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애만록 上 1~6.
고애만록
上
1. 견처(見處) / 원통사(圓通寺) 종조암주(宗照庵主)
원통사(圓通寺) 종조(宗照)암주는 목암(木庵)스님이 처음으로 천남(泉南)을 방문하자 그의 암자에 머물게 한 후, 어느 날 예의를 갖추고 물었다.
"어리석은 저에게 스님께서 견처(見處)를 일러주십시오."
목암스님이 앞에 있는 향로를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것이 보이는가?"
"네, 보입니다."
"견처가 어떤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러고서도 또 보인다고 말할텐가?"
이 말에 종조암주는 송구스러워서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그 후로 문을 굳게 닫은 채 장삼이 누더기가 되도록 아무데도 나가지 않았다. 그는 인품이 고고하였으므로 어느 누구도 가까이하거나 멀리하지 못하였다.
2. 산새 울음소리를 듣고 / 자혜 조파(慈慧祖派)선사
자혜 조파(慈慧祖派)선사는 온릉 장씨(溫陵張氏) 자손이다. 개원(開元) 나한사(羅漢寺)에서 삭발하고 문관서(文關西)스님의 법제자인 종대여(宗岱餘)스님을 찾아가니 운문(雲門)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스님이 운문스님을 찾아가 물었다. '무엇이 올바른 법안[正法眼]입니까?' '보(普)!' 또다시 물었다. '무엇이 올바른 법안입니까?' '할(瞎 : 애꾸눈)'
그대는 이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 말에 조파스님은 몸둘 바를 몰랐다. 그 후 골똘히 사색에 잠겨 침식까지 잃었다. 어느 날 밤, 자정이 되도록 앉아 있다가 산새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 이에 동이 트자마자 인가를 받으려고 종대스님을 찾아가 문에 들어서면서 고함을 질렀다.
"스님!"
"어찌 왔는가?"
"동쪽 집의 국자자루는 길고 서쪽 집의 국자자루는 짧습니다."
"간밤에 미쳤는가?"
"스님이 미쳤습니까, 제가 미쳤습니까?"
종대스님이 선상(禪床)에서 내려와 멱살을 움켜잡으며 말하였다.
"무슨 도리를 보았느냐?"
"스님, 존체 만복하시옵소서."
종대스님은 그이 멱살을 놔주며 말하였다.
"지난날 내가 이야기했던 화두를 돌려다오."
이에 조파스님은 여인 절을 올리고 게송을 읊었다.
올바른 법안이 무엇이냐 물으니
'보(普)' '할(瞎)'이라 대답했네
온 누리에는 맑은 바람
한 줄기 시냇물에는 밝은 달이어라.
問正法眼 答曰普瞎
萬里淸風 一溪明月
지금 그의 부도탑[香泥像]은 마을 옆 네 그루의 소나무 숲 사이에 있는데 승려와 속인 모두가 그를 추앙해 오고 있다.
3. 선 공부로 노년을 마무리한 정승 / 장정공 황조순(黃祖舜)
장정공(莊定公) 황조순(黃祖舜)은 노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담박한 생활을 누리면서 선(禪)의 종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전등록」을 보고서 깨달아 게송을 지었다.
6년 동안 마음 쏟아 불경을 읽었지만
책속에서 아리송하던 적이 그 몇 번이었던가
오늘에사 놓아버려 아무 일 없으니
이제껏 그 늙은이 변함없구나.
六載留心讀석書 幾回紙上被模糊
今朝放下都無事 只是從前箇老夫
그의 벼슬은 집정(執政 : 정승)에 이르러 소흥(紹興 : 1131~1162) 연간의 명신이 되었으며, 아울러 불도를 철저히 깨달았으므로 지난날의 배휴(裵休)와 이고(李皐)에게 아름다운 명성을 독차지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4. 옛사람 화두에서 기용(機用)을 환히 보다 / 절옹 불심(浙翁佛心)선사
절옹 불심(浙翁佛心 : 如琰, 1151~1225)선사가 처음 쌍경사(雙徑寺)에 가서 대혜(大慧)스님의 법제자 인(仁)스님을 찾아뵙고, 당시 1천 7백 대중이 의심을 풀었던 요지를 물었는데 '개에겐 불성(佛性)이 없다'는 화두에서 말없이 그 뜻을 이해하였다. 그곳을 떠나 태주(台州) 보은사(報恩寺)를 찾아가 불조(佛照)스님에게 결택을 구하고자 한밤중에 찾아뵈니 불조스님은 세존께서 설법하신 '말채찍 그림자에 관한 화두'를 들려주셨다. 그리고는 "말채찍 그림자를 보고서 달리는 말은 좋은 말이라고 할 수 없다"하니 절옹스님은 이 말끝에 느낀 바 있었다. 아침 일찍이 선실을 들어가니 불조스님이 물었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바로 이럴 때 어떠한 것이 그대[琰上座]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
"부처님의 손으로도 가릴 수 없습니다."
그 후 번양(番陽)에서 증노납(證老衲 : 大洪祖證) 노스님을 시봉하던 중, 옆에 있던 스님이 운문(雲門)스님의 '말에 떨어졌다[話墮]'는 화두를 거론하면서 "그 스님이 말에 떨어진 곳이 어디인가?" 하였는데, 여기서 절옹스님은 불조스님의 옛 기용(機用)을 환히 보게 되었다.
이에 불조스님은 항상 사람들에게, "내가 불자를 잡은 뒤로, 분명하게 나의 기용에 계합(契合)한 사람은 오로지 염상좌 뿐이다." 하며 칭찬하였다.
그 후 불조스님과 불심(佛心)스님은 연달아 능소사(凌霄寺)에 주지하였는데, 지난날 불일(佛日 : 대혜)스님께서 살아계시던 때처럼 법회가 성하였다. 불심스님의 부도탑은 간동(澗東)에 있으며, 그의 행적은 묘지명에 자세히 기재되어 있다.
5. 고상한 기풍, 뛰어난 운치 / 서향 열(瑞香烈)암주
흥화군(興化軍) 서향 열(瑞香烈)암주는 그 고을 사람이며, 법호는 환주수(幻住叟)이다. 어릴 때부터 뛰어났으며, 총림의 많은 스님을 찾아뵙고 등암(等庵)스님에게서 오랫동안 공부하다가 뒤에 동암(東庵 : 佛照德光)스님을 만나 심요(心要)를 깨쳤다. 고향으로 돌아와 호구암(虎丘巖)에서 10여 년간 살면서 「산거소영(山居小詠)」이라는 시를 지었는데, 그 중 한 수는 다음과 같다.
어느 길손 찾아와 비밀한 이치 물으니
깊은 숲속 산새는 마냥 지저귀는구나
매우 분명한 이 뜻에
내 어이 또다시 허튼 말을 지껄이랴.
客來詢秘密 幽鳥語聲喧
此意分明甚 何消我再言
가정(嘉定 : 1208~1224) 연간에 군수가 그를 동탑사(東塔寺)로 초청하였으나 산문을 나가지 않았으며, 서향사(瑞香寺)로 옮겨 살때 동암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서 애도를 표하고 분향한 후 말하였다.
이제껏 풍채 펴고 강 건너에 놀더니만
어느덧 업풍(業風)이 명주고을에 불어왔네
거센 놈도 겨루었던 우직한 그 노인이
독수에 걸려 재앙을 만나다니
맹호가 뛰쳐나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사가 가로막아도 겁내재 않았다네
허공이 맞부딪치니 불꽃이 튀고
총림에는 나쁜 소문만 퍼졌네
죽음 속에서 다시 살아 돌아온다는 건
냉정히 생각하니 참으로 어려운 일
근래에 듣자하니 동암스님 곤두박질쳤다는데
아아, 태평성대 우리 도가 융성할사
향 사뤄 정성을 표하여
죽비 잡고 지도해주신 빚을 갚으렵니다.
向來信釆遊江外 業風吹到明州界
(祝+土)着聱頭老拙庵 驀遭毒手相殃害
猛虎出林不足威 蚖蛇當路未爲怪
虛空激拶火星飛 流布叢林惡聲在
死中得活復歸來 冷地思量眞尀耐
近聞筋斗已倒翻 且喜昇平吾道泰
炷香聊以表殷勤 償却拳頭竹箆債
"대중들이여, 불조(佛照)화상도 이렇게 되지 않았는가. 말해 보아라. 지금 이 일이 설욕이냐, 보은이냐? 반푼어치도 못되는 말이지만 그 누가 알까. 좋아하는 사람과 통하는 길이 있음을."
서향(瑞香)암주는 득도처(得道處)가 분명하고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지켜 전혀 세속 일에 관여하지 않고 물 빛과 숲 속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의 고상한 기풍과 뛰어난 운치를 생각하노라면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이 사라지게 한다.
6. 밀암스님의 개당법회에서 / 철편 윤소(鐵鞭允韶)선사
철편 소(鐵鞭允韶)선사가 밀암(密庵咸傑)스님의 개당법회에서 곧장 앞으로 달려나가 말하였다.
"이곳은 부처를 뽑는 과거장이니 마음을 비워 급제하고 돌아간다. 오늘 서로 만난 이곳에, 자, 무엇이 서로 만난 일인가?"
밀암스님이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자 다시 말하였다.
"하루 온종일 너를 노려보는 놈이 네 머리통을 베어가려는데 어떻게 하겠느냐?"
또다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니, 드디어 좌구(座具)를 집어 던지면서 고함을 질렀다.
"저 원수놈을 만나 죽이지 않고 언제까지 이처럼 기다릴텐가?"
그래도 아무런 기색이 없자 물러서면서 "예, 예, 예." 세 차례 말하고서 다시 말하였다.
"도적놈 우두머리, 원달리마(袁達李磨)를 잡아왔습니다. 명령을 내리십시오."
이때서야 밀암스님은 주먹을 세워 보이면서 "명을 받아 곤두박질이나 치거라"하고는 나가버렸다. 밀암스님은 방장실로 들어가면서 법회를 마치고 대중에게 말하였다.
"아까 왔던 그 놈, 이빨은 칼 숲 같고 입은 피 바가지 같았으며 손에 잡은 한가닥 실오라기는 쇠채찍[鐵鞭] 같았는데 이 늙은 중이 한차례 얻어 맞았노라. 너희는 각별히 조심하여라."
이로부터 철편(鐵鞭)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으며, 6년 동안 소임을 바꾸지 않고 스님을 시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