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마루 2015. 10. 29. 09:38

10. 황벽사 남(南)스님이 추(鄒)장자에게 보낸 게송

 

 남(南)화상이 황벽사에 있을 때 추(鄒)장자에게 다섯 장(章)의 게송으로써 답서를 가름하였다.

 

짧은 서문 긴 문장 모두가 아름답고

5언 7자의 싯구는 더욱 정교하오

말과 행실이 어긋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만고에 신창 땅 군자라고 일컬을 터.

短序長書皆典雅  五言七字更工夫

若能言行長相顧  萬古新昌君子儒

 

베틀에 북처럼 오가는 세월이여

나이와 얼굴은 자기도 모르게 시들어가네

그대에게 권하노니 일찌감치 깨달음의 길을 밟아

세상사람 혀꼬부라진 소리에 마음 쓰지 말게나.

日往月來如擲梭  年顔不覺暗消磨

勸君早踐菩提路  世諦嘍囉不用多

 

요즘 사람들의 마음은 거치른 쑥밭이라

이로 인해 응보를 받아 인생 길이 전도되네

온 세상 승속을 막론하고

언행이 부합되어야 한다네.

時人心地長蒿蕪  受報因玆錯道塗

擧世不論僧洎俗  要須言行與相符

 

육식 않고 경을 받든다는 말 전부터 들어왔으니

불 속에 피는 연꽃이 부럽구나

덧없는 인생의 수고로움이 모두 꿈이요 허깨비라

이것만이 앞길이라고 간절히 말할 뿐.

久聞齊素好持經  欽羨蓮花火裏生

浮世勞勞皆夢幻  叮嚀只此是前程

 

심부름꾼이 돌아가겠다고 재촉하는지라

겨우 몇 수의 게송으로 답서를 가름하오

세상 밖에서 다행히 이웃하여 살게 되니

이제부턴 서로 알아 덕이 외롭지 않겠소.

僕者言歸不暫居  聊成數偈答君書

煙霞幸得爲鄰並  從此相知德不孤

 

 남선사는 여느 안부 편지에도 이러한 게송으로 답하였으니, 잠시도 잊지 않고 사람들을 도로 이끌어 주었다고 할 만하다.

 

 

11. 엄조강(嚴朝康)의 송고(頌古)

 

 요주(饒州) 교수(敎授) 엄조강(嚴朝康)은 천복사(薦福寺) 설당(雪堂)선사와 보은사(報恩寺) 응암(應菴)선사에게 도를 물은 바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었다.

 

조주선사는 개는 불성이 없다 하였지만

나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 하리라

한마디에 문득 스스로 돌아갈 곳을 알아

그 뒤로는 조주의 말을 믿지 않았네

 

정신을 차려 스스로 헤아려보니

남의 뒤나 따르다간 좋은 수가 없겠고

소를 타고 소를 찾아 사람들을 웃기더니

이제야 비로소 예전의 잘못을 깨달았노라.

 

趙州狗子無佛性  我道狗子佛性有

驀然言下自知歸  從玆不信趙州口

 

著精神自抖摟  隨人背後無好手

騎牛覓牛笑殺人  如今始覺從前謬

 

 엄조강이 당시 매양(梅陽)에 있던 대혜선사에게 그 게송을 부치자 대혜스님이 답을 하였다. 그 개요는 '남의 뒤나 따르다간 좋은 수가 없겠다'는 말은 8만 4천 공안이 모두 그대의 활로가 된다는 것이다.

 엄조강은 호주(湖州) 장흥(長興)사람이다.

 

 

12. 문수사(文殊寺) 도(道)선사의 게송

 

 정주(鼎州) 문수사(文殊寺)의 도(道)선사는 초년에 성도(成都) 땅 강원을 돌아다니면서 10년 가까이 유식론을 공부하였다. 한번은 어떤 이가, "삼계는 모두 마음(心)이며 만법은 오로지 식(識)이라 하니, 지금 눈 앞에 널려진 모든 현상 속에 심식이 어디에 있느냐?"고 따져 물으니 도선사는 망연자실 대답할 바를 몰랐다. 이에 삼협(三峽)을 나와 강회(江淮) 사이를 두루 다니다가 서주(舒州) 태평사(太平寺)에 닿았다. 거기서 불감(佛鑑)선사가 야참법문에서 들어 보인 조주선사의 '뜰 앞의 잣나무' 화두를 듣게 되었다. 그 중 각(覺鐵嘴)선사가 '스승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신 일이 없었다'고 했다는 대목에서 큰 의심을 품고 오랫동안 참구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환하게 깨치고 게송을 지었다.

 

조주스님의 뜰앞 잣나무 화두여

선객이 서로 전하여 온 누리에 가득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잎을 따고 가지만을 찾을 뿐

뿌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네

 

각선사는 조주가 이런 말한 적 없었다 하여

정면으로 대놓고 욕을 한 셈이네

선객에게 사방을 꿰뚫어 보는 눈이 있다면

이 가운데에서 진위를 잘 가리리라.

 

趙州有箇栢樹話  禪客相傳遍天下

多是摘葉與尋枝  不能直向根源會

 

覺公說道無此語  正是惡言當面罵

禪人若具通方眼  好向欺中辨眞假

 

 불감(佛鑑)선사가 종산(鍾山)에서 입적하자 향을 들고 애도를 표하였다.

 

슬프다. 금년 10월 8일은

종산에서 스승께서 입적하시던 날

석녀는 울부짖으며 이별을 한하고

목인의 눈에는 피눈물 흐르네

 

스승과 제자의 도 어이 이처럼 간절할꼬

생각할 때마다 목이 메이누나

오직 한자루 자단향(紫檀香)으로

오늘의 말없는 설법을 떠나 보내네.

 

悲想今年十月八  鍾阜先師示寂滅

石女號咷恨離別  木人眼裏淚流血

 

師資之道情何切  一度追思一哽咽

唯憑一炷紫檀香  珍重當年說不說

 

 도(道)선사는 72세에 건염(建炎) 기유(1129) 3월 3일, 호남의 큰 도적 종상(鍾相)에게 살해되었는데 전우암(典牛菴) 주지 유공(游公)이 게송으로 그를 애도하였다.

 

대창이 심장을 뚫고 등뼈까지 뚫었으니

길에 가득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진다

대룡산의 깨끗한 시냇물과 산 꽃이

석자 솟은 하얀 피를 견주겠는가

 

쇳소리 쟁쟁한 칼 숲속에서 쉬고 또 쉬니

은덕에 보답하는 일 이미 다 마쳤도다

훗날 서로 만나면

반대(飯臺)에서 다시 한번 같이 뛰어보세.

 

若竹穿心透脊  滿路生血滴滴

大龍澗水山花  何似白乳三尺

 

刀鏘林裏休休  報德醻恩已畢

佗時後日相逢  飯臺更與一趯

 

 

13. 임천(臨川) 땅 부자 불문에 귀의하다 / 의송암주(倚松菴主) 덕조 여벽(德操如壁)스님

 

 의송암주(倚松菴主)는 임천(臨川) 땅의 부호로 자(字)는 덕조(德操)이다. 정화(政和 : 1111~1117) 연간에 유생의 옷을 벗고 불법에 귀의하여 여벽(如壁)이라 이름하였는데, 얼마 후 조정대신의 건의로 승려를 덕사(德士)라 하고 모자와 수건을 머리에 쓰게 하자 덕조가 게송을 하였다.

 

덕사란 옛부터 진사를 일컫는 것

황색 모자는 애당초 유생의 갓과 다름 없는데

갖가지 이름들이 모두가 거짓이니

세상 사람치고 누군들 이름에 속지 않으리.

德士舊來稱進士  黃冠初不異儒冠

種種是名名是假  世人誰不被名謾

 

 또 한번은 여거인(呂居仁)의 시운을 따라 답하였다.

 

지난날 부질없이 중생제도 한다 말했지만

이는 가릉빈가가 먼 허공에서 울어대는 격

내 이미 나무 의자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대는 오히려 관성(管城 : 붓)을 찾는구나

 

문장이 백년의 죽음을 치료할 수 없고

세상일이란 붉은 두 뺨을 늙게 만드나니

밤 창문아래 7, 8시간을

선상에 가부좌한 채 풍번화두를 참구함이 좋으리.

 

向來浪說濟時功  大似頻伽餉遠空

我已定交木上座  君猶求舊管城公

 

文章不療百年老  世事能排兩頰紅

好貸夜牕三十刻  胡牀趺坐究幡風

 

 그의 「산거송(山居頌)」은 다음과 같다.

 

선방에서 차 마시고 떨어진 경전을 묶다가

대 지팡이 짚신으로 발길 닿는대로 가나니

산은 다하고 길은 구비돌아 인적이 끊긴 곳에

대 숲에 닭은 때때로 홰를 치며 울어댄다

 

석남열매 익는 계절에 눈이 녹는

한폭의 그림같은 마을이어라

만나보니 그대 같은데 그대는 날 알지 못하고서

되레 그대는 어디 사느냐고 묻는다

 

유생의 관을 쓰고 몇번이나 이 몸을 그르쳤나

우연히 분수따라 한가한 사람 되었구나

두 끼니 죽으로 인연따라 배부르니

장단 고저는 그대에게 일임하오

 

율사는 계율을 지키며 선의 허황함을 비웃고

선객은 참선하며 율사의 얽매임을 비웃는다

참선과 계율 두 길을 모두 배우지 않는 이

몇 남아가 진정한 장부였던가.

 

禪堂茶散卷殘經  竹杖芒鞵信脚行

山盡路回人跡絶  竹雞時作兩三聲

 

石楠子熟雪微乾  曾向人家畫裏看

覿面似君君未領  問君何處有遮闌

 

幾被儒冠誤此身  偶然隨分作閑人

二時齊粥隨緣飽  長短高低一任君

 

律師持律笑禪虛  禪客參禪笑律拘

禪律二途俱不學  幾箇男兒是丈夫

 

 진영중(陳瑩中)이 게송을 지어 그에게 보냈다.

 

예전엔 부자 선비[措大]로만 알았더니

이제보니 여벽스님이시구랴!

묻노니 마음을 편안케 하는 법에

참선과 유학이 얼마나 다르오.

舊時饒措大  今日璧頭陀

爲問安心法  禪儒較幾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