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현사록玄沙錄

[현사록 下] 2~10.

쪽빛마루 2015. 6. 18. 23:32

2.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나는 석가와 동참(同參 :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법을 묻는 일)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석가와 함께 동참한다고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어떤 사람을 찾아뵈었는지요?"

 "낚싯배 위의 사씨네 셋째 아들이라네."

 

 설봉스님께서 물으셨다.

 "어떤 사람이 비두타(備頭陀)인가?"

 "감히 속임수로 사람을 겁주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대중운력으로 땔감을 나르던 차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모조리 내 힘을 입는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힘을 입는다고 한다면 무엇 때문에 대중운력을 합니까?"

 "대중 운력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땔감을 얻어서 돌아가겠느냐?"

 

 대중운력으로 보리타작을 하는 차에 갑자기 스님께서 땅에 엎어지면서 아야, 아야! 하고 소리쳤다. 대중이 모조리 그 앞으로 달려가서 물었다.

 "스님, 괜찮으십니까?"

 "너희 삼사백명이 모조리 나의 밥통 위에 올라와 치고 있는데 나더러 어떻게 편안하란 말이냐."

 

3.

  상당하여 한참을 잠자코 있자 대중들이 모두 말하기를, "스님께서 설법하지 않는다면 몽땅 흩어지겠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스님께서 꾸짖으셨다.

 "보아하니 모조리 똑같구나. 한 사람도 지혜로운 안목을 가진이가 없구나. 내가 입만 열었다 하면 모두가 말에서 찾고 생각으로 헤아리니, 내가 진정 너희를 위했는데도 도대체 아무도 모르는구나. 보아하니 정말 어렵겠구나, 정말 어렵겠어."

 

4.

 상당하여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들을 위하느라고 대단히 피곤하다 알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고요하여 아무 말도 없을 땐 어떻습니까?"

 "잠꼬대를 해서 무얼하는가?"

 "본분의 일을 스님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게 잠만 자서 무얼하는가."

 "저는 눈 감고 자지만 스님께선 어떻습니까?"

 "어떻게 이처럼 아프고 가려운 것도 모르는가."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애석하다, 스님네들이여. 천리 만리를 행각한다 말하나 여기에 이르러선 자면서 하는 잠꼬대는 필요치 않다. 당장 꺽어버려야 하리라."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지도해 주십시오."

 "나는 그대를 다 지도해 주었다. 알았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옛부터 내려오는 종승(宗乘)을 어떤 이론으로 설명하시겠습니까?"

 "들을 사람이 없다."

 

 한 스님이 물었다.

 "제게 절실하고도 가까운 것을 스님께서는 한 말씀 해주십시오."

 "알면 됐다."

 "스님께선 당장 말씀해 주십시오."

 "귀머거리가 되어 무얼 하겠느냐."

 

5.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모든 스님네(禪德)들이여, 여러분은 여러 지방을 행각하고 다니면서 나는 참선하여 도를 배우노라 하는데 어디 대단한 곳이라도 가 보았는가. 그저 여기저기 다니며 묻기만 하였는가? 있다면 한번 말해 보라. 내가 그대를 위해 증명해 주겠다. 나는 시비를 다 알고 있다. 여러분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느냐? 만약 없다면 그대들이 여기에 찾아오기까지 흙덩이를 쫓았을 뿐임을 알아야 한다.

 나는 지금 그대들에게 묻겠다. 여러분에게도 눈이 있는가. 있다면 지금 바로 알아야 한다. 알았느냐. 모른다면 태어나면서부터 눈 멀고 귀 먹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도 되겠는가. 이런 말을 긍정하겠는가?

 모든 스님네들이여, 스스로 물러나지 말라. 그대가 바로 진실이다. 언제 일찍이 이러한 사람이었겠는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그대를 정수리 위에 붙여 놓는다 해도 감히 조그만큼도 잘못 붙이지 않는다.

 '이 일은 나만이 알 수 있다'라고 말하던 것이 지금은 계속 전해져서 모조리 '저 석가에게서 받았다'고 한다. 나는 석가가 나와 함께 동참한다고 말하는데, 그대들은 누구와 동참한다고 말하겠는가.

 알았느냐. 알기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전적으로 큰 깨달음이어야 한다. 만일 깨달음에 한계가 있다면 직접 도달할 수 없다. 그대는 큰 깨달음을 아는가? 해골바가지의 망상을 깨달음의 작용이라고 오인해서는 안된다. 그대는 공을 설하고 유를 설하며, 이쪽을 설명하고 저쪽을 설명하며, 세간법이 있다 하거나 어떤 것은 세간법이 아니라 해도 안된다. 스님네들이여, 허공도 오히려 미혹한 망상으로 허깨비같이 생겨난 것이다.

 지금 크게 긍정하기만 한다면 어느 곳에 이러한 명칭과 설명이 있겠는가. 허공도 기미가 없는데, 어느 곳에 3계(三界)에 가는 업의 순서가 있겠는가. 부모의 인연으로 태어나서 말뚝[樁]처럼 앞뒤에 섰다. 이런 것들이 지금 없다고 해도 거짓말인데 하물며 있다 한다면 어찌되겠는가. 알았느냐.

 그대들은 많은 세월을 행각하면서 모두들 깨달은 일이 있다고 말들 한다. 나는 지금 그대들에게 묻겠다. 높은 산 바위 언덕, 사람의 자취가 아득히 끊긴 곳에도 불법이 있겠는가? 재량하여 분별할 수 있느냐. 재량하여 분별하지 못한다면 끝내 가망없으리라.

 나는 평소에 말하기를, '죽은 중의 면전이 바로 눈에 부딪치는 대로 보리며, 만리를 뻗치는 신비한 빛이 정수리의 뒷모습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5음18계(五陰十八界)를 벗어나고 그대의 해골바가지 앞의 생각을 벗어났다 해도 무방하다. 이렇지 못한 자라면 누가 그를 위해 증거를 보여주겠느냐.

 여러분들이여, 내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시방세계가 다 몰려온다 해도 바로 진실한 사람이 그대 자신일 뿐이다. 어느 곳에 다시 망상의 가리움을 풀어줄 만한 법이 있겠는가.

 알았느냐, 믿느냐. 이해해서 알아차렸느냐. 매우 노력해야만 하리라. 몸조심하라."

 

6.

 상당하여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시기를, "알았는가, 분별했는가" 하고는 문득 방장으로 돌아가셨다.

 

7.

 상당하여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그대는 진실한 사람 그대로이다."

 

8.

 상당하여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통달했느냐, 지금 보고 있는데, 그대들도 보는가?"

 

9.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모두가 한 알의 밝은 구슬일 뿐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모두가 한 알의 구슬일 뿐이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저는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지적해 보여 주십시오."

 "전체가 이것인데 다시 누구더러 알게 해달라고 하겠는가."

 "전체가 이것이긴 하나 모르는 데야 어찌합니까."

 "알고 싶거든 그대의 눈에게 물어라."

 

 한 스님이 물었다.

 "험악한 길에서는 무엇으로 나루터를 삼아야 합니까?"

 "그대의 눈으로 나루터를 삼아라."

 "얻지 못한 자는 어찌합니까?"

 "빨리 참구해야지."

 

10.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험악함을 보거나 호랑이와 칼 등 갖가지 일이 닥쳐와서 그대의 신명을 위협하는 것을 보면 문득 한없는 공포심을 낸다. 이는 흡사 세간의 화가가 스스로 지옥변상도를 그리고, 호랑이와 칼을 그려놓고는 좋다 하며 보다가 도리어 공포심을 내는 것과도 같다. 이는 역시 다른 사람이 그대에게 허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대로 지금 이 허깨비의 현혹을 면하고 싶으냐. 금강(金剛)의 눈동자를 알기만 하면 된다. 알기만 하면 가느다란 티끌만큼도 드러내게 하지 못하는데, 어느 곳에 다시 호랑이와 칼이 있어 그대를 위협하며 겁줄 줄을 알겠는가. 나아가 석가부처님에게도 이 같은 재주는 나올 곳을 찾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나는 그대들에게 말한다. 사문의 눈은 세계를 꽉 잡고 천지를 담아 덮어서 실낱만큼도 새나가지 못하게 하는데 어느 곳에 그대가 알아야 하는 그 무엇이 또 있겠느냐고. 이러한 해탈, 이러한 대단함을 어찌 참구하지 않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종문 가운데의 일입니까?"

 "눈 감고 졸아서 무얼하느냐."

 "스님께서는 왜 학인을 지도하지 않으십니까?"

 "이 멍청아!"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눈입니까?"

 "콧구멍을 막아라."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에게 말한다. 수시로 길이 해골바가지를 막고 콧구멍을 갈아부쉈는데도 그대가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고. 그러므로 '해골바가지가 항상 세계를 관여하고 콧구멍이 가풍을 갈고 저촉한다'고 하는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학인 본분의 일입니까?"

 "이것이 그대의 본분사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겁화(劫火)가 활활 타며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태울 때 이 사람은 어찌됩니까?"

 "해골바가지의 뒤이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금강역사(金剛力士)입니까?"

 스님께서는 입으로 한 번 훅하고 불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너를 묻어버리겠다."

 한 스님이 물었다.

 "12분교는 필요치 않습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12분교는 필요치 않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은 모두가 눈을 깜짝이며 봄으로써 사람을 지도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무엇으로 사람을 지도하십니까?"

 "나는 눈을 깜짝이고 보는 것으로 사람을 지도하지는 않는다."

 "저는 여기에서 무엇 때문에 말하지 못할까요?"

 "조금 전에 그대의 입을 막았는데 어떻게 말할 줄 알겠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발을 들고 발을 딛는 것이 도량 아님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도량입니까?"

 "너를 묻어버리겠다."

 "무엇 때문에 이처럼 보기가 어렵습니까?"

 "너무 가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