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태고록太古錄

[태고록 上] 4. 가음명 2~3.

쪽빛마루 2015. 7. 2. 06:25

2. 잡화* 삼매가(雜華三昧歌)

 

대방광불화엄경
이 누구의 말이기에 음성이 없나
본사 구담(瞿曇) 노선지식
깨달은 경계가 겹겹이 밝구나

 

넓고 깊고 웅장하여라
자유로운 원음(圓音)은 천둥 같은데
보리도량에서 설법하던 날
해인삼매[海印定] 가운데서 말없이 말씀하셨네

 

그 법 듣고 전한 이 누구던가
문수 · 보현보살의 혀였네
문수 · 보현 두 대사(大士)는
어떤 길에서 이 비결을 들었던고

 

깊고 깊은 이 삼매의 바다에 들면
비로자나의 몸 감춘 삼매이니
문수와 보현은 얼마나 어리석기에
내 집의 더러움을 휘저어 밖으로 흘렸는고

 

슬프고 가여워라 말세 사람들
글 줄을 찾고 셈하기에 마음만 고달퍼라
무한한 선정 속의 말을 들어야 하겠거늘
등 돌리고 듣지 않음을 그 무슨 까닭인가

 

이 가운데 소식은 얼마나 부귀하건데
백천 가지 꽃과 풀이 다투어 봄을 머금었는가
경전 보는 뒷날의 큰 군자들아
보리의 큰 길에서 나루터를 묻지 말라

 

쉬어라 쉬어라 하는데 굳이 남쪽을 돌았는가
발 밑이 바로 보리도량인 것을
그대는 늙은 오랑캐의 말 없던 곳을 보라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낼 수 있느니라

 

깊고 깊으며 어둡고 어두워
묘한 작용은 항하의 모래처럼 끝이 없어라
슬프다, 고금의 권교(權敎)와 소승(小乘)들
단도직입적으로 지적해도 믿지 않누나

 

듣기만 하고서 깨닫지 못하는 지혜없는 이
이를 일러 귀머거리요 벙어리라 하네
본다 하나 보지 못하고 들으면서 듣지 못하는
이런 근기를 위해 모아낸 것이
몽산(蒙山)* 선지식의 삼매공부로다

 

향 피우고 꽃 뿌리는 경황없는 사이에도 신령함이 날카롭고
예불하고 경 외우는 또록또록한 사이에도 신령함은 날카롭네
이 또록또록함으로 이해하고 관(觀)을 지으면
삼매의 이치를 차츰 성취하리라

 

삼매 삼매로다 그 밝음이여
비로자나의 법체가 원성(圓成)*을 나타내네
좋고 좋도다 삼매의 많음이여
좋고 좋은 삼매여, 삼매 삼매가 이루어졌도다

 

화장세계(華藏世界) 바다가 단박 나타나니
화장세계 겹겹이 다함이 없네
나는 일찍이 듣고 보았으나 이제야 믿나니
다니며 놀며 밟아 보리라

 

사바세계는 많은 산과 많은 물이 있고
화장세계 안에는 부동존(不動尊)이 계시는데
위로는 아비 없고 아래로는 손자 없어도
걸릴 것 없고 마음 든든하다네

 

삼칠근(三七斤)을 삼키고 토하고
세 몸[三身]에 입 달린 흔적 없는데
달고 매운 온갖 풀 다 먹으며
언덕 위에도 물살 중에도 언제나 있네

 

물살 가운데 커다란 배 한 척 있는데
모든 나라 사람과 물건을 다 실어도 장애 없나니
한산(寒山) · 습득(拾得)은 큰 원수나 되는 듯
잠깐도 떠나지 않고 항상 같이 있다네

 

매우 친하다가 마음이 멀어져 바다에서 싸우다가
배를 깨뜨리고 진주를 흩을 때에
고기와 용, 새우와 게가 이 보배 얻어
바다밑에 깊이깊이 간직해 두었나니
다니거나 누웠거나 옷 입고 밥 먹을 때
이 보물의 덕을 받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네

 

아야, 아야, 이렇고 이러하나니
요새 사람들 애써 구할까 두렵구나
이 꽃이 물을 따라 흘러오지 않았던들
진(秦)나라 사람들 어찌 무릉도원에 놀 줄 알았으랴

 

시름 가진 사람아, 시름 가진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
말을 하면 그 시름 더 깊은 시름 되나니
나는 지금 다함없는 붓을 손수 들어
시방의 다함없는 부처님께 공양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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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화(雜華) : 잡화경(雜華經), 화엄경의 다른 이름.

* 몽산(蒙山) : 원(元)나라 스님. 저서로 「법어약록(法語略錄)」과 「수심결(修心訣)」이 있다.

* 원성(圓成) : 원성실성(圓成實性).

 

 

3. 산중생활을 즐거워함[山中自樂歌]

 

수염도 깍지 않고 머리도 깍지 않으니
마치 귀신의 머리에 나찰(羅刹 : 악귀) 같구나
미련하고 어리석기는 돌대가리 같고
어리석고 멍청하기는 말뚝 같구나

 

짚신 다 헤지도록 조사 두루 찾아다니는데
나쁜 소리 · 거짓말을 기계처럼 쏟아내네
라라리 리라라
홀로 와서 이 곡조 즐거이 부르노라

 

대원나라의 천자는 성인 중에 성인으로
내게 이 절을 주어 세월을 보내나니
산중의 이 즐거움 함께할 이 아무도 없어
어설프고 조촐한 생활 나 혼자서 좋아하네

 

이 물과 돌과 함께 언제나 스스로 즐길지언정
세상 사람과 이 즐거움 나누지 않으리라
다만 원하노니 천자께서는 만만세 누리시고
만만세 누리시되 언제나 만만세 즐거우소서

 

그제야 내게도 아무 걱정 없으리니
바위 언덕, 굽이치는 시내에서 쓸쓸함을 즐기리라
바위 구석의 조그만 암자는 능히 내몸 감싸나니
흰 구름에 모두 맡겨 서로 의탁하노라

 

그대는 이 태고 노승의 노래 한 곡 듣지 않으려는가
이 곡조 속에는 무궁한 즐거움이 들어있나니
스스로 즐기며 스스로 부르는 노래 무엇하리오
천명을 알고 즐김이 함 없는[無爲] 즐거움일세

 

어찌하여 스스로 노래하며 스스로 즐기는가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나도 모르네
그 속에 있는 뜻을 그대는 알겠는가
사람들이 날마다 써도 더듬어보기 어렵구나

 

도연명(陶淵明)은 술에 취하면 줄 없는 거문고를 희롱했고
보화(普化)*는 장터에서 요령 흔들었으며
한가한 중 포대(布帒)*는 너무나 일이 없어
세속의 술집에서 술찌꺼기에 취했었네

 

옛부터 성현들의 즐거움 이러했으니
부질없이 헛된 명성 남긴들 얼마나 쓸쓸하리
이것 좋은 줄 아는 이도 만나기 어렵거늘
하물며 이것을 만들어 즐기고 행하는 이이겠는가

 

그대는 이러한 태고의 즐거움을 보라
두타(頭陀)가 취해 춤추매 광풍이 온 골짜기에 일어나니
스스로 즐거워 계절이 가는 줄도 알지 못하고
피고 지는 바위꽃을 바라볼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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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화(普化) : 중국 보화종(普化宗)의 개조. 반산 보적(盤山寶積)의 교화를 받고 깊이 깨달았다. 성품이 기이하여 북지(北地)로 다니면서 요령(搖鈴)을 흔들며 "명두래야타 암두래야타(明頭來也打暗頭來也打)"라 하고, 또 여러 곳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만나면 요령을 그의 귀에 대고 흔들다가 그가 돌아보면, 손을 내밀며 "한 푼 주시오" 하였다. 한때 임제원(臨齊院)에 가서 머물며 교화를 도왔다. 죽을 때에는 스스로 관속에 들어가 죽었다.

* 포대(布帒) : 중국 스님. 이름은 계차(契此)이며 명주(明州) 봉화현(奉化縣) 사람이다. 언제나 지팡이에 자루를 걸어 메고 필요한 물건은 모두 그 속에 넣어 거리로 다니면서 무엇이나 보기만 하면 달라고 하였다. 먹을 것은 무엇이나 주기만 하면 받아 먹으면서 조금씩 나누어 그 자루에 넣곤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별호를 지어 장정자(長汀子) 또는 포대화상(布帒和尙)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