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호야록 上 1. 선법을 깨닫고 자유롭게 살다간 노인 / 조변(趙抃)
나호야록
上
1. 선법을 깨닫고 자유롭게 살다간 노인 / 조변(趙抃)
청헌공(淸獻公) 조변(趙抃)은 평소부터 북경 천발사(天鉢寺) 원(重元 : 운문종)선사와 세속을 벗어난 벗으로서 심법을 물어 왔다. 그가 청주(靑州) 목사로 부임한 어느 날 우뢰소리를 듣고 느낀 바 있어 게송을 읊었다.
관아에서 물러나와 책상에 기대노라니
동요없는 이 마음 물과 같아라
뇌성벽력 한소리에 정수리 훤히 열려
놀라 일어나니 변함없는 내집인걸
머리들어 하늘보니 기쁘기 그지없다
삼라만상 온 누리가 다 그러한데
중하근기 사람들은 들을 수 없으니
신통묘용이란 그저 이럴 뿐이라네.
退食公堂自凭几 不動不搖心似水
霹靂一聲透頂門 驚起從前自家底
擧頭蒼蒼喜復喜 刹刹塵塵無不是
中下之人不得聞 妙用神通而已矣
그리고 부정공(富鄭公 : 弼)에게 보낸 답서는 대략 다음과 같다.
"얼마전 돌려드린 간추린 전등록 3권은 이미 받았으리라 생각되며, 이제 또다시 승제(承制) 송위(宋威)가 가는 길에 나머지 일곱 축(軸)도 올리는 바입니다.
제가 곰곰히 생각해보니 서역 성인께서 교(敎) 밖에 따로 전하신 법은 중하근기를 위해 베푼 것이 아닌 듯합니다. 지혜로운 상근기는 단박에 깨쳐 들어가서 한번에 영원히 깨닫지만, 어리석은 자는 미혹하여 본성을 되찾지 못하고 천가지 만가지로 달라집니다. 부처와 조사는 그저 마음으로 마음에 전할 뿐이나 한없는 생명에 이로움을 주기 위해 부득이할 경우 방(棒), 할(喝), 주먹질, 손가락질, 눈썹짓, 눈짓을 하거나 백추(白槌)를 치고 불자(拂子)를 세운다거나 그밖에 언어문자 따위의 갖가지 방편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인에게서 더욱 멀어질수록 제방의 학인들은 근본을 잊은 채 지말을 좇고 원천을 버린 채 지류를 따르는 풍조가 만연하여 모두가 이러하니, 이를 두고 '가엾은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못난 저는 지난 해 초가을 청주에서 느낀 바 있어, 본성이란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는다는 점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옛 사람의 '편안하고 즐거운 법문[安樂法門]'이라는 말이 참으로 거짓이 아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요사이 태부시중(太傅侍中)으로부터 선종에 관한 기록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는 원래 저를 사랑하고 기억해 주신 데서 나온 분부이기에 이 말씀을 듣고 기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춤을 추었습니다.
생각하건대 집사(執事)께서는 부귀와 도덕이 이처럼 지극하고 수복강령을 이처럼 갖추시고 벼슬에서 물러난 한가한 생활이 이와같이 고상하시지만 아직 깊이 유념하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여래의 일대사인연(일大事因緣) 뿐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진성(眞性)에 대하여 깨달은 바 있다 하시니 저는 당신께 축하를 드립니다."
그는 자신이 증험한 바를 서신으로 표현하였고 정공(鄭公)과도 같이 나누었으니 아마 옛 성인들의 간곡한 부탁을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이리라.
원풍(元豊, 1078~1085) 연간에 태자 소보(太子 少保)가 되어 삼구(三衢)로 돌아온 후, 지위와 체면에 관계없이 마을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가 사는 곳을 고재(高齋)라 이름하였다. 그의 마음을 나타낸 게송이 있다.
허리춤 황금 인수(印綬) 물러나 간직하니
그 소식 담담하고 평범하구나
세상사람들이여, 고재 늙은이를 알고자 하는가
그저 산마을 사는 조씨네 넷째 아들이라고
腰佩黃金已退藏 箇中消息也尋常
時人要識高齋老 只是柯村趙四郞
또한 그는 묘지명을 스스로 남겼다.
내 관직을 그만 둔 오늘, 어느덧 칠십 둘
나의 생애 끝나는 날, 이 산으로 다시 오리라
저 진정한 법신, 즉(卽)해 있지도 떠나[離] 있지도 않아서
대천세계 가득히 자비와 지혜를 두루 드러내는구나
간직할 수도 버려둘 수도 없으니
묘지명에 새긴 이 말은 이렇고 이럴 뿐이리.
吾政已致壽七十二 百歲之後歸此山地
彼眞法身不卽不離 充滿大千普現悲智
不可得藏不可得置 壽瑩之說如是如是
그가 누설한 가풍을 살펴보면 쓸데없는 말은 전혀 없었으니 지난날의 배휴(裵休)와 방온(龐蘊 : 방거사)만이 총림의 아름다운 고사를 독차지 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벼슬에서 물러나 명성을 누렸고 처음과 끝을 아름답게 장식하였다. 또한 문 밖을 나가지 않고 불조의 마음에 계합하였으니, 기미를 알고 재앙을 멀리하고자 적송자(赤松子 : 신선)를 따라 노닐었던 장량(張良)*보다도 훨씬 훌륭한 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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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漢) 고조 유방은 적재적소에 사람을 잘 부릴 줄 알았다. 그러나 부하의 세력이 커질만 하면 제거했는데 고조의 참모격인 장량(張良)은 그런 고조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공을 세운 그에게 고조가 높은 지위를 내주겠다고 하자, 적송자나 따라다니며 노닐겠노라 사양하고는 산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후인들은 그를 지혜로운 이로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