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옹록懶翁錄

[어록] 2. 짧은 글 1~8.

쪽빛마루 2015. 7. 8. 05:07

2. 짧은 글

 

 

1. 승종선화(勝宗禪和)에게 주는 글

 

 이 한 점(點)은 전연 자취[巴鼻]가 없어, 3세의 부처님네도 말하지 못하고 역대의 조사님네도 전하지 못했다. 말할 수 없고 전할수 없다면 어디에다 붓을 대고 어디에다 말을 붙이겠는가. 말하려하나 말로는 할 수 없으니 숲 속에서 잘 생각하여라.

    

 

2. 일주수좌(一珠首座)에게 주는 글

 

 이 큰 일을 기필코 해결하려거든 반드시 큰 신심을 내고 견고한 뜻을 세워, 지금까지 배워서 안 불법에 대한 견해를 싹 쓸어 큰바다 속에 버리고 다시는 꺼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8만 4천의 미세한 생각을 한 번 앉으면 그 자리에서 끊어버리고, 그저 하루종일 행주좌와하는 중에 항상 화두를 들어야 한다.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조주스님은 '없다[無]'고 하였다.

 여기서 마지막 한마디 힘을 다해 들되, 언제나 들고 언제나 움켜잡으면, 움직이거나 고요한 가운데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자나깨나 늘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이 될 것이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그저 때만 기다려라.

 혹 들어도 냉담하고 전연 재미가 없어 부리를 꽂을 곳이 없고 힘을 붙일 데가 없으며, 알아지는 점이 없고 어찌할 수가 없더라도 부디 물러서지 말라. 그때야말로 그 사람이 힘을 붙일 곳이요 힘을 덜 곳이며, 힘을 얻을 곳이요 신명을 놓아버릴 곳이다.

    

 

3. 굉장주(宏藏主)에게 주는 글

 

 이 더러운 가죽 포대 속에 한 물건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며 언제나 사람들이 활동하는 가운데 있지만 활동하는 가운데서는 붙잡을 수가 없다. 이것을 비로자나법신의 주인이라 한다.

 굉스님은 아는가. 안다 해도 몽둥이 30대를 맞을 것이며, 모른다 해도 30대를 맞을 것이니 결국 어찌하겠는가? 이 나옹도 30대를 맞아야 하겠다. 말해 보라. 허물이 어디 있는가? 빨리 말하라.

    

 

4. 각성선화(覺成禪和)에게 주는 글

 

 진실로 이 일대사인연을 기어코 이루려 하거든 결정적인 믿음을 세우고 견고한 뜻을 내어, 하루종일 행주좌와하는 중에 늘 참구하던 화두를 들어야 한다. 언제나 들고 늘 의심하면 어느 새 화두가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의심덩이가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는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때는 몸을 뒤쳐 한 번 내던지고 다시는 부질없고 쓸데없는 말을 말아야 한다.

 혹 그렇게 되지 않아 어떤 때는 화두가 분명하고 어떤 때는 분명하지 않으며, 어떤 때는 나타나고 어떤 때는 나타나지 않으며,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없으며, 어떤 때는 틈이 있고 어떤 때는 틈이 없거나 하면 그것은 신심과 의지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을 허송하면서 헛되이 남의 보시만 받으면 반드시 뒷날 염라대왕이 음식과 재물을 계산하게 될 것이다. 이른바 부질없이 세상에 와서 한번 만났을 뿐이라 하였으니, 어느 겨를에 쓸데없는 말을 하고 짧은 소리 · 긴소리하며, 이쪽을 가리키고 저쪽을 가리키겠는가.

 생각하고 생각하여라.

    

 

5. 운선자(雲禪子)가 병이 있다 하기에 그에게 글을 주다

 

 그대의 병이 중하다 들었는데 그것은 무슨 병인가? 몸의 병인가, 마음의 병인가?

 만일 몸의 병이라면 몸은 흙 · 물 · 불 · 바람의 네 가지 요소가 거짓으로 모여 된 것으로서, 그 4대는 각각 주관하는 바가 있는데, 어느 것이 그 병인가? 만일 마음의 병이라면 마음은 허깨비[幻化] 같은 것이어서 비록 거짓 이름은 있으나 그 바탕은 실로 공하다. 그렇다면 병이 어디에서 일어났는가. 만일 일어난 곳을 캐보아도 찾을 수 없다면 지금의 그 고통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또 고통을 아는 그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살피되 살펴보고 또 살펴보면 갑자기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니 이것이 내 바람이다. 부디 부탁하고 부탁하노라.

    

 

6. 지득시자(志得侍者)에게 주는 글

 

 그대가 진실로 이 일대사인연을 참구하려거든 하루종일 행주좌와하는 가운데 '모두 타서 흩어졌는데 어느 것이 내 성품인가?'라는화두를 들되, 언제나 들고 항상 의심하여 고요한 데서나 시끄러운곳에서나 부디 틈이 있게 하지 말라. 자거나 깨거나 한결같아야 하고 어디서나 언제나 분명하며, 기뻐하는 때나 성내는 때나 화두가 다시 들지 않아도 저절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 경지에 실제로 이르면 의심덩이가 부서지고 바른 눈이 열릴 때가 가까워진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하여 낮이나 밤이나 되는대로 하고 떼를 지어 다니면 혼침과 산란이 섞이고 순간순간에 어긋나 온갖 선악과 성색에 끄달릴 것이다. 그리하여 금년도 그렇게 보내고 내년도 그렇게 갈 것이니, 만일 그렇다면 아무리 미륵이 하생하기를 기다려도 붙잡을 때가 없을 것이다.

    

 

7. 상국 목인길(相國 睦仁吉)에게 주는 글

 

 이 일은 재가 · 출가에도 있지 않고 또 초참(初參) · 후학(後學)에도 있지 않으며, 또 여러 생의 훈습이나 수행에도 있지 않습니다. 갑자기 깨치는 것은 오직 당사자의 한 생각 분명한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도, '믿음은 도의 근원이자 공덕의 어머니여서 일체의 선법(善法)을 자라게 한다. 믿음은 지혜의 공덕을 자라게 하고, 믿음은 반드시 여래의 자리에 이르게 한다' 한 것입니다.

 부디 상공도 집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지휘할 때나 관에서 공사를 처리할 때나, 손님을 영접하여 담소를 나누거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거나, 다니고 서고 앉고 눕거나 결국 '이것은 무엇인가' 하십시오. 다만 이렇게 끊이지 않고 참구하고 쉬지 않고 살피면 어느 새 크게 웃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일이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집을 떠나 고행하고 계율을 지니는, 방석과 대의자[竹倚]에 있지 않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8. 득통거사(得通居士)에게 주는 글

 

 만일 그대가 이 일을 참구하려 한다면, 그것은 승속에도 있지 않고 남녀에도 관계없으며, 초참 · 후학에도 관계없고 또 여러 생의 훈습에도 있지 않는 것이오, 오직 당사자의 한 생각 진실하고 결정적인 믿음에 있는 것이오. 그대가 이미 이렇게 믿었거든 다만 하루 스물 네 시간 무엇을 하든지 언제나 화두를 드시오.

 한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니 '없다' 하였다는, 이 마지막 한마디를 힘을 다해 드시오. 언제나 끊이지 않고 들어 고요하거나 시끄러운 속에서도 공안이 앞에 나타나며, 자나깨나 그 화두가 분명하여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고, 의심덩이가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면, 마치 물살 급한 여울의 달과 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을 것이오. 진실로 그런 경지에 이르면 세월을 기다리지 않고도 갑자기 한 번 온몸에 땀이 흐르게 되리니, 그때는 잠자코 스스로 머리를 끄덕거릴 것이오. 간절히 부탁하오, 부탁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