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인천보감人天寶鑑

52. 8만겁을 산다해도 / 도사 여동빈(呂洞賓)

쪽빛마루 2015. 7. 20. 09:52

52. 8만겁을 산다해도 / 도사 여동빈(呂洞賓)


도사 여동빈(呂洞賓)은 하양(河陽) 만고(滿故) 사람으로 당나라 천보(天寶 : 742~755)년간에 태어났다. 대대로 높은 벼슬을 한 집안인데 여러번 진사(進士)시험에 응시했으나 급제하지 못하자 화산(華山)에 놀러 갔다가 종리권(鍾離權)을 만났다. 종리권은 진대(晋代)에 낭장(郎將)을 지내다가 난리를 피해 양명법(養命法 : 건강장수하는 비결)을 익힌 사람이었다.

 그는 여동빈을 시험해 보려고 먼저 재물을 주어보기로 하였다. 하루는 여동빈이 종리권을 모시고 길을 가는데, 종리권이 돌 한덩어리를 주워 약을 바르니 금새 황금덩이가 되었다. 그것을 여동빈에게 주면서 앞으로 길을 가다가 팔으라고 하니, 여동빈이 "이것도 부서지는 것이냐고 물었다. 종리권이 5백년은 되어야 부서진다고 하자, "뒷날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하면서 던져버렸다. 종리권이 다시 여색으로 시험하려고 여동빈에게 산에 들어가 약을 캐오라하고 조그만 초막을 꾸며 놓았다. 그 안에 아름다운 부인이 있다가 여동빈을 맞으면서 "지아비가 죽은지 오래 되었는데 이제 그대를 만났으니 나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는 손을 잡으며 가까이 오려 하였다. 여동빈은 여자를 밀어 제치면서 "가죽푸대로 나를 더럽히지 말라"고 하였는데, 말이 끝나자 여자는 보이지 않고 종리권이 그곳에 있었다.

 이에 종리권이 금단술(金丹術)과 천선검법(天仙劍法)을 전수하니 드디어 아무 걸림없이 다니는 경계를 얻고 시를 지었다.

 

아침에는 남월(南越)땅에 갔다가

저녁에는 창오(蒼梧) 들녘에 노니네

소매 속의 푸른 뱀

날아오르는 기운이 으스스한데

사흘동안 악양루에 있어도

알아보는 이 없어서

소리높이 읊조리며

동정호를 날아 지나갔도다.

朝遊南越暮蒼梧  袖裏靑虵膽氣麤

三日岳陽人不識  朗吟飛過洞庭湖

 

 한번은 용아(龍牙 居遁 : 835~923)스님을 찾아뵙고 불법의 큰 뜻을 물었는데 용아스님이 게송을 지어 주었다.

 

어찌하여 아침시름이 저녁시름에 이어지는가

젊어서 공부 안하면 늙어서 부끄러우리

여룡(驪龍)은 밝은 구슬을 아끼지 않는데도

지금 사람들 그것을 구할 줄 모른다네

何事朝愁與暮愁  少年不學老還羞

明珠不是驪龍惜  自是時人不解求

 

 한번은 악주(鄂州) 황룡산(黃龍山)을 지나가다가 자주빛 기운이 서려있는 것을 보고 도인이 살지나 않을까 하여 산에 들어가보니, 마침 기(機)선사가 상당법문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기선사는 이상한 사람이 자리에 몰래 들어온 것을 알고는 큰소리로 꾸짖었다.

 "대중 속에 법을 훔치려는 자가 있구나!"

 그러자 여동빈이 썩 나서서 물었다.

 "좁쌀 한알 속에 세계를 갈무리하고, 반되짜리 솥 안에 산천을 삶으니, 이 무슨 도리인지 한번 말해보시오." 선사가 "시체나 지키는 귀신이로구나" 하니, 여동빈은 "주머니 속에 장생불사하는 약이 있다면 어쩌겠소?" 하였다. 선사가 "설령 8만겁을 산다 해도 결국에는 허무 속에 떨어질 것이다" 하니 여동빈은 분한 기색도 없이 떠났는데, 밤이 되자 칼을 날려 선사를 위협하였다. 선사는 미리 알고 법의로 머리를 감싸고 방장실에 앉아 있었다. 칼이 들어와 몇바퀴 돌다가 선사가 손으로 가리키자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에 여동빈이 사죄하자 선사가 꼬투리를 잡아 따져 물었다.

 "반되짜리 솥 안은 묻지 않겠지만, 어떤 것이 좁쌀 한알에 세계를 갈무리 하는 일인가?" 여동빈은 이 말끝에 느낀 바가 있어 게송을 지었다.

 

노래하는 아이*를 잡아당겨

거문고를 부숴버리니

지금은 물 속의 금(金)을

그리워 하지 않네

황룡스님을 보고나서야

이제껏 마음 잘못썼음을 알게 되었네.

拗却瓢兒碎却琴  如今不戀水中金

自從一見黃龍後  始覺從前錯用心 「선원유사(仙苑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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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瓢兒 : 길에서 음악을 켜고 표규(瓢叫 : 범패의 일종)를 부르며 구걸하는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