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38. 황룡 삼관에 대한 게송 / 변(辯)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21

38. 황룡 삼관에 대한 게송 / 변(辯)선사


 호주(湖州) 하산(何山) 변(辯)선사가 제방을 돌아다니다가 서경(西京) 소림사(少林寺)에 갔을 때였다. 한 스님에게서 '계빈왕(罽賓王)이 사자존자(獅子尊者)의 목을 베었다.'는 화두에 대해 용문사 불안선사가 고시(古詩)로 종지를 밝혔다는 영문사 불안선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양자강 가 수양버들에 봄이 드니
버들 꽃 휘날려 강 건너는 사람 시름에 젖게한다
한 가락 남은 피리소리에 정자에서의 이별 늦어지는데
그대는 소상으로 가고 나는 진나라로 간다.

楊子江頭楊柳春  楊花愁殺渡江人

一聲殘笛離亭晩  君向瀟湘我向秦

 

 변선사는 묵묵히 깨달은 바 있어 곧바로 용문사에서 여름결제를 하였다. 머문 지 얼마 안되어 불안선사가 예전의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물었다. 변선사가 무어라 대답하려는데 불안선사가 손으로 문을 밀어 젖히니 변선사는 밖으로 밀려나가면서 크게 깨쳤다. 다시 돌아와 속에 있는 말을 꺼내려하니 불안선사가 주장자를 끌고 나와 쫓아 버렸다. 얼마 후 산문에서 보리쌀을 구걸해 오라고 태호(太湖)로 보냈는데, 병 때문에 갈 수가 없어 결국 소계(苕谿)로 돌아와 협산(峽山)에 암자를 짓고 살았다. 오랜 뒤에 천성사(天聖寺)의 주지가 되었고, 이어 몇몇 사찰을 옮겨 다녔다. 그는 황룡선사의 삼관화두에 대해 송을 지었다.

 

내 손은 어이하여 부처님 손을 닮았나
황룡스님 코 밑엔 입이 없단다
그당시 보기에는 훤출하게 잘났지만
이제보니 그처럼 못났을 줄이야.

我手何似佛手  黃龍鼻下無口

當時所見顢頇  至今百拙千醜


내 다리는 어이하여 당나귀 다리를 닮았나
문수보살은 무착보살을 친견했다네
푸른 빛 도는 좋은 찻잔을
굳이 싫다고 물리칠건 없지.

我脚何似驢脚  文殊親見無著

好箇玻璃茶盞  不要當面諱却


사람마다 태어난 인연이 있으니
이제껏 지은 죄 하늘에 가득하다
소 끌고 일하는 정도가 아니고
펄펄끓는 기름 가마솥 지옥이라네.

人人有箇生緣  從來罪大彌天

不是牽犁拽耙  便是鼎鑊油烈


부처님 손과 나귀 다리, 그리고 태어난 인연이라
고기잡는 사씨는 고깃배에 있지 않고
남쪽으로 북쪽으로 분주히 뛰어다니며
할아비 논밭을 가까이하지 않는구나.

佛手驢脚生緣  謝郞不在魚船

底事奔南走北  不親祖父田園

 

 어느날 대제(待制) 갈승중(葛勝仲)이 손님과 함께 그의 방을 찾아가 "천지도 한 손가락이요, 만물도 한 마리 말이다(天地一指, 萬物一馬 : 莊子)"는 말을 거론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이야기를 해도 변선사가 귀담아 듣지 않으니 갈승중이 의아하게 생각하여 "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스님은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큰소리로 "대제!" 하고 부르니 그가 어쩔줄 몰라하며 "네" 하고 대답했다.

 이 때 변선사가 "천지도 한 손가락이요, 만물도 한마리 말이다" 라고 하니 그가 기뻐하며 말하였다.
 "역시 스님이라야 되겠습니다."
 앉아있던 손님도 눈이 휘둥그래져서 송구한 마음으로 더욱 존경하게 되었으니, 사람을 살리는 수단을 가진 자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