜참)스님에게 물으셨다.
"절중지방에서는 좋은 월나라 그릇이 생산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가?"
"그렇습니다."
"그런 도리는 아니라네."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고향이라서 그럴 뿐, 본래 외부의 물건은 아닙니다."
태원 부상좌에게 물으셨다.
"그대의 고향에선 어떤 좋은 물건이 생산되는가?"
"없는 종류가 없습니다."
"무슨 물건인데?"
"말을 알았다고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런 도리는 아니다."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그럴 뿐입니다."
설봉스님에게 물으셨다.
"주장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한 자루 주십시오."
"나에겐 세 자루가 있으니 한 자루만 가져 가게."
"사람마다 하나뿐인데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세 개나 쓰십니까?"
"세 개 다 쓴다네."
"옳기는 옳습니다만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대는 어떤가?"
"셋이기도 하고 하나이기도 합니다."
전선객(展禪客)에게 물으셨다.
"청원에선 좋은 도구가 나온다고 들었는데, 그런가?"
"스님께선 무슨 물건이 필요하십니까?"
"기연에 응하지 않는다."
"스님은 어떤데요?"
"스스로 누리는 경계[自受用]를 말할 뿐이다."
안원주(晏院主 : 鼓山神晏)에게 물으셨다.
"이것은 어디 부채인가?"
"청원지방의 부채입니다."
"원주는 어째서 선(禪)공부를 하지 않고 이렇게 헛디디고 다니는가."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이것도 바깥 물건이 아닙니다."
종이 울리자 스님께서 아야, 아야! 소리를 지르고 뛰면서 말씀하셨다.
"이 종이 내 밥통 속에서 운다. 그대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전상좌(展上座)가 대꾸하였다.
"스님의 존재는 어떠신지요?"
"그대는 또 변명해서 무엇하려는가."
"스님은 또 스스로 물어서 무얼하시겠습니까."
"나는 이러고 싶지 않네."
"전들 어찌 일찍이 그랬겠습니까."
"그래, 그렇지."
"녜, 녜."
하루는 설봉스님을 하직하고 산을 내려오면서 말씀하셨다.
"스님께 아뢰옵니다. 사람마다 자유자재하니 저는 이제 산을 내려가렵니다."
설봉스님이 말씀하셨다.
"누가 그러던가?"
"스님께서 그러셨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하려는가."
"자유자재하지 못합니다."
"알았네, 알았어."
초경스님과 헤어지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산을 내려가려 하네. 그대도 나 있는 저쪽으로 오게나."
초경스님이 말하였다.
"그곳에 있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랬었나."
"분수 밖의 일은 아닙니다. 스님!"
"알았네, 알았어."
다시 안원주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갈테니 한가하여 일이 없거든 그곳으로 오게나."
"제가 감히요?"
"그런 도리가 아니다."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이 곳을 산중이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37.
왕령공(王令公)이 사람을 보내 커다란 배[含消梨]를 올리자 스님께서는 이를 들어 보이면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이것을 먹으라고 주겠다. 어떻게 말해야 먹을 수 있겠는가?"
지초(志楚)스님은 "무슨 부질없는 물건입니까?" 하였고, 언목(彦穆)스님은 "부질없는 물건은 던져버리십시오" 하였으며, 혜침(惠琛)스님은 "이 과일을 잘 두었습니다." 하였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내말을 알았으니 이제 먹게 해야겠구나. 그러나 여러분은 대꾸할 말이나 찾았을 뿐, 언제 끝날 기약이 있으랴. 오래 서 있을 필요없다."
스님께서는 혜침스님더러 배를 가지고 노숙당(老宿堂)으로 가서 먹게 하였다.
그곳은 그 뒤로 집현당(集賢堂)으로 고쳤는데 모두 17명이 있었으며, 권말에 이에 관한 기록이 있다.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세 개 큰배가 도량에 가득하여
시방삼세에 백호광을 나타내
법마다 항상 모두 이러하여
지녔다 기연에 응하는 솜씨 가장 향기롭네.
三顆含消滿道場 十方三世顯毫光
法法恒然皆如是 提持機應最芬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