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태고록太古錄

[태고록 上] 1. 상당법어 2.

쪽빛마루 2015. 7. 2. 05:51

2. 봉은선사(奉恩禪寺)에서 하신 설법*

 

 

지정(至正) 16년(1356) 병신 3월 6일에 현릉(玄陵)이 스님을 봉은선사(奉恩禪寺)에 청해, 들어와서 대원나라 황제를 위해 특별히축원하게 하였다.

 

 스님께서 법당에 올라가 절 앞문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큰 도는 문이 없는데 여러 스님은 어디로 들어가려 하는가. 앗[咄]! 원통(圓通)의 큰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불전(佛殿)에서는, "천년 전에는 내가 당신이더니, 2천년 뒤에는 당신이 나로구나. 하마터면 누설할 뻔했다" 하고 세 번 절하셨다.

 태조전(太祖殿)에서는, "당신은 3한(三韓)의 할아버지요, 나는만법(萬法)의 왕이다. 옛날에 서로 만나 그 일을 논했더니, 지금다시 만나 은밀히 거래하는구나" 하고는 악! 하고 할을 한 번 하셨다.

 그리고 방장실에서는, "여기 일없는 신(神)과 들귀신의 굴에서오늘은 갑자기 우뢰소리가 땅을 흔드는데, 모두 흩어지면 어디로갈는지 모르겠구나" 하시고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물가에서 흩어진 뒤에 모래밭 갈매기가 주인이 되었구나."

 주지실에서는 주장자를 들어 한 번 내리친 뒤에 "여기서는 부처가 와도 때리고 조사가 와도 때린다" 하시고 또 한 번 내리치셨다.

 문하시중 상국(門下侍中相國) 이제현(李齊賢)이 축원문[疏文]을드리니 스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대중에게 보이면서 말씀하셨다.

 "국왕께서는 바른 법을 보호해 지키시고, 나라와 백성을 보호하시며 선지중예삼매(善知衆藝三昧)에 드시는 줄을 아는가. 보지 못하거든 유나(維那)를 번거롭게 하여 대중을 위해 축원문을 들려주게 하리라."

 그리하여 유나는 축원문을 다 읽었다.

 스님께서 만수가사(滿繡袈裟) 들고 말씀하셨다.

 "이 한 벌의 만수가사는 우리 어지신 임금님의 본심 속에 있는지혜의 칼날을 번쩍여 만드신 것이요, 지극한 정성을 걸러 지은것이다. 다섯 가지 빛깔이 서로 비꼈으니 의로운 하늘에 별빛이찬란하고, 일곱 가지 보배로 둘러쌌으니 지혜 바다에 물결이 넓고맑다. 적성(赤城 : 궁궐)의 놀 기운은 왕성하고 옥액(玉掖 : 궁궐)의향 연기는 가득한데, 보배로운 새와 기이한 짐승은 우리 임금님의만 대 상서를 드리고, 상서로운 풀과 바위의 꽃은 우리 황후의 오랜 봄빛을 펼친다. 이것은 비로자나의 보배로운 옷이 아니며 석가의 낡고 때묻은 옷이 아니니, 말해보라. 어떤 사람의 신분에 맞는 옷인가?"

 곧 그 가사를 입고 말씀하셨다.

 "갑자기 사강락(謝康樂 : 중국 南朝 송나라 시인 謝靈運)을 놀라게 할 시흥(詩興)이 내 옷에서 일어나는구나. 옷깃 앞의 숲과 골짜기는 어두운 빛을 거두었고, 소매 끝의 구름과 노을은 저녁 비를 거둔다. 앗!"

 또 법의를 들고는 말씀하셨다. "이 만수가사는 지금까지의 불조가 전하신 위없는 복밭의 큰 해탈의 옷이요, 또 우리 본사 석가화상이 마하가섭에게 전하여 대대로 이어오다가 33조 대감(大鑑 : 육조 혜능) 존자에 이르러 다툼으로 끊어진 것인데, 어떻게 해서 왕궁에서 나와 이 산승의 손에 왔는가. 사람들이 들불이 태워도 없어지지 않다가 봄바람이 불면 또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다시 대중을 불러 "나를 따라 머리에 이었다가 입으시오" 하시며 대중과 함께 입으시고는 그 한 자락을 들고 대중을 불러 말씀하셨다.

 "보는가. 대중 스님과 나만이 입은 것이 아니다. 시방세계의 허공과 대지의 삼라만상과 성인과 범부, 유정 · 무정과 모든 일과 물건이 한꺼번에 다 입었다. 앗!"

 법좌를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백천의 불조가 여기서 고약한 냄새를 풍겨 사바세계에 가득하였다. 오늘 이 산승이 사대해의 물을 기울여 그것을 깨끗이 씻는것이니, 대중 스님은 너무 어수선하다고 하지 말라."

 다시 법좌에 올라가 향을 피우고는 말씀하셨다.

 "이 향의 뿌리는 대천 항하사 세계에 서렸고, 잎은 백억의 수미산을 덮었다. 받들어 축원하오니, 오늘날의 황제이신 대원나라 천자, 만세, 만만세를 누리시되, 그 덕은 만방에 다다라 태평의 순일(舜日 : 舜은 중국 고대의 성군)은 길고, 그 은혜는 사해를 적셔무위(無爲)의 요풍(堯風 : 堯는 중국 고대의 성군)은 길이 부소서.

 또 이 향은 성인도 여기서 나고 범부도 여기서 난다. 받들어 축원하오니, 황후 전하의 수명이 하늘과 같으시되, 날마다 때마다상천(上天)의 은택을 길이 받들고, 세세생생 항상 모든 부처님의어머니가 되소서.

 또 이 향은 거룩함은 안으로 신통하여 만덕의 위엄을 머금었고,맑음은 밖으로 오묘하여 모든 신령의 두려운 위의를 나타낸다. 받들어 축원하오니, 황태자 전하께 천세, 천세 또 천세를 누리시되, 효도의 이치는 날로 자라나 위로 하늘의 은혜를 갚고, 덕스러운 계획은 날로 더해 밑으로 백성들을 고통에서 건지소서.

 또 이 향은 높고 넓어 모든 법의 왕으로서 분명히 6범(六凡 : 지옥 · 아귀 등 여섯 가지 범부의 세계)의 주인이 된다. 받들어 축원하오니, 본국의 우리 대왕 전하께서 천년, 천년 또 천년을 누리시되, 지혜는 해보다 더해 더욱 찬란한 빛을 내시며, 수명은 진공(眞空)과 같아 항상 젊고 늙지 마소서.

 또 이 향은 지극히 고요하고 밝아 그 덕스러운 작용을 머금었고, 신령한 신통은 커서 그 참된 상서를 나타낸다. 받들어 축원하오니, 숙옹(肅雍)공주 전하께서 천년, 또 천년을 누리시되, 수명은 산처럼 높아 봉황의 아들과 용의 손자가 더욱 번창하시고, 복은 땅처럼 두터워 금지옥엽(金枝玉葉)이 길이 무성하소서.

 또 이 향은 온갖 덕을 거느려 그 몸이 되었고 온갖 어둠을 녹여눈이 되었다. 받들어 축원하오니, 문예(文睿)왕후 전하께서 천년,천년 또 천년을 누리시되, 크신 충성은 주왕(周王)의 지혜로운 어머니와 꼭 같으시고, 원만한 복과 지혜는 부처님의 인자한 어머니와 같으소서.

 또 이 향은 백천 삼매의 근원이요 무량한 묘한 이치의 체성(體性)으로서, 불교에서 쓰면 6도만행(六度萬行)이요 유교에서 쓰면삼강오상(三綱五常)이다. 다음으로 축원하오니, 어향사 금강길(御香使 金剛吉)로부터 본 조정의 여러 관인(官人), 재상 등 모든 관리들의 수명과 녹(祿)이 길어지고 늘어나소서. 복된 인연이 자재하되, 날 때마다 언제나 제왕의 충신이 되어 안으로 왕도를 편안히 하고, 세상마다 항상 불조의 좋은 벗이 되어 밖으로 불법을 보호하소서.

 또 이 향은 부처님네가 주고받은 것이며 조사님네가 서로 전한 것으로서, 공경하는 이에게는 그 가치가 사바세계보다 중하고, 비방하는 이에게는 한푼의 가치도 없는 것이다.

 지정 정해년(1347)에 대원(大元) 천하의 영녕당(永寧堂)에서 조서를 받고 눈속임으로 법을 설하여 사람과 하늘로 하여금 함께 증명하게 하여 단박에 부동지 부처[不動智佛]의 세계를 뛰어넘으려하였다. 그러나 시절과 인연이 이르지 못하여 소설산(小雪山)에들어가, 날마다 샘물과 돌과 함께 고요함을 즐기면서 여생을 보내

려 하였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본국 대왕이 전날의 약속을 잊지않고, 다시 봉은사(奉恩寺)로 청하시는 명령을 받들게 되었다. 그리하여 수미대 위에서 사람과 하늘의 대중 앞에서 아직 보고 듣지못한 이를 위해 다시 향을 집어들고 향로에 향을 피워 남방의 큰종사 석옥 대화상에게 공양함으로써 법의 젖을 먹여 길러주신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옳다고 하면 금을 노랗다고떠들어대는 것이요, 옳지 않다고 하면 기린에 뿔이 하나 있는 것이니 마음대로 생각하시오."

 법좌에 오르시매 수좌[行首]가 백추를 치며 말하였다.

 "이 법연(法筵)의 용상 대중 스님네는 부디 으뜸가는 이치를 보아야 합니다."

 스승께서 법요(法要)를 설하셨다.

 "향상의 한 길은 천 분 성인도 전하지 못한 것이니 말해보라.전하지 못한 그것이 무엇인가? 거기서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만리의 차이가 생길 것이다. 알고 묻는 이에게도 몽둥이 30대를줄 것이요, 모르고 묻는 이에게도 몽둥이 30대를 줄 것이다.*

 석가 늙은이도 ‘모든 부처의 보리는 일체의 언어와 문자를 떠났다' 하셨는데 하물며 우리 최상 종승(宗乘)에서 어찌 작용과 말을쓰겠는가. 작용이란 정신을 희롱하는 것이며, 말이란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진정한 법문[擧揚]이라면 3세의 부처님네도 벽에다 입을 걸어 두어야 할 것이요, 역대의 조사님네도 풀 속에 몸을 감추어야 할 것이다. 임제스님은 누구나 그 문에 들어가면 대뜸 할을 하시고 덕산스님은 누구나 그 문에 들어가면 대뜸 방망이로 때리셨으니, 그 무슨 아이들의 장난인가.

 이 산승은 진작부터 이런 일을 알았지마는 굳이 빈 손으로 구름처럼 돌아다니면서 스승을 찾고 도를 구했으니, 그것은 마치 머리위에 머리를 포갠 것 같아 한갓 사람들의 의심만 샀었다. 냉정히생각해 보면 사람들에게 부끄럽고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므로 본국에 돌아와 산골에 몸을 감추고 세상 사람들에게 불법을 천하게팔거나 조사의 도풍을 파묻어버리지 않고, 다만 이런 한가하고 넓은 곳에 소요하면서 쾌활하게 일생을 지내려 하였다. 그러나 헛된이름이 어지럽게 퍼져, 오늘 외람되게 국왕의 무거운 청을 받아이 자리에 올랐으니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나 어찌할 수 없어그저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오늘 큰선지식이 세상에 나왔다 하니, 참으로 한바탕 웃음거리일 뿐이다.산승이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이미 잠꼬대인데, 대중 스님네는 무엇 때문에 눈 뜨고 조는가."

 주장자로 법상을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모든 변화의 근원이요 만물의 어머니로서 그 덕은 항하사 세계에 입혀지고 그 도량은 온 법계를 싼다. 성인 중의 성인은 대원나라 천자요, 현인 중의 현인은 본국의 대왕이신데 경사가 한꺼번에모이니 은혜가 만대에 흐른다. 도로써 마음을 삼으니 달이 허공에밝고 어짐으로 정치하니 해는 한낮에 우뚝하다. 바로 이 때에 금향로의 향기는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옥전(玉殿)의 물시계는 느릿느릿하다. 태고(太古) 소승(小僧)은 다시 어떤 법으로 축원하고도와야 할까."

 다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도가 펼쳐졌으니 천자의 명령을 전할 것 없고, 시절이 맑으니태평가 부르기를 그친다.* 옛날 양 무제(梁武帝)가 예를 차려 달마조사를 맞이하여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님 진리의 으뜸가는이치[第一義]입니까?’ 조사는 '텅 비어 부처도 없다' 하였다. 무제가 다시 ‘지금 내 앞에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하고 물으니조사는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이것이 중국[東土]에 최초로 선지(禪旨)를 드날린 광경이다.

 오늘 본국 대왕께서 나를 청해 종승을 들어 보이라 하시기에,위로는 황제와 황후 그리고 태자를 위해 축원하고, 중간으로는 사람과 하늘의 대중을 위해 축원하며, 밑으로는 관리와 백성들을 위해 큰 법보시를 베풀어 주었으나 나는 지금 한 글자도 말하지 않았고, 대왕도 한 글자도 듣지 않으셨다. 이것이 양 무제가 달마조사와 문답한 것과 같은가, 다른가. 만일 가려낸다면 지혜 눈[一隻眼]이라고 인정할 것이고 가려내지 못하면 이 한 곡조를 들으라."

 

태고의 소리는 가장 가깝고도 절실한데

애석하다, 시절은 꽃 지는 봄일세

그대에게 다시 한잔 술 권하노니

서쪽 양관(陽關) 나서면 친구 없으리.

太古音最親切 可憐時節落花春

勸君更盡一盃酒 西出陽關無故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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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답한 것은 적지 않는다.【원문 주】

* 이 이야기는 적지 않는다.【원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