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26. 원오두(源五斗) / 초원(楚源)수좌

쪽빛마루 2015. 8. 21. 13:39

26. 원오두(源五斗) / 초원(楚源)수좌

 

 사심(死心)선사는 소성(紹聖 : 1094~1097) 연간에 강서(江西) 취암사(翠巖寺)에 주지로 있었는데, 법당 뒤 편 제안왕(齊安王)의 사당은 영검이 대단하였다. 사심선사는 사당을 절 서쪽 모퉁이로 옮기고 그 자리에 방장실을 짓고 침상을 놓았다. 곤히 잠들면 구렁이가 곁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내쫓으면 다시 찾아 오고 하여 마침내 예사로운 일이 되고 말았다. 어느 날 삼경에 의관을 갖춘 자가 꿈속에 나타나 인사하고, 옮겨간 곳이 좋지 못하니 장정 60명만 빌려주면 남쪽 이광사(二廣寺)로 떠나겠다고 극진히 말하는 것이었다. 사심선사는 꿈속에서 이를 허락하였는데 얼마 후 장정이 있는 집마다 전염병이 돌아 약속한 숫자만큼 죽은 뒤에야 없어졌다. 이에
사심선사는 학인들에게 물었다.

 "말해 보아라. 귀신이란 과연 있는 것일까? 만일 있다면 왜 나를 죽이지 않았을까? 없다면 장정들은 무엇때문에 죽었을까?"
 그 당시 이 말에 대답을 해서 맞은 사람이 없었는데, 마침 초원(楚源) 수좌가 보봉사 진정(眞淨)선사 문하에 있다가 그곳에 가니 사심선사가 똑같은 질문을 하였다. 원수좌가 "참외는 꼭지까지 달고 박은 뿌리까지 쓰다"고 하니 사심선사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원수좌는 기연에 응함이 매우 둔하여 적음(寂音)선사는 그에게 '원오두(源五斗)'라는 별명을 지어 주었다. 이는 입김을 불어 쌀 다섯말을 밥지을 시간에 비로소 한마디 대답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묘희스님은 초년에 원수좌 때문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이어 이상노(李商老)를 만난 후 1년이 지나 돌아오니 원수좌가 수좌
자리를 양보하면서 "아! 쓸쓸하도다. 덧없이 빠른 세월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묘희선사는 노년에 학인들에게 항상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 당시 나도 모르게 식은땀이 흘렀다."고 하였다.

 아! 흔히들 보봉사를 강서지방 불법의 본거지라 일컫는다. 원수좌는 그 지방에서 법도를 지키고 기강을 잡아 수한 후배를 격려시켰으니, 사람됨이 진포혜(陳蒲鞋 : 睦州 龍興寺에 살았던 陳尊宿 道明스님, 황벽스님의 시자로서 임제 · 운문스님을 잘 지도했다)와 견줄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