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18. 강서지방에 불법이 성했던 때 / 영원 유청(靈源惟淸)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11

18. 강서지방에 불법이 성했던 때 / 영원 유청(靈源惟淸)선사

 

 영원(靈源惟淸)선사는 일찍이 황룡사 회당(晦當)선사를 찾아뵙고 가르침을 받아 '청시자(淸侍者)'로 이름이 났었다. 원우(元祐 : 1092) 7년 무진거사 장상영(張商英)이 강서지방의 양곡을 운반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는데 전부터 영원선사를 존경해왔다. 당시 영원선사는 흥화사(興化寺)에 있었는데 장상영이 분령(分寧)의 관리에게 공문을 보내 여러 사찰의 주지들과 함께 영원선사로 하여금 세상에 나와 예장(豫章) 관음사(觀音寺)에 주지를 맡아달라고 청하였다. 그의 명이 너무나 준엄한 까닭에 영원선사는 마지못해 나아갔지만 게송을 보내 물러날 뜻을 보였다.

 

땅도 없고 바늘도 없는 뼈에 사무치는 가난에서*
중생을 제도할 보배 없는 것이 더욱 부끄러울 뿐이요
저자 한 복판에서 문을 열기에는 어려운 몸이니
병든 몸 보살피며 청산에 살게 해주소서.

無地無鍼徹骨貧  利生深媿乏餘珍

鄽中大施門難啓  乞與靑山養病身

 

 당시 태사(太史) 황노직(黃魯直)은 초상을 당하여 고향에 있으면서 손수 흥화사(興化寺) 해노(海老)선사에게 서신을 보냈다.

 

 "관음사의 주지자리가 비어 있어 상사(上司)께서 유청스님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데, 유청스님이 결코 가지 않으려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퍽이나 좋은 일이지만 3천년 만에 한 번 열리는 반도(蹯桃 : 하늘에서 열리는 복숭아)를 살구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이는 황룡사와 흥화사가 불법 돕는 인연을 마련하여 다함께 힘을 합쳐야 할 일이지, 나무 위에 사람을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워버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아! 강서지방에 불법이 가장 융성하던 시기는 원우(元祐) 연간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불교를 탄압한 것은 사람들의 안목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주지를 가려 모시는 예의가 이와같이 남달랐는데도 영원선사는 게송을 지어 굳이 사양하였고 태사는 서신을 통하여 그를 훌륭하다 하였으니, 마음에 느낀 것이 없었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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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엄스님이 대나무에 기와조각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닫자 위산스님이 인정을 하였다. 그러자 앙산스님이 향엄스님을 간파하러 가서 정말 깨쳤다면 달리 말해보라고 하니 향엄스님이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보였다.

지난 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었고 / 금년의 가난이 진짜 가난이네 / 작년 가난은 바늘 꽂을 따이라도 있더니 / 금년 가난은 바늘마저 없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