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문무고 上 75~78.
75. 서로 모르지만 닮은 모습 / 석상 임(石霜琳)선사
협산 인(夾山璘)선사와 석상 임(石霜琳)선사는 오랫동안 불일 재(佛日智才)선사에게서 공부하였다. 공부를 마친 후 그들은 함께 상강(上江)지방을 돌아다니다가 황룡사에 이르러 혜남선사의 상당 소참법문에 동참하였다. 임선사는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입실(入室)하기를 바라자 인선사는 화를 내며 한대 때린 후 떠나버렸다.
임선사는 뒷날 크게 깨쳐 기봉이 뛰어나 설법을 했다하면 진정선사와 닮은 점이 있었으나 진정선사와는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 석상사의 주지로 있을 때 송을 지어 진정선사에게 전하도록 스님을 보냈는데 그 송의 뒷구절은 다음과 같다.
분주떠는 사해 납자들이여
신풍(新豊)에 오지 않는다면 아마도 멍청이겠지.
憧憧四海參禪者 不到新豊也是癡
76. 경에 주석을 붙이는 일 / 이통현(李通玄)
도생(道生 : ?~434)·승조(僧肇 : 383~414)·도융(道融)·승예(僧叡)는 구마라즙(鳩摩羅什 : 344~413)의 훌륭한 제자들로서 사의보살(四依菩薩)이라 불리웠다. 그러나 일찍이 구마라즙과 함께 「유마경(維摩脛)」에 주석을 붙이다가 불가사의품(不可思議品)에 이르러 모두 붓을 놓고 말았다. 아마도 이 경계는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할 수 있는 경계가 아니었기에 한 마디도 붙일 수 없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이장자(李長者 : 通玄)의 화엄론(華嚴論)은 화엄볍계에 들어가서 문장을 해석했기에 마치 해와 별처럼 명백하고 얼음 녹듯 의심이 없다. 몸소 확연한 인연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럴 수 있겠는가?
77. 대혜스님이 찾아다닌 여러 선지식
선주(宣州) 명적 정(明寂紹珵)선사는 낭야(瑯揶慧覺)·설두(雪竇重顯 : 운문종)·천의(天衣義懷 : 운문종) 등 선배 큰스님들을 두루 찾아뵙고 시봉하면서 법문을 청하였다. 세상에 나와서는 흥교 탄(興敎坦)스님의 법제자가 되었는데 탄선사도 낭야선사의 법제자이다. 후일 태평주 서죽사(瑞竹寺)로 옮겨 서당(西堂)에 거처하였는데, 스님(대혜)이 처음 행각할 때 그를 찾아가 설두선사의 「염고(拈古)」·「송고(頌古)」에 대하여 가르침을 청하였다. 소정선사는 스님에게 화두를 들게 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보고 스스로 말하도록 하였을 뿐 그의 말은 조금치도 빌려주지 않았다. 스님이 옛 성인들의 미묘한 종지를 깨치자 소정선사는 대중 앞에서 스님은 부처님이 다시 온 사람이라고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님은 그 후 다시 영주(郢州) 대양사(大陽寺)에 가서 원(元)수좌, 동산 미(洞山道微)스님, 견(堅)수좌 등을 참방하였는데, 도미스님은 부용(芙容道楷 : 조동종)선사 회중에 수좌로 있었으며 견주좌는 그곳 시자로 10여 년을 지낸 스님이었다. 스님은 세 분 아래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조동(曹洞)의 종지를 모두 깨쳤다. 그곳에서는 법을 주고 받을 때, 모두가 팔뚝에 향을 피워 함부로 법통을 전수하지 않겠다는 뜻을 표하였는데, 스님이 곰곰히 생각해 보니 선(禪)에 전수할 법이 있다면 불조가 스스로 깨치셨다는 법은 무엇인가 하였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 담당선사에게 귀의하였다.
어느 날 담당선사가 스님에게 물었다.
"너의 코는 어째서 오늘 반쪽이 없느냐?"
"보봉(寶峰) 문하에 있습니다."
"엉터리 참선꾼이군!"
또 어느 날 시왕전(十王殿)상을 단장하는 곳에서 물었다.
"이 관리의 성씨는 무엇인가?"
"양씨(梁氏)입니다."
이 말에 담당선사는 손으로 자기의 머리를 매만지면서 말했다.
"양씨인데 복두(幞頭)가 적은 것을 어찌할꼬?"
"비록 복두는 없지만 코는 비슷합니다."
"엉터리 참선꾼이군!"
한번은 경을 보고 있는데 물었다.
"무슨 경을 보느냐?"
"「금강경」입니다."
"「금강경」에서는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운거산은 높고 보봉산은 낮은가?"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너는 좌주(座主 : 강사)의 심부름꾼이 되겠구나."
어느 날 또 물었다.
"고(杲)상좌야! 나의 이 선을 너는 한번에 이해하였다. 그래서 너에게 설법을 하라면 설법을 할 수 있고, 「염고(拈古)」·「송고(頌古)」와 소참(小參)·보설(普說)법문을 하라면 그것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못하는 일이 있는데 너는 알겠느냐?"
"무슨 일입니까?"
"네가 한 가지 알지 못한 게 있지. 네가 이 한 가지를 알지 못하니, 내가 방장실에서 너와 이야기할 때는 선이 있다가도 나서자마자 없어져버리며, 정신이 맑아서 사랑할 때는 선이 있다가도 잠이 들자마자 없어져버린다. 만일 이렇다면 어떻게 생사와 대적할 수 있겠는가?"
"바로 그것이 제가 의심하는 점입니다."
그후 담당선사의 병세가 위독하자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만일 이 병환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면 저를 누구에게 부탁하여 그 큰 일을 끝마치게 하시렵니까?"
"극근이라는 스님이 있는데 나도 그를 알지 못한다. 네가 만일 그를 만나면 반드시 도롤 이룰 수 있을 것이지만 끝내 그를 만나지 못하면 수행을 계속하다가 후세에 다시 태어나 참선을 하도록 하라."
78. 뜻을 굳게 세우다 / 보령 인용(保寧仁勇)선사
보령 용(保寧仁勇)선사는 사명(四明) 땅 사람이다. 처음 교학을 하다가 옷을 바꿔 입고 설두 중현(雪竇重縣 : 운문종)선사에게 귀의하여 도를 물으니, 설두선사는 그를 '꾀죄죄한 좌주(座主)'라고 하였다. 인용선사는 뜻하지 않게 당의(堂儀 : 승당에서 의전보는 소임)를 맡았는데 임기가 다 되자마자 자기 이름패[單子]를 뽑아들고 설두산을 향하여 예배하고 맹서하였다.
"이생에서 행각 참선하여 나의 도가 설두스님보다 나아지지 못한다면 결코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겠다."
그후 인용선사는 장사(長沙) 운개사에 이르러 양기 회(楊岐方會)선사를 참방하여 백운 수단(白雲守端 : 1025~1072)선사와 사형사제가 되었다. 후일 세상에 나와 보령사의 주지로 있었는데 인용선사의 도는 총림에 퍼져 그의 말처럼 되었다. 참으로 사람이 뜻을 굳게 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