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마루 2015. 11. 11. 08:13

41. 소동파의 승복[衲衣]

 

 한림학사 소자첨(蘇子瞻 : 소동파)이 소성(紹聖) 원년(1094) 가을 남화사(南華寺)를 지나게 되었다. 승복을 입고 변(辯)장로와 앉아 있었는데 생각잖은 손님이 찾아오니 소동파는 관복을 입고 변선사에게 말하였다.

 "속에는 승복을 입고 겉에는 관복을 걸쳤으니 마치 양민을 억눌러 천민을 만든 꼴입니다."

 "외호도 적은 일이 아닙니다."

 "말 속에 여운이 있군요."

 "영산(靈山)의 부촉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소자첨은 '소정암명(蘇程菴銘)'을 지었으니 인용한다.

 

 "정공(程公)의 암자는 남화(南華)장로 변선사가 나의 이종 동생 정덕유(程德孺)를 위하여 지은 것이다. 내 남쪽으로 옮겨가는 도중 이곳을 지나게 되어 암자 이름을 소정암(蘇程菴)으로 바꾸고 명을 지었다.

 

변(辯)선사가 보림(林) 남쪽에 지은 암자

정공이 취했으나 탐욕에서가 아니라

소씨(蘇氏)가 뒤에 와서 머물렀네

소씨 삼부자가 머물게 되자

정씨는 이곳을 떠났다

손가락 튕기는 찰나 간에 삼세가 들었으니

내 말한 바와 같이 이런 곳은 없을 것이다

백천개의 등불이 같은 빛을 내고

한 티끌 속에 두 도량이 생겨

가지런히 함께 설법해도

서로 방해되지 않으니

본디 통하는 일이 없는데

어찌 막히는 일이 있겠는가

정씨는 떠나지 않았고

소씨는 머물지 않았으니

각기 가득차 있되 뒤섞이는 일 없어라."

 

 정씨는 광동(廣東)의 조운사(漕運使)이며 변선사는 이 암자를 지은 사람이다.

 

 

42. 고암선사의 뒤를 잇다 / 무착 도한(無着道閑)선사

 

 한(閑)선사가 처음 운거사(雲居寺) 고암 오(高菴善悟)선사를 찾아뵈었을 때 오선사가 물었다.

 "고향이 어디냐?"

 "천태(天台)입니다."

 "천태의 돌다리가 무너졌다고 하던데 정말이냐?"

 한선사가 그의 겨드랑이를 부축하니 오선사는 웃을 뿐이었다.

 오(悟)선사는 평소에 현사(玄沙)스님이 설법한 "나로 인해 너에게 절한다*"는 화두를 즐겨 말하였는데 한선사가 이 설법을 듣고 깨친 바 있어 게송을 지어 오선사에게 올렸다.

 

나로 인해 너에게 절한다 함은

물고기의 아가미 새의 부리로다

다시 무어냐고 물으면

흰구름이 만리라 하리라.

 

因我禮你  魚腮鳥觜

更問如何  白雲萬里

 

 얼마 후 그곳을 떠나 이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와 스스로의 가풍을 높이 세우고는 변함없이 오선사에게 안부를 통하여 법을 묻고 답장을 받았다.

 "이 일은 모름지기 힘을 다해 노력하면 오랜 세월이 지나 자연히 영험이 나타난다. 지난번의 '나로 인해 너에게 절한다는 게송은 고금을 통하여 으뜸이랄 수 있다."

 그후로 명성이 사방으로 널리 알려져 큰스님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군수가 만년사율원(萬年律居)을 선원(禪席)으로 바꾸고 한(閑)선사에게 잠시 그곳을 다스리게 하였다. 오거사(烏巨寺) 설당 행(雪堂行)선사는 한선사를 조카 뻘로 보았는데 천태(天台)에 갔다가 한선사가 그에게 법좌에 올라 법문 해주기를 청하자 게송을 하였다.

 

나로 인해 너에게 절한다 함은

천태산 돌 다리

고금에 오가는 사람

몇 사람이나 몸소 밟았던고.

因我得禮你  天台石略彴

今古往來人  幾箇親踏著

 

 한선사는 인품이 장중하여 고암선사의 뒤를 이을 만한 사람이었다. 몇몇 사찰을 옮겨다니다가 운거사(雲居寺) 삼탑암(三塔菴)에서 노년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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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사스님이 하루는 신참승이 와서 절하는 것을 보고 "나 때문에 너에게 절하게 되었구나"하였다. 

 

 

43. 북망산의 노래 / 불혜 법천(佛慧法泉)선사

 

 장산(蔣山)의 불혜(佛慧法泉)선사는 총림에서 천만권(泉萬卷 : 만권의 책을 읽은 법천스님)이라 불리웠다. 그의 '북망행(北邙行)'은 다음과 같다.

 

앞산 뒷산은 높기도 한데

상여수레 삐그득거리며 날마다 지나가네

한 맺힌 슬픈 노래 가득한 골짝

듣는 이 눈물 흘리는 상여소리여!

 

슬픈 노래 한 마디에 천년 이별 새겨지고

효자효손은 부질없이 피눈물만 흘리나

세상에 무슨 물건 변치 않겠는가

큰바다 수미산도 끝내는 마멸하리

 

인생이란 풀잎에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

전에 만난 사람 마침내 이별하고

고락과 슬픔은 잠시도 멈추지 않는데

인생 백년이 번개불처럼 스쳐가네

 

가는 님 멀리멀리 돌아오지 않아

지금 사람은 옛 사람의 마음 모르고

소나무 심고 비석세워 묘 앞에 우뚝하니

죽은 님 길이길이 잊지말자 생각치만

 

넋은 흩어지고 육체는 티끌되어

다섯갈래 길(五惡趣) 아득히 차례로 윤회하며

옛 사람 무덤 위에 오늘 그대를 묻으니

새 무덤 옛 무덤 정한 임자 없으렷다

 

낙양성 안 천만의 사람들이

끝내는 북망산 아래 한 줌의 흙이 되리라

어둡고 미혹하여 돌아올 길 잊었으니

그대 위해 홀로 앉아 길이 슬퍼하노라

 

예전에 곡을 하며 곡하여 죽은 사람 먼길 떠나 보냈는데

이제는 외로운 무덤되어 꽃다운 풀 위에 누웠네

여우는 굴을 뚫어 새끼를 숨겨두고

밭가는 농부는 뼈를 뒤적거리며 구슬을 찾는구나

 

고목은 쓸쓸히 바람 일으키고

이쪽저쪽 무너진 무덤 하늘끝에 즐비하다

한식도 지났으니 그 누가 제사를 모실까

무덤가에 남은 꽃이 외로이 붉구나

 

해와 달의 뜨고 짐이 쏜 살 같아서

부자와 빈자, 잘난 이 못난 이 모두 이같이 되리

어찌해야 영원한 낙원에서 함께 노닐까

겁화(劫火)를 지나도 삶과 죽음이 없는 곳 그 어디에

 

前山後山高峨峨  喪車轔轔日日過

哀歌幽怨滿巖谷  聞者潜悲薤露歌

 

哀歌一聲千載別  孝子順孫徒泣血

世間何物得堅牢  大海須彌竟磨滅

 

人生還如露易晞  從來有會終別離

苦樂哀慼不暫輟  況復百年驚電馳

 

去人悠悠不復至  今人不會古人意

栽松起石駐墓門  欲爲死者長年計

 

魂魄悠揚形化土  五趣茫茫井輪度

今人還葬古人墳  今墳古墳無定主

 

洛陽城裏千萬人  終爲北邙山下塵

沈迷不記歸時路  爲君孤坐長悲辛

 

昔日送人哭長道  今爲孤墳臥芳草

妖孤穿穴藏子孫  耕夫撥骨尋珠寳

 

老木蕭蕭生野風  東西壞塚連晴空

寒食已過誰享祀  塚畔餘花寂寞紅

 

日月相催若流矢  貧富賢愚盡如此

安得同遊長樂鄕  縱經劫火無生死

 

 이 노래는 가사가 슬프고 엄숙하며 사람들을 교화하는 일면이 있다. 포악한 기운으로 욕망과 쾌락에 빠진 세속인들이 이 글을 보면 스스로 느끼고 반성할 것이다.

 

 

44. 서기 정(政)스님의 시

 

 서촉(西蜀) 땅 정서기(政書記)는 백장산에 매우 오래 있으면서 내외 경전에 통달하지 못한 책이 없었다. 시와 가사에 있어서는 아름답고 화려하진 않지만 덕스러운 구절이 많았다. 규(珪)선사와는 일찍이 교류한 터라 한번은 시를 지어 그에게 보냈다.

 

어릴 때 시율은 봄비와 같아

만물을 적셔주어 아름다움 많았고

때때로 다시 한 편 새 뜻이 나오면

비단자락이 베틀을 나오는 듯 하였네

 

문장 알아 애써 다듬으면

가식만 날로 늘어 심장을 덮더니만

미련없이 뒤집어 마음 씻고 큰 도를 도모하여

만법과 짝하지 않는 초연한 몸이 되었네

 

거륜봉(車輪峰) 아래에서 나와 노닐며

하얀 비단자락 가을 강기슭에 씻어

물들이자 찬연히 순색이 나와

자주빛과 함께 하지 않도다.

 

선재동자[妙高], 덕운(德雲)비구 만날 길 없더니

꿈 속에서 누각 문이 열리자

분명하여 심장을 가리운 것 없어

번거롭게 다듬지 않고서도 교묘한 문장을 얻었다네

 

귀양온 시선(詩仙) 이태백도 한 티끌 속에 있고

낱낱 티끌 속에 두보가 있어

6근 6진 18계 12처가 모두 문장이며

8만 4천의 무수한 구절이라

탄환 같이 둥글고 아름다운 구절로

노래 불러도 춤추게 하기에는 부족하네

 

가을 바람이 나무를 맴돌며 창백한 얼굴을 스쳐가니

푸른 동산은 비취색 잃고 민둥산이 되었구나

저멀리 맑은 흥취 쫓아가 나와 헤어지니

쌀쌀맞기가 바람 없어도 수레를 몰 만하네

 

인생백년 돌아오지 못할 나그네를 부르고

천지의 한 객사에서 송별하려 하누나

봄비를 거두어 새 뜻을 적셔 두었다가

뒷날 서로 만나면 그대에게 보여주리라.

 

少年詩律如春雨  點染萬物發佳處

時復一篇出新意  瀾錦輕紗脫機杼

 

自知文意費雕刻  日益巧僞蔽心腑

翻然洗心謀大道  超然不與萬法侶

 

車輪峰下從吾遊  杲杲素練濯秋渚

一染燦然得正色  不爲朱紫所等伍

 

妙高無處見德雲  夢中樓閣啓錀戶

了然心腑不可蔽  無煩彫刻得巧語

 

謫仙人在一塵中  一一塵中有杜甫

根塵界處皆腹藁  八萬四千無數句

意句圓美若彈丸  詠歌不足欲起舞

 

秋風遶樹掃蒼顔  園林失翠作岣嶁

遠追淸與別吾遊  冷然不待風爲御

 

招此百年未歸客  送行天地一逆旅

要收春雨點新意  佗日相逢爲君擧

 

 규선사는 마침내 행각 길을 떠나 불안(佛眼)선사를 뵙고 법을 얻었다. 그후 화주(和州) 포선사(褒禪寺)에 주지 하였는데 절의 동편에 대나무를 심어 그곳에 물러나 살면서 죽암(竹菴)이라 이름하고 시를 지었다.

 

대나무 백여그루 심고

띠를 얽어 두세칸 암자 지으니

겨우 개울 위의 길만 통과하면

집 위의 산꼭대기 활짝 열리네

 

단풍잎은 물따라 흐르다가 멈춰서고

흰구름은 바람따라 오가누나

평생에 오직 이럴 뿐인데

계기 만나는 학인들 드물어라.

 

種竹百餘箇  結茅三兩間

纔通谿上路  不礙屋頭山

 

黃葉水去住  白雲風往還

平生只這是  道者少機關

 

 죽암의 이름은 사규(士珪)인데 시선집에 이 시를 수록하면서 도규(道珪)의 작품이라 수록한 것은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