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마루 2015. 9. 16. 11:59

63. 깨친 자가 서로 만났을 때 / 연관(緣觀)선사

 

 양산 관(梁山緣觀 : 조동종)스님의 회하에 원두(園頭 : 채소밭 관리 책임을 맡은 사람) 한 사람이 있었는데 선을 깨친 바 있었지만 그를 불신하는 대중이 많았다. 하루는 어느 스님이 그를 구슬러서 그의 경지를 드러내도록 하기 위하여 그 원두에게 물었다.

 "어찌하여 주지에게 한두 가지 화두를 질문하여 인연을 맺지 않소?"

 "나는 나아가 묻지 않겠지만 만일 내가 나선다면 그 늙은이를 선상에서 내려와 땅에 서 있도록 만들 것이다."

 그후 양산선사가 법상에 오르자 과연 나와 물었다.

 "집안 도둑을 막기 어려울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가 원한을 품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안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무생국(無生國)으로 내쫓아 버려라."

 "그곳은 그가 안신입명(安身立命)할 곳이 아닙니까?"

 "죽은 물에는 용이 살지 않는다."

 "산 물 속의 용은 어떤 것입니까?"

 "물결을 일으키되 파랑(波浪)이 일지 않는다."

 "갑자기 폭포가 쏟아지고 산악이 무너질 때는 어떻습니까?"

 양산선사는 과연 법좌 위에서 달려내려와 그를 콱 잡고 말하였다.

 "그대는 이 노승의 가사 자락을 적시지 마시오."

 스님(대혜)이 말하였다.

 "깨달은 사람끼리 만났을 때는 자연히 주고 빼앗고 하는 것이 볼만함을 알아야 한다."

 

 

64. 발심한 지 일년이 지나면 / 담당 문준선사

 

 담당(湛堂文準)스님이 말하였다.

 "선납자가 막 대중으로 들어와 처음 발심했을 때는 불보살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가도 1년이 지나면 부처의 허리 부근에 와서 마치 유리병처럼 매달려 있다. 애당초는 텅 비고 깨끗하다가 더러운 물이 반병쯤 들어가 흔들면 속에서 출렁출렁 소리가 난다. 그러나 갑자기 본색인(本色人)이 나타나 그것을 보고 말한다. '네가 가진 이 병은 본래 깨끗했으나 더러운 물에 더럽혀졌다'고. 게다가 병이 가득 차지 않아서 출렁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이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려면 반드시 병을 기울여 물을 쏟아내고 흔들어 깨끗이 씻은 후 병에 예전처럼 가득히 깨끗한 물을 부어 놓으면 물소리가 나지 않을 것이다. 무슨 까닭에 물소리가 나지 않는가? 물이 가득 찼기 때문이다."

 

 

65. 병에 맞게 약을 쓴다면 / 대혜스님

 

 엄양(嚴陽)존자는 조주(趙州從諗)선사를 친견한 사람인데 한 스님이 그에게 물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흙덩이다."

 "무엇이 불법입니까?"

 "지진[地動]이지."

 "무엇이 스님입니까?"

 "죽 먹고 밥 먹는 사람이다."

 "무엇이 신흥원(新興院)의 물입니까?"

 "앞에 보이는 강물이다."

 이에 대하여 스님(대혜)이 말하였다.

 "이런 법문은 마치 아이들의 장난처럼 보이지만 이런 법문에 들어갈 수 있어야만이 안락을 얻은 자이다. 진정스님*이 고금의 화두를 들어 말한 경지는, 설두선사보다 못하지 않은데도 그의 후손들은 전수받아 익혀오는 동안 도리어 궁색한 말꾼이 되고 말았다. 그저 한결같이, 옛사람은 어떻게 했을까? 진여(眞如慕喆)스님은 무어라고 한 마디를 던졌으며 양기(楊岐方會)스님은 무어라고 한 마디 했을까를 물을 뿐이다. 너희들은 쓸모없는 숱한 일에 신경쓰고 있지만 병을 고치는 데에는 당나귀나 낙타 등에 실은 많은 약이 필요치 않다. 병에 맞게 약을 쓴다면 울타리 밑에서 주운 한줄기의 약뿌리로 병을 고칠 수 있는데, 주사(朱砂)니, 부자(附子)니, 인삼이니, 백구(白求) 따위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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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일본속장경(大日本續藏經)에는 '진정(眞淨)을 진여(眞如)가 아닌가 한다'는 주가 붙어 있다.

 

 

66. 오조스님께 인정을 받은 스님 / 진정 극문선사

 

 진정(眞淨)스님에 회하에 소태(昭泰)수좌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그가 오조스님을 찾아왔다. 오조스님은 그가 진정(眞淨)스님의 어록을 거론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진정)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라면서 칭찬하였다.

 스님(대혜)이 말하였다.

 "오조선사는 혜남(慧南)스님 회하에서 회당(晦堂祖心)스님과 진정스님 두 분만을 인정하였을 뿐, 그 나머지는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오조스님의 사람됨은 마치 솜으로 감싼 한자루의 칼과 같아서 부딪치기만 하면 단칼에 너의 목줄기를 찔러 죽이고 만다. 진정스님이라면 어떤가? 다리에 붙어 있으면 다리에서 너를 찔러 죽일 것이며, 손에 붙어 있으면 손에서 너를 찔러 죽일 것이며, 목에 붙어 있으면 목에서 너를 찔러 죽였을 것이다."

 

 

67. 세 사람의 화답시

 

 부마도위(駙馬都尉) 이준욱(李遵勗)은 석문 총(石門蘊聰)선사에게 심요(心要)를 얻었는데, 게송 두 수를 지어 발운사(發運使)인 주정사(朱正辭)에게 보낸 적이 있다. 당시 허식(許式)이 회남(淮南) 조운관(漕運官)으로 있었는데 주공이 허공에게 이공의 글을 보이고 함께 화답시를 짓자고 청하였다. 이공의 송은 다음과 같다.

 

도를 배우려면 모름지기 무쇠인이어야 하며

마음에서 착수해야 판가름이 난다.

學道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여기에 두 사람이 화답했다.

 

비는 나무꾼을 재촉하여 집으로 가게 하고(주)

바람은 고기배를 강언덕으로 밀쳐 보낸다(허)

雨催樵子還家(走)

風送漁舟到岸(許)

 

 그들이 부산 원(浮山法遠)선사에게도 화운(和韻)하기를 청하자 부산스님은 이렇게 읊었다.

 

도를 배우려면 모름지기 무쇠인이어야 하며

마음에서 착수해야 판가름이 난다

온 몸이 비록 눈알이라 하여도

또다시 붉은 용광로에 달굼질을 해야하리

 

저예는 나무에 부딪혀 밀명(密命)을 잃고*

예양은 몸을 감추려 숯을 삼켰네*

백로의 그림자 가을 강에 떨어지고

바람은 양 언덕에 갈대꽃을 날려오네.

 

學道須是鐵漢  着手心頭便判

通身雖是眼睛  也待紅爐再煆

 

鉏麑觸樹迷封  豫讓藏身呑炭

鷺賑影落秋江  風送蘆花兩岸

 

 여러 사람이 이 송을 보고 크게 존경하였고 이준욱은 스스로 화운하였다.

 

참선을 하려면 모름지기 무쇠인이어야 하고

마음에서 착수해야 판가름이 나네

곧장 무상보리로 나아가

일체의 시비를 상관하지 말라.

參禪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直趣無上菩提  一切是非莫管

 

 지금은 오직 뒤에 지은 한 수만 전해오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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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예 : 춘추 진(晋)나라 영공(靈公) 때의 역사(力士). 영공이 잔인무도하여 충신 조순(趙盾)이 몇차례나 간언을 올리니 영공은 그를 미워하여 저예를 시켜서 죽이려 하였다. 아침 일찍 조순이 관복을 차려입고 조회하러 조정에 나왔는데 너무 일찍 와서 잠깐 졸고 있었다. 저예는 조순을 보는 순간, 그가 어질다고 생각하여 차마 죽이지 못하고, 명을 시행하지 못했으므로 궁중에 있는 홰나무에 머리를 부딪혀 자살했다.

* 예양 : 전국시대 진(晋)나라 사람. 자기가 섬기던 지백(智伯)이 조양자(趙襄子)에게 죽자 원수를 갚으려고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이가 되고 숯을 삼켜 벙어리가 되었다. 그리고는 지백에게 접근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잡히자 자살했다.

 

 

68. 주지하는 일 / 오조선사

 

 불감(佛鑑慧懃)스님이 처음 서주(舒州) 태평사(太平寺)에 주지해 달라는 청을 받고 오조스님께 하직인사를 하니 오조스님이 말하였다.

 "절의 주지는 자기를 위해 네가지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세력을 다 부려서는 안되며, 둘째는 복을 다 누려서는 안되며, 셋째는 규율을 다 시행해서는 안되며, 넷째는 좋은 말을 다 해서는 안된다. 무엇 때문인가? 좋은 말을 모두 다 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쉽게 여기며, 규율을 다 시행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번거롭게 여길 것이다. 또 복을 다 누리면 반드시 인연이 외로워지며 세력을 다 부리면 반드시 재화가 닥치게 된다."

 불감선사는 재배를 올리고 말씀을 가슴깊이 되새기며 물러났다. 그후 불감선사가 영원(靈源惟淸)선사에게 하직인사를 하자 영원선사가 말하였다.

 "주지란 마땅히 주장자, 보따리, 삿갓을 방장실 벽위에 걸어놓았다가 납자처럼 가볍게 떠나는 것이 좋다."

 

 

69. 남을 비방하지 않는 것이 좋은 일 / 원오선사

 

 서사천(徐師川)이 불과(佛果圜悟)선사와 함께 서기실[書記寮]에 갔다가 불과선사의 머리 꼭대기를 보고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이 늙은이는 발꿈치가 땅에 닿지 않았군."

 "항아리 속의 자라가 달아날 수 있을까?"

 "좋아! 늙은이의 발꿈치가 땅에 닿았구나."

 "남을 비방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70. 사주대성의 성씨 / 풍제천(馮濟川)

 

 오룡장로(烏龍長老)가 풍제천(憑濟川 : ?~1153)을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풍제천이 물었다.

 "예전에 한 관원이 사주대성(泗州大聖)에게 대사는 성씨가 무엇입니까[姓何]하니, 하성(何姓)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어느 나라에 사십니까[住何國]하니, 하나라에 산다[住何國]고 하였다는데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장로가 대답하였다.

 "대성(大聖)은 본래 어느 성[何姓]도 아니고 어느 나라[何國]에도 살지 않지만 인연따라 가르치고 제도한 것 뿐입니다."

 풍제천은 웃으면서 말하였다. "대성은 결정코 성이 하씨며 하국에 산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여러 차례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마침내 스님(대혜)에게 서신을 보내 이 공안을 결단해 달라고 하자 스님은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나에게 몽둥이 육십대가 있는데 삼십대는 대성을 칠 것이니 이는 그가 성을 하씨라고 한 것이 틀렸기 때문이다. 삼십대는 풍제천을 칠 것이니 이는 그가 대성의 성을 결정코 하씨라고 한 것이 틀렸기 때문이다. 오룡장로에게는 스스로 알아서 물러나게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