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인천보감人天寶鑑

43. 감통전기(惑通傳記) / 도선(道宣)율사

쪽빛마루 2015. 7. 20. 08:11

43. 감통전기(惑通傳記) / 도선(道宣)율사


종남산(終南山) 도선(道宣 : 596~667) 율사는 처음 제(齊) 나라에 태어나 승호(僧護)라 하였으며 월주(越州) 염현(剡顯)에서 미륵불상을 조각하며 살았다. 두번째는 양(梁)나라에 태어나 승우(僧祐)라 하였고 뒤에는 수(隨)나라에 태어나 도선(道宣)이라 하였다. 율사의 할아버지는 호주(湖州)사람이며 아버지는 진(陳)나라 이부상서(吏部尙書)였는데 임금을 따라 장안으로 갔다가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달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하였는데 인도승이 나타나 "당신이 잉태한 아기는 양나라 승우율사이니 출가시켜서 불교를 널리 펴도록 하시오" 하였다.

 율사는 머리깎고 나서는 고행을 참고 마음을 다져 먹으며 전념으로 불법만을 구했다. 한번은 보물함을 머리에 이고 탑을 돌면서 도를 닦았는데, 함 속에 사리가 내리게 해달라고 발원했더니 7일만에 과연 감응을 얻었다. 이때부터 더욱 뜻을 고르게 하여 하루 한끼 먹고 곧게 앉아 잠자지 않고 선정에 드는 것을 즐겼다.

 정관 4(貞觀 4 : 630)년 청궁사(淸宮寺)에서 반주삼매(般舟三昧)를 닦는데 천룡이 내려와 시봉하는 감응을 얻었고 물이 모자란다 하여 흰 샘이 솟기도 하였다. 안거일에 성심으로 발원기도 하기를 "만일 하안거에 좌선한 공덕이 있다면 상서로운 징조를 내리소서" 하였더니 뒷뜰에 과연 지초(芝草)가 났다. 율사가 과로로 병이 나자 천왕이 보심약(補心藥)을 내려주면서 말하였다.

 "지금은 상법(像法)시대 말이라 나쁜 비구들이 절만 거창하게 짓고 선의 지혜는 닦지 않으며 경전도 독송하지 않습니다. 비록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천에 하나 둘 뿐입니다."

 그 후 서명사(西明寺)에 있을 때 깊은 밤에 도를 닦다가 법당 앞 계단을 헛디뎠는데 어떤 성인이 발을 부축하였다. 누구냐고 물으니 북천왕의 아들인데 칙명을 받고 모시게 되었다고 하니 율사가 말하였다.

 "저의 수행에 태자를 번거롭게 할 것 없습니다. 태자는 위력이 자재하시니 천축국에 지을 만한 불사가 있거든 그것이나 힘써 주시오."

 "제게 길이 세치, 넓이 한치되는 부처님의 치아가 있는데 오랫동안 보물로 간직해왔습니다 이제 이것을 스님께 은밀히 드릴 터이니 잘 간직하소서."

 율사는 받아서 낮에는 땅굴 속에 두었다가 밤에는 받들고 도를 닦았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제자 강율사(綱律師)가 가만히 율사의 뒤를 따랐다가 보고는 세상에 알리려 하자 율사가 말하기를 "신근이 천박한 이는 나를 요망하다 할 것이니 너와 나 단둘이만 알도록 하자" 하였다.

 율사는 천신과 자주 왕래하였는데 신령스런 자취나 성스러운 일에 대해 듣기를 즐겼다. 그리고 묻고 답하는대로 기록하여 그것으로 「감통전기(感通傳記)」 라는 책을 만들었다.

 건봉 2년(乾封 : 667) 봄 2월에 천신이 나타나 이제 율사의 과보가 다하려 하니 아마 미륵궁에 날 것이라고 알렸다. 그리고는 향 한봉지를 남겨두면서, 제석천왕이 사르는 천상극림향(天上棘林香)이라고 하였다. 그해 시월 초사흘, 공중에서 하늘 음악이 울리며 꽃과 향기가 가득히 내려와 율사를 청해 맞이하니 서거하셨다. 「별전등기(別傳等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