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산거시(山居時) 12수 / 순장주(淳藏主)
39. 산거시(山居時) 12수 / 순장주(淳藏主)
임천(臨川) 화도사(化度寺) 순장주(淳藏主)는 보봉사(寶峰寺) 상(祥)선사의 뛰어난 제자로 불경과 기타 서적을 두루 섭렵하였다. 그의 고상하고 말쑥한 인품은 그가 지은 '산거시(山居時)'에 잘 나타나 있다. 모두 해서 몇 십 편 되나 여기에는 12수만을 기록한다.
세상을 따르기엔 너무나 못났음을 스스로 아나
바보같아도 깊은 산중에 살기엔 넉넉하다
눈앞에 살림살이 다른 게 없고
오로지 꾸불거리는 지팡이 하나
시냇가에 엉기성기 짚 얽어놓고
칡넝쿨 우거진 길로 문 하나 뚫어 놓았으니
이곳에 인연지어 노년을 맡기고
잠깐 지나는 골짜기 구름을 실컷 구경하리라
미치광이 습득(拾得)같은 게 스스로도 우스운데
남전(南泉)처럼 바보같은 줄 그 누가 아랴
몇번이나 배불리 먹고 산놀이에 지쳤던가
옷입은 채로 이르는 곳에 누워 자노라
무심한 구름은 골짜기로 돌아가고
맑은 달그림자 연못에 비치네
세속을 벗어난 환한 이 경계
원래 그대로라, 더할 것 없네
내 몸에 따르는 건 키를 넘는 지팡이 하나
배 채우는 일은 다리 부러진 솥 덕분
어느 곳이 좋을까 이리저리 찾아보며
물소리며 산 빛 속을 두루두루 다녔네
이글거리던 화롯불에 맑은 연기 자욱하고
쇠종 두드릴 때 새벽운치 차가웁다
한가닥 염주는 거추장스러우나
백팔염주 들어보니 속이지 않는구나
안자의 청빈도 낙이라 할 수 없고
구슬을 보존해온 인상여*도 지조 높다 할 수 없네
어찌 산 생활에 비하리요
처마 끝 솔바람은 가을파도 소리를 내는구나
굵게 씌어진 몇줄의 경구절
한줄기 향불은 해묵은 잣나무 뿌리
조용한 석실에 봄햇살 지루한데
꽃잎새 떨어지는 마을에 소쩍새 우는구나
어부가와 감로곡, 그리고
한산이 읊었다는 법등의 시를
구름 깊다고 듣는 사람 없다 말하지 마오
삼라만상 모두가 또렷이 알고 있으니
돌위에 앉았노라니 뼈속까지 시려오고
시냇물로 양치하니 어금니가 깨끗하다
그 가운데 재미있어 돌아갈 생각없고
하릴없는 늙은 몸 이곳이 마음가득
바위에 고요히 앉았노라니 길든 범이 찾아오고
옛 시냇길 걸으니 갈매기가 함께하네
일만 잊는 것이 아니라 생각가지 끊어서
늙은 몸 모두 맡기니 마음편히 쉬는구나
추위에 겁낸 머리 보송보송 길어나고
따뜻한 방이 좋아 땔감 자주 마련하네
밤색 가사를 아무렇게나 걸어 놓았으니
힘들여 굳이 곱게 접어둘 것 있으랴.
拙直自知趨世遠 疏愚贏得住山深
現成活計無他物 只有鱗皴杖一尋
屋架數椽臨水石 門通一徑掛藤蘿
自緣此處宜投老 饒得谿雲早晩過
自笑疏狂同拾得 誰知癡鈍若南泉
幾回食飽遊山倦 只麼和衣到處眠
無心閑淡雲歸洞 有影澄淸月在潭
此景灼然超物外 本來成現不須參
隨身只有過頭杖 飽腹唯憑折脚鐺
幾度遣閑何處好 水聲山色裏遊行
瓦爐爇處淸煙靄 鐵磬敲時曉韻寒
一串數珠麤又重 拈來百八不相謾
一瓢顔子非爲樂 四壁相如未是高
爭似山家眞活計 屋頭松韻瀉秋濤
數行大字貝多葉 一炷麤香古柏根
石室靜筵春晝永 杜鵑啼破落花村
漁父子歌甘露曲 擬寒山詠法燈詩
深雲勿謂無人聽 萬像森羅歷歷知
坐石已知毛骨冷 漱泉長覺齒牙淸
箇中有味忘歸念 身老無餘合此情
幽巖靜坐來馴虎 古澗經行自狎鷗
不是忘機能絶念 大都投老得心休
怕寒嬾剃髼鬆髮 愛煖頻添榾拙紫
栗色伽梨撩亂掛 誰能勞力强安排
한가한 마음을 읊은 정취는 극치라고 할 수 있다. 마음 속에 공부한 바가 없었다면 이처럼 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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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상여(藺相如) : 조(趙)나라에 중국 최고의 보물구슬이 있었다. 조나라 보다 강한 진나라의 소왕(昭王)은 구슬을 욕심내어 자기 나라의 성 15개와 그 구슬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이 결코 지켜지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조나라의 혜문왕(惠文王)은 크게 당황했다. 그때 낮은 지위의 인상여(藺相如)가 자진해서 그 약속을 이행시키고 오겠다며 진나라 사신으로 떠났다. 그러나 소왕이 약속을 어기자 인상여가 목숨을 걸고 약속지킬 것을 요구하자 소왕이 결국 굴복하고 15개 성과
구슬을 바꾸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