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마루 2015. 10. 24. 07:58

운와기담

 

1. 비구니 혜광(淨智慧光)스님의 설법

 

 동도(東都) 비구니절인 묘혜사(妙慧寺)의 주지 정지(淨智)대사 혜광(慧光)은 성도 범씨(成都范氏)이며 그의 저서에 나오는 당감(唐鑑)은 바로 그의 숙부이다. 휘종(徽宗 : 1101~1125) 때 궁중에서 많은 장노 선사에게 법의를 시주하였는데 혜광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차례대로 설법을 하게 되었는데 이 때 혜광은 맨 마지막에 배정되었다. 법좌에 올라 문답을 끝낸 다음 대중을 돌아보면서 말하였다.

 "선과 도를 논하는 것으로 치자면 많은 대선사들이 이미 다 해버렸는데 여기에다 이 산승에게 다시 무슨 말을 더하라는 것이냐. 옛분의 말씀을 들어보지 못했는가? 수많은 말과 갖가지 해석은 오직 그대들을 길이길이 혼미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결국 어떻게 해야겠는가?"

 혜광은 법의로 머리를 뒤덮어 쓰고 한참동안 묵묵히 있다가 말을 이었다.

 "머리에 법의를 덮어쓰니 만사가 끝장이다. 이제 산승은 아무것도 알 수 없노라."

 그리고는 법좌에서 내려왔다. 이날 설법을 들은 승려와 속인이 무려 만여 명에 이르렀으나 감복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사인(舍人) 한자창(韓子蒼)이 혜광의 탑명에, '박식하고 논변에 능하다[多聞善辯]'고 평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선사의 부도는 예장(豫章) 서산(西山) 성상(聖相) 땅 언덕에 세워져 있다.

 

 

2. 한유(韓愈)의 「원도(原道)」를 논함 / 효종(孝宗)황제

 

 효종(孝宗)황제가 중화궁(重華宮)에 납시어 「원도변(原道辯)」을 지었다.

 

 내 한유(韓愈)의 「원도(原道)」를 살펴보니, 거기에는 부처와 노자의 말들이 혼동되어 있고 삼교[儒佛老]가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이를 분별하지 못하며, 게다가 문장이 복잡하고 이론이 타당치 못하여 성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분명치 못한 점이 있었다. 무엇 때문일까?

 석가는 오로지 성품과 생명을 연구하여 형질로 된 몸을 벗어나서 명상(名相)에 집착하지 않으며 세상 일에는 스스로 상관하지 않았으니 예악(禮樂) 인의(仁義)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그러나 오히려 오계(五戒)를 세워 '살생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 하지 말고, 술마시지 말고,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하였다. 살생하지 말라는 것은 인(仁)이며, 간음하지 말라는 것은 예(禮)이며, 도적질을 하지 말라는 것은 의(義)이며,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은 지(智)이며,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은 신(信)이다. 그렇다면 공자와 무엇이 다르다 하겠는가?

 공자는 자연스럽게 도와 일치하는 이를 성인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성인이 하는 일은 그대로가 예악이며 그대로가 인의인데 무슨 이름을 붙일 수 있겠는가. 비유하면 끝없이 돌고 도는 천지 음양에 춘하추동을 나눌 생각이 없는 것과 같아서 성인이 가르침을 베풀고 세상을 다스리는 데 부득이 붙여 놓은 이름이기는 하나 이를 통해 성인의 뜻을 추구해 보면 바로 도를 알 수 있다. 도란 인의 예악의 바탕이며 인의예악은 도의 작용이다. 저 양웅(揚雄)은, 노자가 인의를 파괴하고 예악을 없앴다고 하나, 이제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서 그의 자취를 찾아보면 노자가 보배로 여긴 바는 사랑, 검박 그리고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는다는 세가지이다. 공자는 온화 · 어짐 · 공순 · 검박 · 사양(溫良恭儉讓)을 말씀하셨다. 공자는 오직 인(仁)이 큰 일이라 하셨는데 이 말은 노자가 말한 사랑과 같으니 이것이 바로 크나큰 인(仁)이며, 감히 천하에 앞서지 않는다함은 크나큰 사양이 아니겠는가! 그는 도를 이해시키는 방편으로 한쪽만을 들어 말하였지만 그가 중히 여겼던 바는 청정영일(淸淨寧一)이었다. 이것이 과연 공자와 배치된다 할 수 있겠는가?

 저 어두운 삼교(三敎)의 말류(末流)들이 자기 주장을 고집하여 다르다고 하였을 뿐이다. 부처와 노자는 망념을 끊고 함이 없이 몸과 마음을 닦았을 뿐이며 공자는 그의 가르침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자이니 다만 그들이 도를 베푸는 바가 같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뒷사람들은 마치 쟁기로 베를 짜고 베틀의 북으로써 밭을 갈려는 사람처럼 공연히 분분하게 미혹되고 있으니 이것은 처음부터 그 이치를 잃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어떻게 하면 그러한 미혹을 없앨 수 있을까?'하는데, 불교로 마음을 닦고 도교로 몸을 닦고 유교로 세상을 다스리면 될 것이다. 오직 성인만이 이 세가지를 융화시킬 수 있기에 이를 논하지 않을 수 없다.

 

 

3. 융경사(隆慶寺) 한(閑)선사의 법문과 게송

 

 한(閑)선사라는 이는 희령(熙寧 : 1068~1077) 연간에 여릉(廬陵) 태수 장감(張鑒)의 명으로 융경사(隆慶寺)주지를 맡아 세상에 나갔다. 그러나 한달이 못되어 왕소(王韶)가 예장(豫章) 태수가 되어 서산 용천사(龍泉寺)로 초청하였는데 거기서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병으로 그만두었다. 여릉의 승속이 배(舟)를 준비하여 그를 융경사로 모셔오니 그곳 서당(西堂)에 거처하다가 2년이 지난 원풍(元豊) 4년(1081) 3월 13일에 게송으로 유언을 남겼다.

 

뜬 세상에 형체를 드러냈다가

순식간에 꺼져버리는 몸뚱이로

53년을 살았네

유월, 칠월, 팔월……

남악 천태산에는

솔바람 불고 흰눈이 쌓이는데

안녕! 마음 알아주는 벗이여

이글거리는 화롯불 속에 우담화가 피도다.

露質浮世  奄質浮滅

五十三歲  六七八月

南嶽天台  松風澗雪

珍重知音  紅爐優鉢

 

 게송을 마치고 편히 앉아 세상을 떠났다. 화공에게 그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는데 갑자기 스스로 머리를 들어 올렸다. 다음 날도 그대로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어록은 몇줄 되지는 않지만 곧 천남사에서 인쇄하게 하였다. 방장실에서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조사의 심인(心印)은 무슨 글씨체로 새겼는가? 모든 부처의 근원은 얼마나 깊은가?"

 "하루 24시간 오르락내리락 하며 자리에 앉고 발우를 펴는 이것은 썩어 무너질 5온신이다. 무엇이 청정법신인가?"

 "이쪽 저쪽 가릴것 없이 실다운 자리에서 한마디 해보아라>"

 "하루종일 옷입고 밥먹는 것이 누구의 은혜냐?"

 "물고기가 헤엄치니 물이 흐려지고 새가 날면 털이 빠지는데 양(亮)좌주가 서산으로 들어간 뒤에는 무슨 일로 깜깜무소식이냐?"

 한선사의 다비 때 있었던 특이하고 상서로운 일들은 황문(黃門) 소자유(蘇子由 : 소동파의 아우)의 기록에 자세하게 실려있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남기신 게송과 법어만을 간략히 기록하여도 그의 실상을 떨어뜨리지 않으리라.

 

 

4. 파초암주(芭草菴主) 천대도(泉大道)스님의 '육파비송'과 '미치광이의 노래'

 

 남악사(南嶽寺) 파초암주(芭草菴主)는 세상에서 천대도(泉大道)란 별명으로 불리웠는데 이는 그가 지은 노래 중에 '대도(大道)'라는 제목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육파비송(六巴鼻頌)'은 다음과 같다.

 

대도(大道)의 파비(巴鼻)는

물으면 졸음이 쏟아진다

등에는 호로병을 지고

미치광이처럼 노래하며 장난치네

 

산성(散聖)의 파비는

장터를 만나면 한바탕 놀다간다

동쪽에 솟았다가 서쪽으로 침몰하고

남쪽 고을에 나타났다 북쪽 마을에 사라진다

 

선사(禪師)의 파비는

날카로움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푸른 산 높고 높아

용이 날듯 범이 노려보듯 한다

 

납승(衲僧)의 파비는

한자 두치 좌구(坐具)란다

길고 짧음을 묻지 말라

바람은 높고 구름이 일도다

 

좌주(座主)의 파비는

폭포수처럼 막힘이 없으니

땅에는 금색연꽃이 솟아나고

손으로 여의주를 받든다

 

산동(山童)의 파비는

쇠를 불로 시험해 보네

길손이 산 생활을 물으면

멀리 오시느라 고생하셨다 대답하네

 

大道巴鼻  問著瞌睡

背負葫盧  狂歌逸戱

 

散聖巴鼻  逢場作戱

東湧西沒  南州北里

 

禪師巴鼻  有利無利

碧嶽崔嵬  龍行虎視

 

衲僧巴鼻  坐具尺二

休尋短長  風高雲起

 

座主巴鼻  懸河無滯

地湧金蓮  手擎如意

 

山童巴鼻  金將火試

客問山居  遠來不易

 

 하루는 아름다운 미치광이 노래를 지었다.

 

하 하 하! 생각나는구나

내 지난해 청주에 있을 때 대추 한 알을 먹었었지

이제 갑자기 생각나

홀로 웃고 홀로 노래하며 멋대로 노는구나!

미치광이 장씨와 이씨네 여덟째 형

황씨노파와 정씨네 아홉째 부인은

마음이 심란하여

상머리의 큰 고양이 잃어 버리고

문앞으로 달려 내려가 조개를 잡는구나

다시 찾지를 말아라!

남산의 구름이 북산의 구름을 끌어 오는구나

돌아가세

하나 · 둘 · 셋 · 넷 · 다섯 · 여섯 · 일곱 · 여덟 · 아홉송이 꽃이 피었도다.

 

 노랫말은 엉망인 듯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취지가 있으며 그 스스로도 만족하였으니 총림을 빛낼 만한 시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