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2. 사자 춤을 보고 깨치다 / 정단(淨端)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02

2. 사자 춤을 보고 깨치다 / 정단(淨端)선사

 

 호주(湖州) 서여사(西余寺) 정단(淨端)선사는 자가 표명(表明)이며, 호주 귀안 구씨(歸安丘氏)집안에서 태어났다. 겨우 6세에 오산(吳山) 해공원(解空院)의 보섬(寶暹)선사를 은사로 삼았다. 보섬 스님은 뇌물로 승첩(僧牒)을 사도록 여러차례 권하였으나 정단선사는 거절하였다.
 "나는 뇌물 바치는 승려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마땅히 공부를 해서 삼보(三寶) 속에 낀다 해도 늦은 일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26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승복을 입게 되었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사자춤을 보고 마음법을 단박 깨쳤다. 그리고 인악(仁岳)법사에게 능엄경의 요지를 배우게 되었다. 어느날 인악 법사께서 능엄경에서 의문나고 어려운 곳 10여 군데를 지적하여 제자들에게 답하도록 하였는데, 정단선사 한분만이 게송 두 수를 지어 올렸다.

 

일곱 가지로 마음을 따져보았으나 마음 캐내지 못하고*
심란한 아란존자 몰록 깨치지 못하였네
견(見)이 무심임을 따져냈다 하더라도
여전히 진흙탕에서 흙덩이를 씻는 격이리.

七處徵心心不遂  懵懂阿難不瞥地

直饒徵得見無心  也是泥中洗土塊

 

여덟 가지 근원으로 돌려보내는 가르침, 그 유래 오래인데*
옛부터 종사들 제각기 해석 했지
돌려보낼 수 없는 곳으로 돌려보냈다 하더라도
개구리 뛰어봐야 통속을 벗어날 수 없는 것.

八還之敎垂來久  自古宗師各分剖

直饒還得不還時  也是蝦趒不出斗

 

 인악법사가 보고는 깜짝 놀라 "그대는 지견이 높으니 반드시 선종[頓宗]을 세상에 널리 펼 것이다" 하였다.
 이때 제악(齊岳)선사가 항주(抗州) 용화사(龍華寺)에 주지하였는데 도가 높다고 동오(東吳)지방에 빛났었다. 정단(淨端)선사가 찾아 뵙고는 기연이 맞아 자신도 모르게 재빨리 몸을 뒤집어 사자 흉내를 내 보이니 제악선사가 인가하였다. 그후로 총림에서는 그를 '단사자(端獅子)'라 부르게 되었다.
 정단선사는 성품이 자상하고 계율을 엄히 지켰으며, 굶주리고 헐벗는 이를 마치 자기 몸처럼 보살펴 주었다.

 승상 장자후(章子厚)가 중요한 정치일로 오(吳)로 돌아와 정단 선사를 영산사(靈山寺)의 주지로 청하니 나라에서 주지에 임명한다는 조서가 내려왔다. 그런데 때마침 은사스님의 병세가 좋지 못하여 진퇴를 결정치 못하고 망설이는 마음을 게송으로 지어 보냈다.

 

무쇠로 황금을 만들기는 쉬워도
충효를 겸하기는 어려운 법
곰곰히 생각해보니
호주 장흥 영산사 효감선원 노송아래
아무 쓸모없는 한가한 시골중만은 못하리라.

點鐵成金易  忠孝兩全難

子細思量著  不如箇湖州長興靈山孝感禪院老松樹下

無用野僧閑

 

 또한 금릉에 갔다가 왕형공(荊公 : 王安石)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는 조정에서 새로운 정치를 꾀하고 있었다. 이에 게송을 지어 주었다.

 

나무관세음보살이 갖가지 설법을 하지만
중생의 업 바다 깊기만하여 건져내기 쉽지 않다오
때로는 바다에 빠진 이가 소리소리 보살을 원망하지요.
南無觀世音  說出種種法
衆生業海深  所以難救拔
往往沈沒者  聲聲怨菩薩

 

 오흥의 유슈(劉壽)는 정단선사의 탑비명(塔碑銘)을 지었고 왕안석은 평소 스님의 게송을 보고는, 근본이 있기에 이러하다고 칭찬하였다.
 장자후와 왕안석에게 올린 두 편의 게송은 참선의 유희에서 나온 것이다. 만일 세속을 벗어난 도인으로서 만나지 않았더라면 반드시 봉변을 당했을 것이니, 가히 도라는 견지에서 서로를 잊었다 할 만하다.

---------------------------------------------

* 칠처징심(七處徵心) : 「능엄경」에서 부처님이 아난에게, 보고 생각하는 당처[心目]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아난은, 몸 속에 있다, 몸 밖에 있다, 눈(根) 속에 있다, 몸과 눈 속에 있다, 생각하는 자체에 있다, 안(內 : 根)도 바깥(外 : 境)도 아닌 중간(中 : 識이 생기는 곳)에 있다.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그것이 마음이다. 이렇게 7가지로 답한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몸 속에 있다면 몸 속에 것부터 보고 바깥 사물을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이 별체(別體)여서 전혀 관계없게 되지 않겠느냐는 등 차례로 잘못을 지적하여 따져준다.

* 팔환(八還) : 「능엄경」에서 부처님이 아난에게 '보는 성품[見性]'의 정체를 밝혀주는 대목. 변화하는 현상계의 모습을 밝음, 어둠, 통함, 막힘, 연(緣), 빔[頑虛], 흐림, 맑음의 8가지로 분류하고 이들의 근본 원인을 추적, 해와 그믐밤, 문과 벽, 분별(分別)과 공(空), 티끌과 맑게 개임에 각각 귀결시킨다. 그리고는 이것들을 보는 견(見)의 정명(精明)한 성품은 어디로 귀결되느냐고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