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빛마루 2016. 2. 17. 06:10

13. 절조 감(絶照鑑)선사의 상당법문

 

 절조 감(絶照鑑)선사가 절(浙) 땅에서 돌아온 사람이 있어 상당설법을 하였다.

 "한번 헤어진 뒤 얼마나 오랫만인가. 서로 만나보니 옛날 같구나. 눈썹은 여덟 팔자로 나뉘고 코는 길쭉하며 제방 선원의 크고 작은 남비와 짧고 긴 국자로는 조금치도 그대를 속일 수 없도다. 말해 보아라. 진주(鎭州)의 무를 밑없는 바구니에 얼마나 담아 왔는지를!"

 악! 하고 할을 한 뒤, 날씨가 쌀쌀해지거든 찾아오라 하였다.

 상당하여 설법하였다.

 "옛스님이 노주(露柱)와 사귄 것은 몇번째 기틀인가? 남산에서 구름이 이는데 북산에 비가 온다. 금강역사와 토지신이 등을 맞대고 비비니 뼈다귀가 튀어나오는구나. 이는 집안이 가난한 것이야 그래도 괜찮지만 노자돈 없는 것이 사람을 근심케 한다는 말이다. 그대들 모두 하늘을 보고 입을 벌려 숨을 마시는 일이 다 이러한 소식인데 어째서 그것을 알지 못하는가? 만일, 이를 안다면 3세제불이 몸둘 바를 모르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하늘이 입을 벌려 밥을 집어먹으리라."

 이어서 주장자를 내리치고 법좌에서 내려왔다. 큰 스님들의 법문은 이처럼 뛰어난 것이지만 모름지기 언어상(言語相)을 벗어나야만이 비로소 절조 노스님의 활용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14. 석전 법훈(石田法薰)선사의 게송과 염고(拈古)

 

 석전 훈(石田法薰)선사가 처음 담주(潭州)에 왔을 때 석상 뇌(石霜雷)스님의 천화탑(遷化塔 : 부도)을 보고 게송을 지었다.

 

한 생각 자비로운 모습은 원래는 멀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이다지도 어그러졌단 말인가

높은 곳을 낮춰 낮은 곳으로 가려는 간절한 노파심이

스님의 골머리를 밤새도록 앓게 했네.

一念慈容元不隔  何須特地肆乖張

平高就下婆心切  惱得雷公一夜忙

 

 이 게송으로 말미암아 그의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소주(蘇州) 궁융사(穹窿寺)에서 파암(破庵)스님을 뵈었을 때 선실에서 세존의 '염화시중(拈花示衆)'의 화두를 들어 설법하는 말을 듣고 답하였다.

 

달구어진 기왓장이 밑바닥까지 꽁꽁 얼었고

붉은 눈 거북이는 장작불을 쏘아본다.

焦塼打着連底凍  赤眼撞着火柴頭

 

 이에 파암스님이 그를 기특하게 여겼다. 석전스님이 한번은 한 스님이 마조스님께 달마스님이 서쪽에서 온 분명한 뜻을 물은 화두를 염(拈)하였는데 그 운소(雲巢), 치절(癡絶)스님은 무릎을 치며 감탄하였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불심 노스님도 "노승이 그에게 길을 비켜줘야 할 뿐이다"라고 말하였다.

 

 

15. 자기 초상화에 글을 붙이다 / 진정대사 덕영(德英)

 

 진정대사(眞淨大師) 덕영(德英)은 건계(建溪) 양억(樣億)의 5대 외손으로, 성품이 총명하여 이해력이 뛰어났다. 달암(達庵)스님에게 귀의하여 행주좌와하는 중에 깨달은 바 있고서는 곧바로 경산(徑山)으로 올라가 불조(佛照)스님에게 귀의하였는데, 바람따라 날리는 쑥대처럼 자재하게 응수하니 불조스님은 그를 다시 태어난 독종(毒種)이라며 인정하였다. 뒷날 소주(蘇州) 주명사(朱明寺)에서 설법하다가 상주(常州) 정혜사(淨惠寺)에서 입적하였는데 자신의 초상화에 스스로 찬을 붙였다.

 

스스로 찬 하려 하니 찬이 나오지 않고

내 얼굴을 그리려니 그려지지 않네

나의 본래 모습을

어떻게 닮은 꼴로 보여줄 수 있을까

살아 움직이는 것이 본래가 생겨남이 없는데

콧구멍은 여전히 입술 위에 걸려있네.

自贊贊不出自盡

有箇本來相如何呈似人

活潑潑本無生鼻孔依然搭

 

 이 찬은 총림에 전해오고 있으며 치절스님이 그의 어록에 발문(跋文)을 붙여 이미 간행하였다.

 

 

16. 월굴 청(月窟淸)선사의 출가와 수행

 

 월굴 청(月窟淸)선사는 복주 복청(福淸) 사람이다. 조금 장성하여 마을 사람 화장하는 광경을 보고서 "나는 부처가 되어서 뜨거운 불에서도 타지 않을 것이다"하니 부모들은 그 말을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14세에 부모에게 출가를 허락받고 호주(湖州) 하산사(何山寺)를 찾아가니, 복암(復庵)스님은 그가 큰 그릇임을 알고서 머리를 깎아주고 비구계를 받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머물러도 아무런 깨우침이 없자 잠시도 쉬지 않고 정진하던 중 어느 날 밤 승당의 유리등이 빛나는 것을 보고서 철저히 깨달아 게송을 지었다.

 

유리등불이 오르락내리락

한 점 빛을 한없이 발산하네

누군가 이 빛을 안다면

언니는 원래 나의 누이.

琉璃放下又放起  一點光明常不已

若人識得這光明  姐姐元來是阿姉

 

 화장사(華藏寺)의 둔암스님을 찾아갔을 때 마침 개실(開室)법회를 하고 있었다. 기쁘게 앞으로 나아갔다가 다시 발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나는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이니 이 지옥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뒷날 둔암스님과의 문답은 마치 우유와 물이 섞이듯하였다. 가정(嘉定) 연간에 강우헌사(江右憲使) 진귀겸(陳貴謙)이 임여(臨汝) 천령사(天寧寺)로 그를 초청하였고, 하산사(何山寺)에 주지해달라는 청을 받고 가니 그의 명성은 더욱 알려졌다. 그는 평생 동안 기개가 강직하여 구차하게 아첨하는 태도를 싫어하였으며, 사람들은 대놓고 꺾어놓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총림의 기강이 잡혔으니 이는 큰 법을 수호하는 자로서 당연한 일이다.

 

 

17. 청열(淸烈)암주의 입멸

 

 청열(淸烈)암주는 천태(天台) 사람으로 임안(臨安) 여항현(餘杭縣)에 있는 호서산(湖西山) 멸씨암(滅氏庵)에 살았다. 나이가 90세가 넘어 눈이 어두운데도 밤낮으로 마른 나무처럼 꼿꼿이 앉아 좌선하였다. 임종 때는 나물밥을 차려놓고 백여 명을 불러 모아 결별을 하고 함께 산봉우리에 올라가 손을 뻗어 길게 예의를 표한 후 탑 속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하고 게송으로 설법하였다. 

 

이 놈은 무지란 터라

옳다 그르다 하나

주먹을 바로 세우면

부처님도 엿보기 어려웁지.

這漢無知  說是說非

拳頭堅起  佛也難窺

 

 그의 몸에서 스스로 불이 일어나 자신을 불사르자, 이마와 두 팔꿈치, 두 무릎, 이 다섯 곳에서 불꽃이 치솟아 삼매의 불빛이 오색찬란하게 빛났으며 단단한 사리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이 나왔다. 이 이야기는 그 절 주지가 자세히 말해 준 것이다.

 아! 청정한 마음은 항상 불꽃처럼 찬란히 타올라 부숴지지도 뒤섞이지도 않고 두루 법계에 충만한 까닭에 스님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이러한 남다른 유희를 보였으니 이는 평소 수행의 뚜렷한 증험이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라 아마도 제다가(提多迦)와 파수밀(婆須蜜)의 현신이 나타난 게 아닐까?

 

 

18. 눈 내리는 날의 상당법문 / 낙암 원조(諾庵元肇)

 

 낙암 원조(諾庵元肇)선사는 스승의 규범을 지녀 한결같이 도에 정진하였는데, 눈이 내리자 상당설법을 하였다.

 

어젯밤 보현보살 추한 모습 들켰으니

한 조각 차가운 빛 대낮같았네

가련쿠나, 변변찮은 묘용(묘용)은

돌사람의 실소를 자아냈을 뿐

말해 보라. 무엇이 우스운가를

난간에 금까마귀 놓이 날아오르면

그대는 한바탕 헛점을 들키리라.

普賢昨夜呈醜  一片寒光如晝

可憐妙用些兒  引得石人失笑

且道笑箇什麽

金烏飛上欄干

着你一場漏逗

 

 '동짓달 엄동추위 해마다 겪는 일[仲冬嚴寒年年事]'이라는 구절을 가지고 송을 하였다.

 

늙은 농부 애당초 모든 생각 놓았는데

어린 손자 또다시 술상차려 모시네

좋은 일이 오래오래 있을 줄만 알고

늙음이 머리 위로 다가온 줄 깨닫지 못하누나.

野老年來解放懷  兒孫更以酒相陪

只知好景長時在  不覺老從頭上來

 

 이 송은 스승에게 비하여 부끄러움이 없는 글이다. 예전에 낙암스님이 개 엄실(開掩室)스님과 도반이 되어 송원스님에게 공부하였는데 송원스님 또한 따끔한 가르침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오묘한 경지를 모두 얻을 수 있었다. 이는 훌륭한 스승과 벗이란 없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말해 주는 일로써 후학의 법이 되고 남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