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19. 스승과 제자의 계통을 어지럽히다 / 현(顯)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35

19. 스승과 제자의 계통을 어지럽히다 / 현(顯)선사

 

 서촉(西蜀) 현(顯)선사라는 이의 삭발스승은 소각 백(紹覺白)선사이다. 그는 게송을 지어 남쪽으로 떠나가는 현선사를 송별하였다.

 

멀고 먼 옛길은 탄탄한 대로이니
길 떠나는 마당에 주저할 것 전혀 없다
뒷날 제방에 가게 되거든
나를 위해 그들에게 분명히 말해다오.

古路迢迢自坦夷

臨行不用更遲疑

他時若到諸方日

爲我分明擧似伊

 

 이윽고 해회사(海會寺)에 이르러 법연(法演)선사를 찾아 뵈었는데, 어느날 법연선사가 말하였다.

 “내 너의 경지를 진작 알고 있는데 아직 백운관(白雲關)도 통과하지 못하였다.”
 현선사(顯禪師)는 법연선사의 시자로 있던 원오(圜悟)선사에게 백운관의 뜻을 살며시 물어보니 “그대가 당장에 알아차리면 그뿐이다” 라고 하였다.

 얼마 후 법연선사가 성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현선사는 원오선사와 함께 성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흥화(興化)에서 세 사람이 서로 만나게 되었다. 이에 법연선사가, “지난번 만났을 때의 일을 기억하는가?” 하고 물었다. “현선사가 온 식구가 삼가 문안을 드립니다” 하니 법연선사가 원오선사를 돌아보며, "저놈이 말이 많구나" 하였다.

 이 일로 기연이 계합되었다. 오랜 후 그곳을 떠나 촉(蜀) 땅으로 가게 되자 법연선사가 소참(小參) 법문을 하였다.

 “고향 떠난 40여 년에 촉땅의 말을 잊은 때도 있었다. 그대가 성도(成都)로 가거든 반드시 노(魯)나라의 말을 잊지 말아라.”

 현선사가 성도로 돌아오니 소각(紹覺)선사는 소각사 주지로 있었다. 현선사에게 장송(長松)에 주지하라는 명을 받도록 하니 개당 법회에서 향을 사르며 법문하였다.

 “한분은 정성들여 풀무질을 해주신 분이요, 한분은 기막히게 갈고 닦아 주신 분이다. 두분의 공이 모두 현저하니 어느 분을 먼저 모셔야 하는가? 듣지 못하였는가? 뿌리가 무겁고 가지가 가벼운 줄은 바람 앞에서 판명된다는 말을. 이 향은 소각화상을 위하여 받드오니 온 천지와 산골에 향연기가 가득 퍼져 천하의 모든 납승들이 숨쉬지 못하도록 하리라.”

 아! 사실보다 지나친 말을 감추려고 하면 더욱 드러나는 법이니, 그의 계산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그를 일숙각(一宿覺)스님과 비교해 본다면 매우 다른 사람이라 하겠다. 더구나 그는 일찍이 대숭(戴嵩)과 같은 문필을 지녀 총림에서는‘현우자(顯牛子)’라 일컬어져 왔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하찮은 재주로 명망을 더럽히고 옛 정을 가지고 사제의 계통을 어지럽혔으니 후세의 본보기가 될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