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18. 육담당(六湛堂) / 위진가(衛進可)

쪽빛마루 2015. 8. 21. 13:35

18. 육담당(六湛堂) / 위진가(衛進可)

 

 천동 각(天童覺 : 宏智正覺, 조동종)선사는 세모에 사승(寺丞) 위진가(衛進可)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그 집에는 ‘육담당(六湛堂)’이라는 채가 있었다. 이는 “6처(六處)가 쉬어져서 한결같이 담연(湛然)하다”는 「능엄경」의 구절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위진가가 게송을 빌어 그 뜻을 밝혀달라 청하니 각선사는 즉석에서 읊었다.

 

풍파 일지 않으니 신령한 근원 보이고
6처가 돌아갈 곳이 없으니 바탕이 담담하네
모든 법의 성품 비어야 비로소 제자리를 얻으니
손가락 튕기는 순간에 활짝 문이 열리네

매화 핀 울타리에 봄은 먼저 찾아오고
눈내린 창가에는 밤이 어둡지 않구나
삼라만상에 마음 도장을 찍으니
모든 티끌 초월하여 흔적 없이 묘하네.

 

風瀾未作見靈源  六處亡歸體湛存

諸法性空方得座  一彈指頃頓開門

 

寒梅籬落春能早  野雪櫺牕夜不昏

萬像森羅心印印  諸塵超豁妙無痕

 

 이때 경산사에서 묘희노스님도 뒤이어 도착하였다. 위진가가 이 게송에 화운(和韻)하도록 명하니 묘희스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었다.

 

담담함도 흔들림도 아닌 이 법의 근원은
기연을 만나면 마다않고 거짓 이름 남기니
모름지기 헤아림을 벗어난 뛰어난 영혼이라야
광대무변한 문으로 들어갈 수 있으리

만경계 뒤엉켜 있으나 원래 둘이 아니고
육창(六窓)은 밤낮 어두운 적 없었네
돌이켜 생각하니 방온(龐蘊)노인의 고사도 별게 아니라
허공에 칼을 휘두른들 무슨 흔적 남으련가.

 

非湛非搖此法源  當機莫厭假名存

直須過量英靈漢  方入無邊廣大門

 

萬境交羅元不二  六牕晝夜未嘗昏

翻思龐老事無別  擲劍揮空豈有痕

 

 세속에서 집이름을 지을 때면 반드시 유가 서적에서 따오는데, 그 의도는 편히 쉬고 한적하려 하는 데 있다. 그런데 그가 불도에 정진하고자 불경에서 이름을 따온 것은 드문 일이다. 이 때문에 천동선사는 게송을 지어 찬탄하였고 경산선사는 그 운에 맞춰 화답하였다. 이 게송은 모두 도에 들어가는 지름길을 제시하여 조금도 아낌없이 지침을 마련해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