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록 下] 2. 찬 1.
2. 찬(讚)
찬
석가가 산에 머무시는 모습[釋迦住山相]
칭찬하려 해도 칭찬할 덕이 없고
비방하려 해도 비방할 허물이 없네
애정을 끊고 부모를 버렸으니 불효가 심한데
6년을 차가이 앉아 주리고 떠네, 쯧쯧!
석가가 산에서 나오시는 모습[釋迦出山相]
1.
사람들은 그를 석가라 하기도 하고
싣달타라 부르기도 하지만
부디 꿈이야기를 하지 말라
그는 눈[眼] 속의 헛꽃이 아니니
높고 높아서 아무 것도 없고
넓고 깊어서 있는 그대로이네
봄바람은 난만하고 물은 흘러가는데
천지에 우뚝하여 누가 나를 짝하랴
만일 산중에서 종자기(種子期)를 만났던들
어찌 누른 잎* 가지고 산을 내려왔으랴.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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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른 잎 : 「열반경」 영아행품(嬰兒行品)에 나오는 비유. 우는 어린아이에게 누른 잎을 돈이라고 속여 울음을 그치게 한 이야기.
2.
위 없이 높은 덕은 칭찬할 수도 없고
한없는 깊은 자비는 비방할 수도 없다
한량없는 동안 부지런히 닦은 미묘한 행은
항하의 모래수로도 헤아릴 수 없구나
더구나 집을 떠나 설산에 들어갈 때에는
친척들이 통곡하고 애를 태웠다
애를 태우고 아픔이 골수에 사무쳤으나
진정한 자비로 세상을 구제할 줄을 누가 알았으랴
부디 어리석지 말라
꿈이 아닌데 꿈이라 말하고
꿈 같은데 꿈이 아니다
다만 이 석가모니 부처님만이
고요하고 함이 없어 언제나 움직이지 않고
아무 것도 없이 그대로 드러나되
분명하면서도 잡을 곳이 없다
산 석가라니, 이 무슨 소리인고
석양의 모래밭에 갈매기가 제 이름을 부른다
문수(文殊)보살
취모검(吹毛劍)을 빼어드니
가풍(家風)이 매우 절묘한데
천성(千聖) 밖에 노닐으니
하얀 갈대꽃에 달빛 비치네
어람관음(魚藍觀音)*
허깨비 빈 몸은 빛깔 더욱 새로운데
바라볼 수는 있으되 가까이는 할 수 없으리
금모래 여울가에 봄바람 지난 뒤에
흩어진 다홍빛이 사람을 심란케 하네
사람을 심란케 하되 속이지는 말라
이가 빠져 다시 온들 그 누가 어여삐 보아주랴
아아, 누가 너의 그 추한 모습을 알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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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람관음(魚藍觀音) : 32관음의 하나, 중세에 중국에서 시작된 관음. 이 관음을 생각하면 나찰 · 독룡 · 악귀가 없어진다고 한다.
달마(達摩)대사 -현릉(玄陵)의 청을 받아
1.
허공을 쳐부수고
엄연히 홀로 빼어나
비로자나 부처의 정수리에 눌러앉으니
눈앞에는 법도 없고 부처도 없네
부처도 없고 법도 없음이여
하늘은 높고 땅은 편편하여라
마음도 아니요 물건도 아님이여
물은 녹색이요 산은 청색이라네
이 곡조를 가지고 바다를 건너옴이여
양무제 앞에서 한 소리 퉁기었네
한 소리 또 한 소리여
그윽한 시내는 근심하고 흐르는 샘물은 흐느낀다
그대에게 권하노니 딴 생각말고 귀를 기울이게나
곁 사람이 듣고 알까 두렵구나, 앗!
아는 사람 천하에 가득하건만
마음을 알아줄 이 그 몇 사람인고
2.
서쪽에서 바닷길로 10만 리를 온 까닭은
다만 이 한 일을 전하기 위함이었네
양무제와는 그 가락이 같지 않나니
허공에 뜬 가을 보름달 같았네
갈대잎 타고 위(魏)나라를 향할 때
맑은 바람이 거친 물결에서 보호해 보내었네
한스럽구나, 강가에서 고기 낚던 늙은이는
그때에 그를 보고 왜 밀어뜨리지 않았던가
만일 밀어뜨려 가지 못하게 했던들
뒷날 신광(神光 : 慧可)이 팔 끊는 고통을 면했을 것을
3.
10만 리를 멀리 와서 무엇을 하였던고
사람마다 모두 한 쌍의 눈썹이 있는데
홀로 외짝신* 들고 서쪽으로 돌아간 뒤에
부질없이 많은 후손들로 하여금 시비를 다투게 하였네
그른 것도 그르지 않고, 옳은 것도 옳지 않나니
중양절(中陽 : 9월 9일)노란 국화는 동쪽 울타리에 피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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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짝신 : 인도에 갔다 오던 사신이 신 한 짝을 지팡이 끝에 매고 인도로 돌아가는 달마를 파미르고원(葱嶺)에서 만났다. 그는 중국에 와서 그 사실을 나라에 알렸다. 그리하여 달마의 무덤을 파 보았더니, 무덤 속에는 신 한 짝만 남아 있고 사람은 없었다 한다.
4.
그대가 오지 않았을 때에도 천하가 태평하였고
그대가 돌아간 뒤에도 강과 바다가 맑았네
웅이산(熊耳山)의 흰 구름이 간직하지 못하게 하여
천고 만고에 빈 이름만 전하네
5.
9년 동안 잠자코 차가이 앉았을 때
많은 사람들 의심했으나 어찌할 수 없었다가
눈[雪] 속에 선 사람에게 비밀한 뜻 전한 뒤에는
봄바람 부는 어디나 꽃이 피었네
6.
푸른 눈의 스승이 오기 전에도
사람마다 그 코가 하늘을 찔렀었고
외짝신 들고 서쪽으로 돌아간 뒤에도
사람마다 두 눈썹 모두 완전했거니
무슨 일로 그렇게 가고 오고 했던가
냉정히 생각해 보니 한바탕 웃음거리였네
7.
귀신 머리에 도깨비 얼굴을 하고
눈썹은 짙고 이빨은 듬성듬성하니. 쯧쯧!
소림에 홀로 앉아 독기를 머금었다가
외짝신 신고 서쪽으로 돌아간 일 참으로 통쾌하네
서쪽에서 온 분명한 뜻은
잠자코 말아야 좋으리
무슨 일로 성내고 꾸짖었던가
부처도 눈앞의 티끌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