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애만록 上 24~28.
24. 야반백주(夜半白晝) 화두를 들어 설법하다 / 백졸 선등(百拙善登)선사
구주(衢州) 보은사(報恩寺)의 백졸 등(百拙善登)선사는 오강(烏江) 사람으로 속성은 민씨(閩氏)이며 응암(應庵)스님의 노년 제자이다. 처음 응암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한밤중이 대낮같다'는 화두를 주었는데 이를 들어 학승들에게 설법하였다.
도인들 서로 만나 행각할 것 없으니
온 누리가 한 고을이라
손 가는대로 해나가니
온누리가 털끝 하나에 들어감을 이제야 알았다오.
道人相見莫週遊 大地都盧是一州
信手拈來信手用 始知大地一毫收
또다시 말하였다.
도인들 서로 만나 많은 말을 할 것 없으니
말 한마디로 전쟁도 평정할 수 있는 것을
시비득실 따위를 모두 버리면
무엇이 어떤지를 알 바 아니리
道人相見勿哆哆 一句可以定干戈
得失是非都拈却 不知那事復如何
스님은 보은사에 3년 동안 주지하였다. 그의 성품은 꾸밈이 없었고, 말 또한 곧아서 그에게 '백졸(百拙)'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25. 야운 처남(野雲處南)선사의 대중법문
야운 남(野雲處南)선사는 회계(會稽)사람으로, 안팎이 모두 단정하고 굳건하였다. 처음에는 무용(無用淨全)스님 문하에서 원두(園頭) 일을 보다가 깨닫고 뒷날 주지가 되었다.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찬서리 바람에 낙엽은 지고 기러기 떼 추위에 놀라 높이 나는데 날 낳아주신 부모는 마음 속을 다 꺼내 보인다. 관음보살 끝없이 불러 내모습을 잃었으나 기쁘도다, 여러분이여 천하가 태평하도다."
다시 말하였다.
"백방으로 찾아헤매었건만 영영 만날 수 없더니, 문득 쉬어버리자 어디서나 그를 만나네. 길다란 선상 위에서 죽이거나 밥이거나 배부를 때까지 먹는구나. 내 너에게 묻노니 절 살림인 쌀 한톨이 농부의 손길을 몇 차례나 거쳤겠는가."
아! 양기(楊岐 : 臨濟宗)스님의 도는 대혜(大慧)스님에 이르러 크게 떨치게 되었는데, 그의 말과 기연은 7 · 8월 양자강의 물결같아 어느 누구도 막지 못하였다. 무용(無用)스님은 간절한 법문으로 학인을 대하면서도 사람을 붙잡아두지 못하다가 노년에 이르러서야 야운(野雲)스님을 얻게 되었다. 위와 같은 법문은 참으로 무용스님의 간절한 법어라 하겠으니 누가 우맹(優孟)이며 누가 손숙오(孫叔敖)인지 알 수 없지만, 불일(佛日 : 大慧)스님의 제자로서 스님에게 욕을 끼치지 않았던 자이다.
26. 거미를 노래함 / 순암 정(淳庵淨)선사
순암 정(淳庵淨)선사의 「지주송(蜘蛛頌 : 지주는 거미)」은 다음과 같다.
있는 곳 까마득하나 용처는 가까우니
한 올의 거미줄에 하늘과 땅이 있네
그는 기민한 변화를 자랑하지 않고
중생의 명근(命根)을 끊어주려 하네.
立處孤危用處親 一絲頭上定乾坤
渠儂不是誇機變 要與衆生斷命根
이 게송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읊어졌다. 게다가 스님은 근검절약으로 불필요한 일을 줄여 일하는 자를 괴롭히지 않았고, 효순노부(孝舜老夫)스님처럼 등불 켜고 마당 쓰는 일까지도 몸소 실천하였다.
27. 퇴암 도기(退庵道奇)선사의 대중법문
퇴암 기(退庵道奇)선사가 인 별봉(印別峯)스님을 찾아 경산(徑山)에 갔을 때, 별봉스님은 그가 오는 것을 보자마자 기뻐한 나머지 선상에서 내려와 그를 맞이하고 다시는 대중에게 설법하지 않았다. 퇴암스님은 대중에게 방해가 될까 두려워 그 뒤로는 별봉스님을 찾아가지 않고 금산사(金山寺)에 머물렀다. 한번은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하였다.
"이대로 법회를 해산한다 해도 그것은 평생의 공부를 저버릴 일인데, 거기다 어떻게 감히 앞에 나가 도를 묻겠는가? 나 같은 사람은 빨리 닥쳐오는 죽음, 생사대사 문제에 있어 대법의 전승자가 될 바탕이 못된다. 서로가 빈(賓)이 되고 주(主)가 되며 법(法)이 되고, 인(人)이 된다면 그래도 좀 낫겠다만."
이는 이미 깨달은 자를 위한 말이다.
어떤 이는 총림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공부를 안하는 것은 아니나 깨닫지 못하는데, 그 허물은 어디에 있는가? 이 허물은 신심이 두텁지 못한 데에 있다. 반신반의하고 할듯말듯 주저하여 확고부동한 의지가 없는 데다가 나의 전부를 놔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령 모든 것을 놔버리고 이법(理法)이 끊어진 곳, 정식(情識)이 다한 곳에서 고요한 경계에도 연연하지 않고 시끌대는 경계에도 매이지 않는다 해도 그것은 죽은 물[死水] 속에 빠진 것이다. 이는 분명 죽기만 한고 살아나지 못하는 격인데 이런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명렬하게 앞으로 나아가되 한결같이 밀어부친다면 비로소 도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총림에 오래 머물면서도 깨닫지 못한 이를 위한 말이다.
이와 같이 총림 대중에 들어가 신심이 순수 청정한 이가 이 도리를 듣게 되면 마음이 하얀 비단처럼 깨끗하여 남에게 더럽혀지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밝은 스승을 만나 한조각 성심(誠心)을 내되 남 앞에 나서려 하지 말고 오직 참선과 도학으로 마음자리를 밝혀야 한다. 이에 힘입어 용맹스럽고 확실한 일념으로 생사대사(生死大事)만을 생각하되 24시간 수시로 이와 같이 일로매진하여 망상과 알음알이[知解]를 끊으면 마치 구만리 장천에 구름 한 점 없듯 할 것이니, 어찌 태양이 솟아오르지 않을까 근심하겠는가. 태양이 떠오르기만 하면 밝은 햇살이 어느 곳이나 비춰줄 것이다. 태양이 떠오르는 그 세상이 어떠할까? 이 촌중은 노파심이 간절하여 벽 모퉁이에서 진귤(陳橘)껍질을 집어내어 여러분에게 그 모양을 만들어 보여주노라. 듣지도 못했는가. 수(壽)선사가 운력[普請]을 하던 차에 장작개비 내던지는 것을 보고서 갑자기 도를 깨치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부딪쳐 떨어진 그것은 다른 것 아니라, 가로보나 세로보나 장작개비가 아니다. 산하대지가 온통 그대로 법왕의 몸을 드러내니 이러한 경계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는 물을 마셔보면 뜨겁고 차가움을 스스로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지난날 법안(法眼)화상도 이와 같이 한 차례 틔워줌으로 곧장 도를 알게 되었다.
삼라만상이 마음에 와도
내마음 온전하여 만물이 한가롭다
고금의 저 성곽 안에
도를 얻은 자 산처럼 머무는구나.
物物到心上 全心物自閑
古今城郭裏 得者住如山
가히 진실한 말씀이라 하겠다. 이러한 경계에서는 훌륭함을 찾지 않아도 훌륭함이 저절로 온다. 수선사나 대법안 선사만이 이럴 뿐 아니라, 3세제불과 6대조사, 그리고 천하의 큰스님 모두가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만일 이와 다른 깨달음[證解]이 있다면 그것은 외도(外道)법이지 불법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애태우는 것이 마치 중매장이 같다. 이쪽 집에다 말하고 저쪽 집에다 설득한 뒤 양편의 의사가 맞으면 집에 와서 선을 보게 한다.
"이제는 너희가 알아서 할 일이지 중매장이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당신이 만일 실제로 그 집을 찾아가 보면 차마 이 혼사를 버리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참선하고 도를 닦는 일도 차마 버리고 떠날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야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산에 오르는 것과 같으니 각자들 노력하여라."
아! 대장간 큰 풀무 속에 들어가 큰 망치로 두드려지듯이, 무심코 하나의 기연을 틔워주고 하나의 경계를 보여주는 것이 원래 평범한 일이 아니다. 이러한 보설법어는 마치 밭을 팔겠다는 광고문을 붙여 놓으면 동서남북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드나 한사람씩 흥정하는 것과 같다. 별봉스님께서 30여 년 동안 설법을 하였으나 뛰어난 제자 하나, 퇴암스님을 얻은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일이다.
28. 욕지거리 불사(佛事) / 방광 조(方廣照)선사
남악(南嶽)의 방광 조(方廣照)선사는 순박하고 촌스러워서 욕지거리로 불사(佛事)를 하니, 학인들이 그를 꺼렸는데, 하루는 두 스님이 찾아오자 그들에게 물었다.
"날씨도 차고 이 해도 저물어가는데 그대는 어이하여 이곳을 찾아왔는가?"
그 중 한 스님이 대답하였다.
"한 집에 일이 생기면 백집이 바쁘게 되는 법입니다."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는 자가 누구인고?"
"저와 스님입니다."
이에 조스님이 향대(香臺)를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대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향대입니다."
"나는 오랑캐를 항복시킬 용맹스런 장수인 줄 알았더니 하찮은 졸개로구나!"
그 스님이 악! 하고 할을 하자, 조스님은 그를 때려버렸다. 이어서 두번째 스님에게 물었다.
"날씨도 차고 이 해도 저무는데 그대는 어이하여 이곳을 찾아왔는가?"
"대답할 기운도 없사옵니다."
"듣자하니, 네놈은 대중앞에서 소란만 피우고 절을 나왔다 하던데 정말이냐?"
"스님께서는 언제 그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말해 주겠다."
그 스님이 혓바닥을 쏙 내밀자 조스님 그를 때리고는 혼자서 중얼중얼 욕지거리를 하며 말하였다.
"여기에는 쌀 한 톨도 없고 나물도 없는데, 이렇게 찾아와서 법통을 어지럽히는가?"
그리고 주장자로 그들을 쫓아내버렸다.
조스님은 서촉 사람이며 불조 덕광(佛照德光)스님의 제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스님이라고 일컬어진다. 그의 설법이나 기변은 결코 공수(空叟)스님이나 철우(鐵牛)스님에게 뒤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