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나호야록羅湖野錄
42. 출신보다 도를 높이 사다 / 정현(精顯)선사
쪽빛마루
2015. 8. 21. 13:47
42. 출신보다 도를 높이 사다 / 정현(精顯)선사
양양(襄襄) 곡은사(谷隱寺)의 현(靜顯 : 임제동 황룡파)선사는 서촉(西蜀) 안추밀공(安樞密公)의 별업전(別業田)을 일구는 농가에서 태어났다. 남쪽을 돌아다니다가 앙산 위(仰山行偉)선사를 찾아뵙고 물었다.
"무엇이 부처님의 향상사(向上事)입니까?"
"태양은 동녘에서 올랐다가 밤이 되면 서쪽으로 떨어진다."
현선사가 다시 "동녘에서 떠오르는 향상사를 다시 가르쳐..." 하는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위선사가 후려치는 바람에 느낀 바가 있었다. 곡은사 주지가 되어 앙산스님의 기일을 맞이하여 영전에 향을 사르며 말하였다.
"머리 들어 우러러 봐도 하늘은 보이지 않고 머리를 숙여 굽어봐도 땅이 보이지 않네. 앙산스님이시여 오셨는지 안 오셨는지 알길 없으나 한심지 전단향으로 정성을 표하나이다."
현선사의 사람됨이 진실하고 도학이 올바르니 안추밀공에 식구를 데리고 찾아와 절을 올리고서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우리집 땅에서 부처님 한 분이 태어나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엿다."
이에 조정에 아뢰어 '정각선사(淨覺禪師)'라는 법호를 내려주도록 주선하여 경의를 표하였다. 이는 아마도 선사의 출신보다도 덕망을 높이 샀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도가 있으면 그만큼 존중받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