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29. 좋은 스승, 좋은 도반 / 오본(梧本)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16

29. 좋은 스승, 좋은 도반 / 오본(梧本)선사

 

 요주(饒州) 천복사(薦福寺)의 본(悟本)선사는 강서 운문사(雲門寺)에서부터 묘희(妙喜)선사를 시봉하여 천남(泉南) 소계사(小谿寺)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그 당시 빼어난 스님들이 모두 모였으며 인가를 받은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본선사는 묘희선사가 자기를 버릴 것이라 생각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려고 하자 묘희스님이 그 사실을 알고 말하였다.

 "그대는 참선에만 전념하라. 만일 터득한 바가 있다면 말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알 것이다."
 얼마 후 본선사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묘희선사는 일부러 "본시자는 그렇게 오랫동안 참선을 하고서도 하는 말마다 모르는 소리 뿐이다"라고 하니, 본선사가 스님에게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야, 이 째째한 도깨비야!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곽산(霍山)의 산신각에서 세차례나 이(齒)갈이를 했다. 오냐, 내가 가르쳐 주마."

 이를 계기로 더욱 분발하여 조주선사의 "개에게 불성이 없다"는 화두에서 무(無)자를 가지고 정진하였다. 어느날 밤 삼경 무렵에 법당 기둥에 몸을 기대고 깜박 잠들었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없을 무(無)자가 튀어나오면서 갑자기 깨닫게 되었다. 사흘 뒤 묘희선사가 마을에서 돌아오자 본선사가 방장실로 달려갔는데 문지방을 넘어서면서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묘희선사가 "털보스님이 이번에야 비로소 철저히 깨달았구나!" 하였다.
 이어 경산사(徑山寺)에서 대중의 수좌가 되었다가 그만둔 후에 도반인 건양암(建陽庵)의 겸(謙)선사를 찾아갔다. 겸선사는 때마침 보령(保寧)선사가 오통선인(五通仙人)*의 인연에 붙인 게송를 거론하였다.

 

무량겁 긴 세월에 깨닫지 못했는데
어떻게 움직이지도 않고 그 가운데 이르렀는고
불법이 대단할 것 없다고 말하지마라
가장 괴로운 것은 석가의 마지막 신통일세.

無量劫來曾未悟  如何不動到其中

莫言佛法無多子  最苦霍曇那一通

 

 다시 겸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어떻게 움직이지도 않고 그 가운데 이르렀는고' 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움직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그곳에 이를 수 있을까? 보라! 그 게송은 옛사람이 깨친 바를 무심히 끄집어 내 사람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준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는 다시 말했다.
 "무엇때문에 '가장 괴로운 것은 석가의 마지막 신통이라' 하였는가?"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는 곽산의 산신각에서 세차례나 이갈이를 하였다."
 이에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크게 웃었다. 그들 벗 사이에 공부를 갈고 닦으며 주고 받은 도움은 마치 문서에 도장 찍듯 착오가 없었으며 마음이 맞아 웃는 모습은 뒷 사람까지도 그들의 풍채를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

----------------------------------------------

* 오통선인(五通仙人) : 부처님의 6신통중 누진통(漏盡通)을 제외한 5신통을 갖춘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