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현사록玄沙錄

[현사록 下] 11~12.

쪽빛마루 2015. 6. 18. 23:33

11.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마치 큰 바닷속에서 머리까지 물 속에 잠그고 앉아 손을 펴며 마실 물을 구걸하는 것과도 같다.

 반야를 배우는 보살이라면 큰 근기를 갖추고 큰 지혜가 있어야만 한다. 근기가 둔하다면 밤낮으로 부지런히 정근하여 피로를 잊어야만 한다.

 말만을 기억해서는 안되니 다른 사람이 따져 물으면 갈 곳이 없다. 선상에 앉은 늙은이 중에 한 분류는 선지식이라 자칭하면서 물었다 하면 몸을 흔들고 손을 저으면서 혀를 빼물고 눈을 동그랗게 뜨곤 한다. 또 다른 부류들은 '또렷하고 신령한[昭昭靈靈] 마음의 지혜로운 성품이 5온의 몸 속에서 주인노릇을 한다'라고 말들 한다. 이렇게 해서 선지식이 되었다면 사람들을 크게 속이는 것이다.

 나는 지금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가 또렷하고 신령한 것을 그대의 진실이라고 인식한다면 무엇 때문에 눈을 감고 잘 때는 또렷하고 신령하지 못하는가. 잘 때는 이렇지 않다면 어떻게 또렷또렷할 때가 있겠느냐. 아는가. 이것을 도적을 자식으로

오인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생사의 근본이며 망상의 인연이 되는 기운이다.

 그대는 또렷하고 신령한 이것을 알고 싶으냐. 눈앞의 티끌경계인 색 · 성 · 향 등의 법을 인하여 분별이 있게 되는데 이것을 또렷하고 신령한 것이라고들 한다. 만일 앞에 나타나는 티끌경계가 없다면 그대의 또렷하고 신령한 이것은 거북 털이나

토끼 뿔과 같다.

 여러분들이여, 진실이 어느 곳에 있느냐. 그대가 5온신의 주인에서 벗어나고 싶거든 비밀한 금강의 몸을 알아야 한다. 옛사람이 그대들에게 말하기를, '원만히 성취된 정변지(正遍知)가 항하사 세계에 두루해 있다'라고 하였다.

 그대는 해를 보느냐. 세간 사람들이 몸을 돌보고 생명을 살려나가는 갖가지 마음씀이 햇빛의 힘을 받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그런데 해 자체가 여러 개이더냐 혹은 두루하지 못한 곳이 있더냐. 이 금강 자체를 알고 싶으냐. 그것도 마찬가지다.

 지금 산하대지와 시방국토와 색공명암(色空明暗)과 그대의 몸과 마음이 이 원만히 성취된 굉장한 빛을 받지 않고 나타난 것이 없는데 어째서 그런 줄 모르고 남을 따라 귀신의 세계에서 살 궁리를 하는가. 그렇게 자신을 속이기만하다가 홀연히 덧없는 죽음의 경계가 찾아온다면 눈이 휘둥그래 마치 산 채로 거북이 껍질을 벗기는 것과 같으리라. 알았는가.

 편암함 없는 3계가 마치 불난 집 같은데, 그대들은 아직 안락함을 얻지 못한 사람이다.

 그대들의 부모가 그대를 출가하도록 놓아주었고, 시방의 시주들이 그대들에게 밥과 옷을 공양했으며, 토지신 용신이 그대들을 보호했다. 모름지기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은혜를 알아야지 긴 선상 위에서 머리수나 채우고 있어서는 안된다. 죽과 밥으로 그대를 봉양한다 해도 문드러진 겨울 참외같이 변하여 흙 속에 묻히는 것과 같은 꼴이 된다.

 업식(業識)은 분주하여 의거할 만한 근본이 없다. 대지 위의 굼실거리는 생명들을 나는 영원히 지옥에 안주하는 것들이라 부른다. 지금 이를 깨닫지 못한다면 뒷날 모조리 변하여 나귀와 말의 태(胎) 속으로 들어가 끌려다니면서 재갈을 물고 안장을 지리라. 정말 쉽게 들을 일이 아니니 크게 두려워해야 한다. 이 번뇌의 악업인연은 한 겁이나 두 겁에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금강과 수명을 같이한다. 알겠는가."

 

 한 스님이 모시고 섰는데 스님께서 눈앞의 땅에 흰 점을 보더니 지팡이로 지적하면서 그 스님에게 물으셨다.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이처럼 세 번을 물어 보았다고 대답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도 보고 나도 보았는데 무엇 때문에 말할 줄 모르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꿰맨 흔적이 없는 탑[無縫塔]입니까?"

 "이 바늘땀[縫] 하나 정도의 크기다."

 

 스님께서 땔감을 쪼개다가 호랑이를 보았다. 한 스님이 "스님! 호랑입니다!" 하자 "그대가 호랑이다" 하셨다. 그 뒤 절로 되돌아 오자 그 스님이 찾아와서 더 자세한 법문을 청하였다.

 "스님, 오늘 호랑이를 보았다고 하였더니 바로 저라고 하셨습니다. 그 높은 의미가 무엇입니까?"

 "사바세계에는 네 가지 극히 중요한 일이 있는데, 이를 꿰뚫은 사람이라면 5음18계를 벗어난다 해도 무방할 것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대이삼장(大耳三藏)은 세번째에 가서는 무엇 때문에 충국사(忠國師)를 보지 못했습니까?"

 "그대는 앞서 두 차례는 보았다고 하겠는가?"

 

 스님께서 능도자(稜道者)에게 편지를 보내 "내게 일이 있는데 그대가 헤아려 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능도자가 하산하여 스님 처소에 왔다.

  밤이 깊도록 모시고 서 있었으나 모두가 말이 없었다.

  운판이 울릴 때가 되어서야 스님께서 "도자야!" 하고 부르자,

능도자가 "녜"하고 대답하였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운판이 울렸으니 죽을 먹어라."

 

 한 스님이 물었다.

 "저는 무엇 때문에 말을 할 수 없습니까?"

 "그대의 입을 막았는데 어떻게 말할 줄 알겠느냐."

 

 설봉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모른다면 가섭의 문으로 들어가라" 하시니 그때 한 스님이 설봉스님께 물었다.

 "어떤 것이 가섭의 문입니까?"

 "실낱만큼도 보지 않아야 한다."

 한 스님이 이 이야기를 거론하니 스님께서 듣고는 말씀하셨다.

 "맹씨네 여덟째 아들이 또 이렇게 하다니."

 그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가섭의 문입니까?"

 "가섭의 문으로 들어가기만 하라."

 

 설봉스님께서 원숭이 한 떼를 보고는 스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옛 거울이 하나씩 있는데 이 원숭이에게도 한 개의 옛 거울이 있구나"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스스로 비출 수 있습니까?"

 "노승이 주지살이하기가 번거로워서...."

 

 설봉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계의 크기가 한 자면 옛 거울의 크기도 한 자이고, 세계의 크기가 한 길이면 옛 거울의 크기도 한 길이다."

 그러자 스님께서 화로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이것은 크기가 얼마나 됩니까?"

 "옛 거울의 크기와 같구나."

 "이 늙은이는 발꿈치가 땅에 닿지 않았구나."

 

12.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허공과 해는 모든 사람을 성립시키는데 허공은 눈앞에 있다. 여러분은 어찌하여 눈에 가득해도 보지 못하고 귀에 가득해도 듣지 못하는가. 이 두 곳에서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눈 감고 자는 놈이다. 만약 철저하게 밝혔다면 앉은 자리에서 범부이자 성인이고 앉은 자리에서 3계이다.

 꿈 같고 허깨비 같은 심신은 바늘끝만큼도 연(緣)이 되거나 상대가 되는 일이 없다. 설사 모든 부처님이 나와서 무한한 신통변화를 나타내고, 많은 가르침의 그물을 편다 해도 한 털끝만큼도 한 것이라고는 없고 단지 초학들을 진실하게 믿게 하

는 방편을 도울 뿐이다. 알았는가.

 물과 새, 나무, 수풀들도 법요를 펼칠 줄 안다. 그들은 매우 분명하게 펼치는데 듣는 사람이 적을 뿐이니 이는 작은 일이 아니다.

 천마와 외도는 은혜와 의리를 저버리고, 천상 · 인간 등 여섯 갈래는 스스로를 속인다. 지금 사문은 이 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도리어 그림자나 희롱하는 놈이 되어 생사의 바닷속에서 떴다 가라앉았다 하니 어느 때나 쉬겠는가.

 다행히도 자기에게 이 위대한 종문의 가풍이 있는데도 계승하지 못하고 다시 5온의 몸에서 주인노릇을 하고 있으니 꿈엔들 보겠느냐. 그 많은 마음밭에 뉘더러 주인이 되게 하겠는가. 대지는 싣고 일어나지 못하며 허공은 포용을 다하지 못하니, 어찌 작은 일이랴.

 철저하게 깨치고 싶다면 바로 여기에서 분명히 깨쳐야 한다. 그대들에게 미진만큼의 법도 갖게 하지 않으며, 그대들에게 털끝만큼의 법도 버리게 하지 않는다. 알았는가."

 그 때 한 스님이 물었다.

 "옛 부터 내려오는 종지는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묵묵히 말이 없자, 그 스님이 거듭 질문하니 그를 꾸짖으셨다.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방편문으로 저를 들어가게 하시렵니까?"

 "들어가는 그것이 방편이다."

 

 한 스님이 물었다.

 "초심자가 찾아오면 스님께서는 어떻게 지도하시겠습니까."

 "어디서 초심을 얻어 왔느냐?"

 

 한 스님이 물었다.

 "저는 처음으로 총림에 들어왔습니다. 스님께서는 지도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주장자로 그를 가리키니 그 스님이 "저는 모르겠습니다."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이처럼 그대를 위했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굴욕을 당하다니. 지금 분명히 스스로 자기자신을 긍정하기만 한다면 총림에 들어와 배우는 것을 논할 것이 없다. 이는 여러 사람이 함께 오랫동안 실천하여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그것은 마치 온 바닷물을 모든 물고기와 용들이 처음 나서 늙을 때까지 모두가 평등하게 삼키고 토하고 쓰는 것과도 같다. 그러므로 '초발심한 자가 모든 부처님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대는 시작

없는 오랜 겁으로부터 모든 망정을 요동하여 번뇌를 얽어 이루었느냐. 마치 중병 든 사람이 마음이 미치고 열이 나면 전도된 상을 어지럽게 보나 도무지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는 것과는 같다. 지금 보는 경계도 모두가 이와 같이 그대의 6근을 대하여 모조리 전도됨을 이룬 것이다.

 옛사람은 무궁한 묘약으로 병에 따라 치료하였는데 10지(十地)에 가서도 또렷또렷한 경계를 얻지 못하였으니 정말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옛사람은 마치 돌아가신 부모를 생각하듯 하였으나 지금 사람들은 등한히 하는 것 같으니 어느 곳에 그대를 위해 깨달아 줄 사람이 따로 있겠는가. 애석하다. 시간을 헛되게 보내다니, 빈틈없이 스스로 참구한다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자세히 관찰하고 살펴서 노력할 곳이 없는 데에 이르면 모든 인연이 저절로 쉴 것이다.

 설사 싹이 트지 않았다 해도 종자는 있다. 만일 모두 모여 내게만 의지하고 곁에서 북이나 치면서 밥먹고 죽먹은 기운을 놀린다면 이 경황없는 것을 가지고 생사를 떨쳐버렸다 하면서 그대의 일생을 속인다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응당 여실히 알아야만 하리라. 무사하고, 몸조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