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절 이름이 바뀐 유래 / 지붕(智朋)선사
25. 절 이름이 바뀐 유래 / 지붕(智朋)선사
명주(明州) 지붕(智朋)선사가 처음 보봉사(寶峰寺)에서 탁발하다가 초산사(焦山寺)에 왔을 때였다. 당시 방장 성 고목(法成枯木)선사는 조 천제(憔照闡提)선사와 함께 부용 해(芙蓉道楷 : 조동종)선사에게서 비슷한 시기에 법을 얻었으나 서로 만난 적이 없었다. 성선사가 봉선사에게 물었다.
“보봉(천제)스님은 무슨 법문을 하시던가?” 붕선사는 즉석에서 자찬(自讚)이 붙은 천제선사의 영정을 올렸다.
비에 씻신 붉은 복사꽃가지 싱싱하게 피어나
바람앞에 옅푸른 버들가지 나부끼는데
흰구름 그림자 속에 괴석이 나타나고
흐르는 물줄기에 마른나무 봄이 튼다.
아! 그대는 누구인가.
雨洗淡紅桃萼愞 風搖淺碧柳絲輕
白雲影裏怪石露 流水光中枯木春
咦你是何人
성선사는 이를 보고, “오늘에야 보봉이 우리 스승을 친견했음을 알았다”고 칭찬한 후 붕선사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대는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대는 법등(法登)선사가 한산시(寒山詩)에 맞추어 지은 시를 기억할 수 있는가?”
붕선사가 그 시를 읊어가다가 “누가 이 뜻을 알까? 남전스님을 생각나게 하네[維人知比意 令我憶南泉]” 하면서 “억(憶)”자를 암송할 때 성선사가 느닷없이 붕선사의 입을 손으로 막으면서, “그만! 그만!” 하니 붕선사는 환하게 느낀 바 있었다. 그 후 붕선사는 형주(衡州) 화약사(華藥寺)를 맡았다. 천제선사의 법제자가 되었고 무주(婺州) 천령사(天寧寺)로 옮겨 왔다. 이에 앞서 숭령2년(崇寧 : 1103)에 나라에서 주군(州郡)에 명을 내려 선원을 세우고 연호를 다시 세운 일에 맞추어 절 이름을 만수사(萬壽寺)라 짓고 절의 현판을 크게 써서 걸게 하였다. 이때 불교가 부흥하게 된 경사를 묘감(妙堪 :운문종)선사에게 돌리니 묘감선사는 사양하면서 말했다.
“앞으로 어디에서 눈 밝은 스님 3백 예순 명을 얻어 천하에 나눌 수 있겠는가. 이로부터 불법이 쇠퇴할까 두렵다.”
정화(政和) 연간(1111)에 이르러 숭령사(崇寧寺)를 천령사(天寧寺)로 개명하였다. 붕선사가 천령사에 주지를 한 것은 소흥 7년(紹興 : 1137)의 일이다. 일들이 뒤섞이는 것을 관리에게 알려 마침내 왕명을 받들어 보은광효사(報恩廣孝寺)라 이름을 바꾸고 오로지 선조를 추숭(追崇)하는 일을 지휘하도록 하였다. 소흥 15년에 ‘광효(廣孝)’에서 ‘광(廣)’자를 ‘광(光)’자로 바꾸어 썼다. 이러한 일들을 모두 붕선사가 시작했으므로 “붕선사는 끝없이 성효(聖孝)를 넓혔다.”고 기록된다. 아울러 묘감선사의 말을 기록하는 바이니 묘감선사는 설봉사의 주지로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