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인천보감人天寶鑑

7. 무작계(無作戒) / 택오(擇梧)율사

쪽빛마루 2015. 7. 20. 07:41

7. 무작계(無作戒) / 택오(擇梧)율사


도솔사(兜率寺) 택오(擇梧) 율사는 보령(普寧) 율사에게 공부하였는데, 몸 단속이 엄격하였으며 하루 한 끼 공양에 예불 독송을 끊임없이 하였다.

 한번은 경산(徑山) 유림(維琳)선사에게 도를 물었다. 유림선사는 택오율사가 계율에만 마음을 두어 도를 통하지 못함을 보고는, 계율에 몸이 묶여 있으니 가슴이 답답하지 않느냐고 놀렸다. 택오율사가 "저는 마음[根識]이 어둡고 둔해서 매이지 않을 수 없으니, 스님께서 가엾게 생각하여 가르쳐 주십시오" 하였다. 유림선사는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바수반두(婆修盤頭)존자는 하루 한 끼 공양에 눕지도 않고 지내며 하루 여섯 차례씩 예불하였다. 이렇게 청정무구하여 대중들에게 귀의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20조(祖) 사야다(闍夜多)존자가 그를 제도하고자 하여 바수반두의 문도들에게 물었다.

 "이 두타승이 청정행을 열심히 닦아 부처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렇게 열심히 정진하는데 어째서 부처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대들의 스승은 도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 정진해 가지고는 티끌 겁이 지나도 모두 허망의 근본이 될 뿐이다."

 바수반두의 문도는 분한 마음을 내지 않고 사야다에게 물었다.

 "존자께서는 어떤 덕행을 쌓았기에 우리 스승을 비난하십니까?"

 "나는 도를 깨치려 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잘못[顚倒]되지도 않는다. 나는 예불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부처님께 오만하거나 가볍게 굴지도 않는다. 장좌불와(長坐不臥) 하지 않지만 공부를 게을리 하지도 않는다. 하루 한끼만 먹는 고행을 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식탐을 내지도 않는다. 나는 만족도 탐욕도 없다. 이렇게 마음 둘 곳 없음을 도라고 한다."

 바수반두는 이 말씀을 듣고 무루지(無漏智)를 얻었다.


 유림선사는 큰 소리로 할을 한 번 하고서 말하였다.

 "비록 그렇다고 해도 아직은 둔한 놈이다."

 택오율사는 이 말끝에 마음이 활짝 트여 껑충껑충 뛰면서 절하고 말하였다.

 "스님의 가르침을 듣지 못했으면 어찌 잘못을 알았겠습니까. 지금부터는 지키면서도 지키지 않는, 지킨다는 생각이 없는 계율[無作戒]을 지키겠으며, 더이상 애써 마음을 쓰지 않겠습니다."

 그리고는 작별하고 떠났다. 방장실로 돌아와서 익혀 왔던 수행을 다 버리고 그저 선상(禪床)만을 지키며 법문하는 일 말고는 묵묵히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하루 저녁은 갑자기 명정(明靜)법사를 불러서 말하였다.

 "경산스님께서 내게 망정과 집착을 타파해 주신 뒤 지금껏 가슴 속에 아무 일도 없다. 오늘밤에는 무성삼매(無聲三昧)에 들어가겠다."

 그리고는 아무 소리가 없더니 마침내 영영 누우셨다. 「통행록 (通行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