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사록 中] 25~28.
25.
스님께서 상당하니 대중이 모여 자리하자 주장자로 몽땅 쫓아 버리셨다. 그리고는 시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오늘 알음알이[解]를 하나 지어냈으니 쏜살같이 지옥에 빠질 것이다" 하니 시자가 말하였다.
"기쁘게도 스님께서는 다시 사람몸을 받으시겠습니다."
26.
상당하여 말씀하시기를, "모든 삼라만상이 거울 속에서 나타난다"하시고는 주장자를 세우더니 말씀하셨다.
"이건 형상이고 저건 거울이다."
장생(長生)스님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원통(圓通)을 얻겠습니까."
27.
상당하여 주장자를 세우고 말씀하시기를, "그대 여러분은 두번째[第二頭]이다" 하더니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28.
개평(開平) 원년(907) 정묘 9월, 청원(淸源)에 갔다가 초경원에서 법요(法要)를 청했는데, 스님께서는 도착하자마자 말씀하셨다.
"초경원(招慶院)이 뭐가 좋다고 그러는가."
초경스님이 말하였다.
"단지 그러할 뿐입니다."
"그래서 어떻다는건가?"
"이같을 뿐입니다."
"그래, 그렇지."
"녜, 녜."
다시 대화를 나누다가 스님께서 물으셨다.
"이 법당은 몇 칸이나 되는가?"
"세 칸 두 칸이라 하면 옳지 않습니다. 서까래와 나무로 지었을 뿐입니다."
"어디에 있는가?"
"그저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어떻다는건가?"
"스님께서 길이 평탄지 않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초경아, 그대는 무엇을 의지하는가?"
"하늘 아래, 스님을 받듭니다."
"그래, 그렇지."
"녜, 녜."
스님께서 초경스님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왕태부(王太傅 : 王延彬)을 보러 간다."
"옳기는 옳습니다만……."
"왜?"
"저도 가렵니다."
"그래도 되겠느냐?"
"어때서요?"
"나는 간다."
"잘해 보십시오."
"잘하구말구"
"압니다, 알아요."
스님께서 고을에 도착하여 인사를 나누고는 태위에게 물으셨다.
"태위의 군성(郡城)은 어쩌면 이렇게도 훌륭합니까?"
"뭘요, 부끄럽습니다."
"오랫동안 태위의 소문을 들어왔는데 역시 마찬가지군. 불법은 이렇지 않습니다. 어째서 들어갈 곳을 찾지 않으십니까?"
태위가 말이 없자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원래 바깥 물건이 아닙니다."
스님께서 초경원으로 돌아와서 말씀하셨다.
"오랫동안 왕태위의 소문을 들어왔으나 어찌 그에게 불성이 있었으랴."
초경스님이 말하였다.
"그렇다고 어찌 불성이 없습니까?"
"그렇게 왕태위를 위해 변명을 해주어 무얼하겠나."
"밝고 밝아도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돌아왔느냐."
"이곳은 초경원의 법당일 뿐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느냐."
"분수 밖이 아닙니다. 스님."
"알았네, 알았어."
"그래도 분수 밖은 아닙니다."
"정확히 일치하겠는가?"
"예나 지금에 항상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뭘요, 부끄럽습니다."
"그래 그렇지."
"녜, 녜."
다음날 태위가 초경원으로 나와 다시 예를 올리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태위는 고을의 성곽을 다스리느라 쉽지 않겠습니다."
"대사께 아뢰오니, 부끄럽습니다."
"음음, 불법은 그런 도리가 아닙니다."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그저 고향일 뿐인 걸요."
다시 초경스님이 스님과 마주앉았는데 태위가 일어나서 절을 하고는 물었다.
"두 성인께서 마주앉아 무슨 이야기를 나누십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래도 청원(淸源)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만 하면 됩니까?"
"불법은 그런 도리가 아닙니다."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다른 일이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스님께서 보복(保福)스님에게 물으셨다.
"이제 막 어디서 왔습니까?"
"여기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어떻다는 것입니까?"
"다만 그러할 뿐입니다."
"누가 이렇게 말했습니까?"
"따로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어떤데요?"
"사람마다 다만 그러할 뿐입니다."
"그럴 수 있겠습니까?"
"분수 밖이 아닙니다."
"그렇지, 그래."
"녜, 녜."
명진(明眞)스님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어디에 있었는가?"
"스님께선 요즈음 어떠신지요?"
"그대는 또 그렇게 많이 알아서 무얼하려는가?"
"언제는 있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지금은 어떤가?"
"별일 없습니다."
"자, 어떻게 하려는가?"
"고향이라서 별일 없습니다."
"내가 그대와 함께하면 어떻겠는가.?"
"그래도 단정코 스님입니다."
"나는 안다. 그대가 아니라는 것을."
"정말로 저는 아닙니다."
"사실이라면 됐다."
"어떤데요, 어때요."
"그렇지, 그래."
"뭘요, 부끄럽습니다."
엄(弇)장로에게 물으셨다.
"스님은 여기서 하안거(夏安居)를 몇 차례나 지내셨소?"
"별일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은 어떻소?"
"저절로 알아졌습니다."
"그래도 사람에게 향하시오?"
"분수 밖은 아닙니다."
"좋습니다, 좋습니다."
"녜, 녜."
인상좌(麟上座)에게 물으셨다.
"무엇 때문에 한 절에 몇 채의 요사(寮舍)가 있는가?"
"앞에 여섯, 뒤에 여섯입니다."
"그런 도리는 아니다."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그래도 보통 집일 뿐입니다."
광상좌(匡上座)에게 물으셨다.
"여기에 오늘 몇 사람이나 있느냐?"
"현재에 의거하여 정합니다."
"기틀에 응하지 못하는군"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고향입니다."
스님께서 초경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손으로 법당의 기둥을 치면서 말씀하셨다.
"어쩌면 이렇게 좋은 법당일까. 어쩌면 이렇게도 좋은 기둥일까."
"보잘것없는 부서진 집일 뿐입니다."
"그대가 이처럼 만족할 줄 모르다니.... 무엇이 좋은 집이더냐?"
"사람마다의 고향일 뿐입니다."
"나는 알았네."
"뭘요, 부끄럽습니다."
하루는 왕태위가 사람을 시켜 스님과 초경스님을 차를 마시러 오라고 청하였다.
스님께서는 편지를 전하는 사람에게 차는 벌써 마셨다고 전하게 하였다. 태위가 다시 사람을 보내 스님께서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을 전하자 스님께서는 "음음, 이런 도리는 아닌데" 하더니 대신 말씀하셨다.
"이제까지는 차를 준비하였는데 지금은 도리어 준비하지 않습니다."
스님께서 초경스님에게 말씀하셨다.
"내일은 차를 마셔야 하다니 초경, 그대는 가려는가?"
"스님께선 조금 전에 차를 마시지 않으셨군요."
"그대는 차를 마셨더냐?"
초경스님은 문득 시자를 불러 뜨거운 물을 한 사발 가져오라 하여 드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해야만 하리라."
"끝난 건 끝난 것입니다."
"초경스님이 이렇게 영리하다니."
"별일 아닙니다."
다음날 초경스님과 함께 관청에 이르러 말씀하셨다.
"태위, 어제는 차를 주어 감사합니다."
"어제는 마실 것이 없었을 텐데요."
"산승이 어제 어찌 태위의 차를 마셨겠습니까."
"그러나 스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하신 겁니다."
"불법은 그렇지 않다네."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끓는 물을 가져다 스님의 입을 씻어주어야겠다."
스님께서 태위에게 물으셨다.
"이 군의 호구(戶口)는 얼마나 됩니까?"
"대사께서 살펴보시지요."
"그런 도리는 아닙니다."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셨다.
"변변찮은 고을입니다."
태위가 물었다.
"무엇이 종문(宗門) 가운데서 보지 못하는 도입니까?"
"보이는 종문은 도가 아닙니다."
"종문은 또 무엇입니까?"
"이렇게 전도될 수 있다니."
"어째서 이렇습니까?"
"전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 초경스님과 함께 남택(南宅)에 유람하다가 말씀하셨다.
"초경, 웬 집 한 채일까?"
"태위의 집입니다."
"그대는 태위에게 나누어주어 무얼하려는가?"
"이제껏 고향일 뿐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렇지, 그래."
"압니다, 알아요."
태위가 스님을 남택(南宅)으로 청하자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이 한 뙈기 땅을 살펴보라. 이처럼 삼천대천세계를 꽉 붙들어 둘 수 있다. 욕계 · 색계의 모든 하늘과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까지도 모두가 자유자재를 얻어 다시는 그 무엇도 그대에게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하지 않는다.
자, 어떻게 체득해 알겠느냐. 여러분, 체득했다면 얼른 나와서 대중 앞에 이론을 전개해 보아라. 체득하지 못했다면 한 부분은 옳고 한 부분은 옳지 않으니 그렇다면 일찍이 꿈엔들 자기의 일용삼매(日用三昧)를 보았겠느냐.
또 어떤 사람들은 좋고 나쁜 것을 모르고 강종(綱宗)을 모르면서 '나는 할 수 있고 나는 안다. 이 일일 뿐이다'라고 말들 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면 꿈에서도 보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현재 정해진대로만 응용할 뿐, 어디로 향할지를 모르기 때문이니, 어디 구제할 곳이 있으랴.
여러분은 지금 쉽게 알고 싶으냐. 산승이 그대들을 위해 설파해 주겠다.
법마다 항상하고 법마다 그러하여 멸함과 가고 옴이 없이 예나 지금이나 항상하니 무어라고 불러야 되겠는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알겠느냐. 여러분들이여, 이것이 바로 그대들이 갈 곳이 아니겠는가. 또한 마음 밖에 법이 없어 마음마다 자재함이 아니겠느냐. 모두 다 온다 해도 가는 곳은 하나일 뿐임이 아니겠느냐.
여러 스님네들이여, 오늘 태위가 이처럼 불법을 정중히 공경하니, 이 모두가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와야만 이럴 수 있으며, 절을 짓고 스님들께 공양하니 이는 내생의 인과가 될것이다.
여러 스님네들이여, 일이 있거든 나와서 대중을 위해 의심을 결단하라."
명진대사(明眞大師 : 弘瑫)가 물었다.
"무엇이 삼봉(三鋒)에 떨어지지 않는 일입니까?"
"이처럼 눈을 갖고 졸다니…."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어찌하면 될지 알겠느냐?"
보복(保福)스님이 물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제쳐두고 어떻게 거론[擧揚]해야 합니까?"
"눈앞도 모르는군요."
태위가 물었다.
"모든 성인은 세간에 나오지 않으셨으니 대사께서도 말씀하지마십시오."
"이렇게 전도되다니…."
"바로 제가 전도되었습니다."
"불법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는 대신 말씀하시기를, "바로 스님께서는 전도되지 않았습니다" 하고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태위, 지금으로부터 옛날까지 이럴 뿐입니다. 이해했습니까? 깨달았습니까? 알았습니까? 태위가 있는 그대로를 알아차렸다면 무엇 때문에 알지 못합니까? 알든 모르든 그럴 뿐입니다. 오래 서 있었으니 몸조심하라."
스님께서 초경스님에게 물으셨다.
"어제는 어디 갔었는가?"
"그냥 있었습니다."
"알았네."
"뭘요, 부끄럽습니다."
"어떻게 하려는가?"
"항상 그렇습니다. 스님이시여."
"제공(帝公)은 어떤가?"
"그렇고 그렇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옳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렇지, 그래."
"알았습니다, 알았어요."
태위가 객사(客司)를 시켜 소(疏)를 보내 스님을 초경원으로 모셔 상당법문을 해주십사 하고 청하니 스님께서 객사에게 말씀하셨다.
"태위에게 말을 전하게. 꼭 설법을 한다고."
태위는 다시 객사를 보내 "군(郡) 사람들 모두가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말을 전하였다.
스님께서는 "말이야 잘한다만 그런 게 아니다" 하더니 대신 말씀하셨다.
"제공(帝公)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