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행장 2.
행 장 2.
그 해 7월에 스님은 옷깃을 떨치고 호주 하무산 천호암(天湖庵)으로 가서 석옥화상을 찾아뵈었다. 노을 속에 도인의 풍채는 기운이 늠름하였다. 스님은 위의를갖추고 그 앞에 우뚝 섰고, 석옥화상은 눈을 뜨고 바라보았다. 스님도 눈을 뜨고 마주 바라보다가 절하고 물러났다.
이튿날 다시 방장실에 나아가 깨달은 바를 말하고 태고암가(太古庵歌)를 올렸다.석옥화상은 매우 장하게 여기고 우선 시험하여 물었다.
"그대는 이미 그런 경지를 지났지마는 다시 조사의 관문이 있는데 알겠소?"
"어떤 관문이 있습니까?"
"그대가 깨달은 바를 보니 공부가 바르고 지견(知見)이 분명하오. 그러나 그것을모두 놓아버리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것이 이장(理障)이 되어 바른 지견을 방해할 것이오."
"놓아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렇다면 쉬시오."
다음날 스님은 또 위의를 갖추고 나아갔다. 석옥화상은 "부처님과 조사들이 전한것은 오직 한 마음이요, 딴 법이 없소" 하고는 마조(馬祖)스님이 한 스님을 시켜 대매 법상(大梅 法常)선사에게 물은 인연*을 들어 이렇게 말하였다.
"조그만 빛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진실이라 생각하는 이는, 빛속에 떨어져 살림을 꾸려가는 이들이오. 그러므로 옛날 조사들은 이런 사람의 병을 보고 어찌할 수 없어 멀쩡한 데다 관문을 만들어 놓고 '결박'이라 한 것이오. 그러나 진실로 투철한 사람에게는 그것은 다 쓸데없는 물건이오. 그런데 그대는 어떻게 혼자서 그처럼 분명하게 갈림길을 가려내었소?”
스님이 말하였다.
"부처님과 조사님이 가르치신 방편이 구비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그렇소. 일찍이 깨닫겠다는 마음[正因]을 심지 않았던들 삿된 그물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오. 노승은 비록 이 깊은 산에 있지마는 조사의 문을 열어놓고 그 아손(兒孫)을 기다린 지 오래였소."
"선지식이란 여러 겁을 지나도 만나기 어렵습니다. 결코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모르는 사이에 큰 절을 하니 석옥화상이 말하였다.
"노승은 그대와 함께 이 고요함을 즐기고 싶소마는 다음날 갈길이 막힐까 염려되오. 그러나 법은 만나기 어려운 것이니 반달만 머물면서 이야기 하다가 돌아가시오."
그러나 그 법담을 다 상고할 수는 없고, 새겨 상고할 만한 것은 모두 기록해 두었다.*
스님이 돌아오려 할 때에 석옥화상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평상시의 수양이며, 어떤 것이 향상(向上)의 수단[巴鼻]인가?"
스님은 병의 물을 쏟듯 대답하고 더 나아가 물었다.
"이 밖에 또 다른 도리가 있습니까?"
석옥화상은 깜짝 놀라면서 말하였다.
"노승도 그랬고 3세의 부처님과 조사들도 그러했소. 장로에게 혹 다른 도리가 있다면 왜 말하지 않소"
스님은 절하며 "예부터 부자간에도 전하지 않는 묘한 도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제자가 어찌 감히 화상의 큰 은혜를 저버리겠습니까" 하고는 머리를 조아리고 합장하였다. 석옥화상은 "하하하" 하고 크게 웃으며, "장로여,그대의 3백 60여 뼈마디와 8만 4천 털구멍이 오늘 모두 열렸소. 그리하여 노승이 70여 년 동안 공부한 것을 모두 그대가 빼앗아가는구려" 하고 또 "노승은 오늘 3백 근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그대에게 대신 짊어지우고, 나는 이제 다리를 뻗고 잘 수 있게 되었소” 하였다. 스님도 하룻밤을 머무셨다. 석옥화상은 '태고암가'의 발문을 써주면서 물었다.
"우두(牛頭)스님이 사조(四祖)를 만나기 전에는 무엇 때문에 온갓 새들이 꽃을 입에 물고 왔던가?"
"부귀하면 사람들이 다 우러러보기 때문입니다."
"사조를 만난 뒤에는 무엇 때문에 입에 꽃을 문 새들을 찾아볼 수 없었던가?"
"가난하면 아들도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공겁(空劫) 이전에도 태고(太古)가 있었던가, 없었던가?"
"허공이 태고 가운데서 생겼습니다."
석옥화상은 미소를 지으며 "불법이 동방으로 가는구나" 하고 다시 가사를 주어 신(信)을 표하며 말하였다.
"이것은 노승이 평생 지니던 것이오. 오늘 그대에게 주니 그대는 이것으로 길잡이를 삼으시오."
스님은 절하고 받은 뒤에 물었다.
"지금은 그러하거니와 마지막[末後]에는 어찌하리까?"
"스승보다 지혜로운 사람은 천년을 가도 만나기 어려울 것이오. 만일 그런 사람을 만나거든 그에게 전해 주시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내려온 불조의 명맥을 끊이지 않게 해야 하오."
스님은 절하고 하직한 뒤에도 못잊어 하는 빛이 있었다. 석옥화상은 수십 걸음 밖에까지 따라나와 다시 스님을 불렀다.
"장로여, 우리 집에는 본래 이별이란 것이 없으니 이별이라 생각하지 마시오. 이별이니 이별이 아니니 하고 생각하면 옳지 못하오. 부디 노력하시오."
스님은 "예, 예" 하고 물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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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매산(大梅山) 법상(法常 : 752~839)스님이 마조스님을 찾아뵙고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마음이 바로 부처다." 법상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닫고 그때부터 대매산에 머물렀다. 마조스님은 법상스님이 산에 머문다는 소문을 듣고 한 스님을 시켜 찾아가 묻게 하였다. "스님께선 마조스님을 뵙고 무엇을 얻었기에 갑자기 이 산에 머무십니까?" "마조스님께서 나에게 '마음이 부처다' 하였다네. 그래서 여기에 머물지." "마조스님 법문은 요즈음 또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달라졌는가?" "요즈음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이 늙은이가 끝도 없이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구나. 너는 네 맘대로 비심비불(非心非佛)해라. 나는 오직
즉심즉불(卽心卽佛)일 뿐이다." 그 스님이 돌아와 마조스님께 말씀드렸더니 마조스님은 "매실(梅實)이 익었구나"하셨다.
* 이 문장이 다른 본에는 없다. 주(註)로 처리될 내용이 본문으로 들어온 듯하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