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태고록太古錄

[태고록 上] 1. 상당법어 4~8.

쪽빛마루 2015. 7. 2. 06:03

4. 다시 삼각산(三角山) 중흥선사(重興禪寺)에

    주지로 들어가면서 하신 설법

 

 

 산문(山門)에 이르러 말씀하셨다.

 "옛날에도 이 문으로 나오지 않았고, 오늘도 이 문으로 들어가지 않으며, 중간에도 머무는 곳이 없다. 대중은 어디에서 이 태고 노승이 유희하는 곳을 보는가."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북쪽 산마루에 한가한 꽃은 비단처럼 붉은데, 앞 시내에 흐르는 물은 쪽빛같이 푸르구나."

 그리고는 또 두 번 내리치셨다.

 

 

5. 희양산(曦陽山) 봉암선사(鳳岩禪寺)에

    주지로 취임하면서 하신 설법

 

 산문에 이르러 말씀하셨다.

 “3세의 부처님네가 모두 이문으로 드나드셨다. 말해 보라. 오늘 이 산승은 나오는 것이냐, 들어가는 것이냐. 이 노승은 나오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는다. 무엇이 나오지도 않고 들어가지도 않는 도리인가?”

 주장자로 세 번 내리치셨다.

 

 

6. 가지산(迦智山) 보림선사(寶林禪寺)에

    주지로 취임하면서 하신 설법

 

 산문에 이르러 말씀하셨다.

 "석가 늙은이가 ‘나는 이 법문을 국왕과 대신에게 부탁하노라’ 하셨으니, 이는 진실한 말씀이다. 오늘 이 태고 노승이 대중 스님 일행과 함께 희양산 밑에서 가지산까지 왔으니, 그 중간의 거리는 천여 리요, 길에 오른 지는 열 나흘 만이다. 남쪽을 향해 걸어올 때, 언제나 길에는 어려움이 없었고, 여기 이르러 원통(圓通)의 넓은 문이 활짝 열렸으니, 이것은 오로지 국왕과 대신이 보호하고 도와주시는 은혜를 입는 것이다.

 대중들이여, 오기는 왔지마는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위로 그런 무거운 은혜를 갚겠는가."

 그리고는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는 "시냇물 소리는 가장 가까운데, 산빛은 어스름하구나" 하시고 또 두 번 내리치셨다.

 불전(佛殿)에서 말씀하셨다.

 "조주(趙洲)라는 고불(古佛)은 '나는 부처불(佛)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것조차 좋아하지 않는다. 옛날에는 내가 바로 너더니 오늘에는 네가 바로 나구나."

 그리고는 향을 사르고 예배하셨다.

 방장실에서 말씀하셨다.

 "범부를 녹이고 성인을 단련하려고 하늘의 풀무를 부나니, 말해 보라. 오늘 누가 이 칼날을 당할 것인가. 앗! "

 

 

7. 자씨산(慈氏山) 영원선사(瑩原禪寺)에

    주지로 취임하면서 하신 설법

 

 산문에 이르러 말씀하셨다.

 "온 땅덩이가 바로 해탈문(解脫門)인데 대중 스님네는 보는가. 만일 보지 못한다면 내[利雄]가 대중 스님네를 위해 보여 주리라."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는 "해탈문이 활짝 열렸으니 대중 스님네는 부디 의심하지 말라. 여러분은 나를 따라오라" 하시고 그 문으로 들어가셨다.

 방장실에서 말씀하셨다.

 "여기는 하나의 좋은 공왕(空王 : 부처)의 방이다. 옛날에는 명리를 찾는 운곡(雲谷)의 굴이더니 오늘에는 청빈한 도인이 산다. 부처가 오거나 조사가 오거나 전혀 관계치 않고, 눈 밝은 납승도 가까이 갈 수 없다. 자, 말해 보라. 누가 이 자리에 버티고 앉아서 부처를 마주하고 교화를 드날리며, 사람과 사물에 응대하겠는가. 쯧쯧! 이 무슨 부질없는 말인고."

 

 

8. 상당(上堂)

 

 상당하여 향을 사른 뒤에 주장자를 가로 잡고 말씀하셨다.

 "분명하고 쓸쓸하며 산뜻하고 텅 비었다. 과거의 부처도 이렇게 살았고 현재의 부처도 이렇게 살며 미래의 부처도 이렇게 살 것이다. 내가 이렇게 들먹이는 것도 이미 잠꼬대인데, 대중은 무엇 때문에 그 자리에서 조는가."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내리친 뒤에 곧 자리에서 내려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