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37. 노둔한 말은 다시 채찍질해도 모르는 법 / 불안(佛眼)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20

37. 노둔한 말은 다시 채찍질해도 모르는 법 / 불안(佛眼)선사

 

 불안(佛眼)선사는 원우(元祐 : 1088) 3년 서주(舒州) 태평사(太平寺)로 가기 위하여 발우를 들고 비천(淝川)에서 돌아오니 그때 나이 21세였다. 그러나 법연(法演)선사가 머지않아 해회사(海會寺)로 옮겨가려 하니 불안선사는 실망한 나머지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내 일이 되어가는데 스님을 따라가 황폐한 절에서 시봉하다 보면 어떻게 내 일을 마칠 수 있겠습니까?"
 드디어는 게송을 지어 이별을 고하였다.

 

서쪽으로 민아산을 떠나 오천리 길에
다행히 물병과 지팡이 짚고서 높은 선사 찾아 뵈었네
못난 재목에 자주 도끼질을 한다해도
둔한 말은 두번째 채찍을 알지 못하네


일월처럼 빛나는 은혜 느꼈지만
산속에 머물 수 없는 이 내 몸
내일 아침 산 아래로 떠나가도
뒷날 다시 와서 인연을 맺으리라.

 

西別岷峨路五千  幸攜缾錫禮高禪

不材雖見頻揮斧  鈍足難諳再擧鞭

 

深感恩光同日月  未能蹤迹止林泉

明朝且出山前去  佗日重來會有緣

 

 법연선사도 게송으로 불안선사를 송별하였다.

 

완백대(皖伯臺) 앞에서 그대를 보낼 때
복사꽃 비단같고 버들잎은 눈썹같아라
내년 이맘 때 난간에 기대서서 바라본다면
한 두 가지 버들은 여전히 푸르겠지.

皖伯臺前送別時  桃華如錦柳如眉

明年此日凭欄看  依舊靑靑一兩枝

 

 그 길로 불안스님은 장산(蔣山)을 찾아가 여름 결제를 하였다. 거기서 우연히 영원(靈源惟淸)선사를 만나 나날이 우의가 두터워 졌는데, 한번은 한가히 이야기 하던 중 불안스님이 영원선사에게 말하였다.
 "요즈음 서울에 계시는 어떤 노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인연이 있는 듯합니다."
 "법연선사는 천하 제일가는 큰스님이신데 무슨 까닭에 그 분을 버리고 먼곳으로 돌아다니는가? 인연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지견으로 이해하는 스님일 것이니, 그대가 처음 발심한 때와 비슷한 수준일 것이다."
 불안스님은 이 말에 고무되어 곧장 해회사로 달려갔고, 그후 7년만에 비로소 종지를 깨달았다.

아! 영원스님이 없었다면 불안스님은 반드시 썩은 물[死水]에 빠졌을 것이니, 어떻게 다시 용문(龍門)을 통과할 수 있었겠는가. 옛사람의 말에 "나의 도를 이루어줄 사람은 밝은 벗이다"하였는데 이 말씀이 어찌 거짓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