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애만록 下 19~24.
19. 세 구절의 게송으로 제자를 가르치다 / 고월 조조(古月祖照)선사
한양군(漢陽軍) 봉서사(鳳棲寺)의 고월 조조(古月祖照)스님은 동천(東川) 광안 조씨(廣安趙氏)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상보산주(祥甫山主)에게 제자의 예를 갖추어 삭발은사로 섬겼다. 민첩하고 빠른 견해로 강원을 돌아다닐 때 가는 곳마다 우뚝 드러났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공부해왔던 것을 버리고 민땅과 절강을 거쳐 긍당(肯堂)스님에게 귀의하여 '개에겐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는 화두를 명확하게 깨달았다. 그 후 파암(破庵)스님의 문하에 들어갔는데 파암스님이 눈을 치뜨고 있는 모습을 보고서 "요사스런 여우 혼령아!"라고 하니 파암스님이 그의 귀뺨을 한 차례 후려치고 말하였다.
"절대로 이런 도리는 아니다."
이에 또다시 "요사스런 여우 혼령아!"라고 응수하니 파암스님이 또 한 차례 뺨을 후려치고 게송으로 설법하였다.
한 차례 뺨다귀에 몇 번이나 아팠는가
머리를 돌려보고 입을 재잘거렸지
설령, 네 혓바닥이 바람처럼 빠르다 해도
선기(禪機)와는 달리 제2 제3에 떨어진다.
一掌幾曾知痛痒 回頭轉腦口喃喃
直饒舌似風雷疾 也落機前第二三
조조스님은 가정(嘉定) 연간에 세상에 나와 당흥(唐興) 성과사(聖果寺)에 주지하다가 후일 봉서사(鳳栖寺)에 머물면서 선실에서 세 구절의 글을 가지고 제자들을 시험하였다.
첫 구절은 '연기서린 달빛 아래 낚시하며[和煙釣月]'라는 것이다.
아득히 연기서린 강물위에 낚싯배 비껴대고
날이 밝든 달이 지든 아랑곳 않은 채로
사씨는 원래 낚시꾼이 아니나
세상 사람들의 그릇된 오해를 어찌 면하랴.
煙水茫茫釣挺橫 日盈月昃未容分
謝郞不是絲綸客 爭免時人錯見聞
두번째 구절은 '물이 끊기자 물레방아 멈추고[截水停輪]'라는 것이다.
바른 눈 활짝 열리면 천지도 비좁고
물레방아 멈춘 곳에 바다파도 메마르니
자연스레 검은 구슬 튀쳐나오고
끝없는 마귀에 간담이 서늘하네.
正眼豁開天地窄 機輪停處海濤乾
等閑拶出驢珠現 無限邪魔心膽寒
세번째 구절은 '나귀 귀에 들어가지 못하니[不入驢耳]'라는 구절이다.
우리집 한 구절이 세 구절로 나뉘어져
말을 보나 소를 보나 그들에게 말해준다
여기에서 더이상 가까운 곳은 없으니
눈으로 들어야만이 비로소 알게 되리라.
儂家一句分三句 見馬逢牛擧似伊
只此更無親切處 眼中聞得始應知
스님이 입적할 당시 사후의 일을 시랑 양회(侍郞 楊恢)에게 부탁하면서 "그대가 아니라면 누가 나의 마음을 알겠는가"하였다.
이에 양회는 안타까워하며 식음을 폐하고 특별히 그의 어록을 쓰고는, 스님의 곧은 기개는 파암스님 못지 않다고 하였다.
20. 한재 임공우(寒齋林公遇)의 임종게
한재 임공우(寒齋 林公遇)는 만년에 세속을 버리고 종문에 들어와 서재 옆 노는 땅에 초암을 짓고 소림사의 성공(誠公)스님을 모셨다. 날씨가 좋을 때면 으레 이 암자에서 지냈는데 그의 두 아들도 그들의 법담을 함께 들었으며, 나 또한 때로는 과장주(果藏主)와 함께 그 암자를 찾아가 슬며시 참여하기도 하였다.
순우(淳佑) 병오년(1246) 9월 그가 숙환으로 자신의 집에서 임종을 맞이할 때 게송을 지었다.
오십팔년 깊이 잠들었더니
기쁘다, 오늘 아침 눈을 떴구나
게슴츠레 흐린 눈 비벼보나
그저 이럴 뿐이네.
五十八年熟睡 且喜今朝瞥地
試將老眼摩挲 只這阿底便是
장횡거(張橫渠)선생도 "공부하는 이가 심식을 길러 맑아지면 자연히 삶과 죽음을 볼 수 있어 가슴 속이 환히 뚫려 아무런 의심이 업게 된다"고 하였는데 한재 그가 이 경지를 얻은 것이다.
21. 용계 문(龍溪聞)선사의 행리
용계 문(龍溪聞)선사가 처음 제방을 행각하다가 남강군에 이르러 운거(雲居)스님을 찾아 뵈려고 산등성이 절반쯤에 올라갔을 때 삿갓이 바람에 날라가 산등성이를 따라내려와 삿갓있는 곳을 찾아갔다가 느낀 바 있었다. 상주(常州) 보안사(保安寺)에 주지로 있었는데, 고고하고 강직한 성품에 청백 검소하였다.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떤 법문으로 학인을 가르치십니까?"
"나무 숲에서 비둘기가 우는구나."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법당 앞에 북이 울렸으니 밥이나 먹고 가거라."
무준(無準)스님은 스님에 대하여, "강경하면서도 정직하고 까다롭지 않으면서도 준엄한 분"이라고 말하였다.
요사이 용계스님의 도는 온 지방에 중히 여겨져 많은 승려가 법당 가득 모여들었는데 가뭄을 만나 여름 해제 전에 떠나가는 승려가 많았다. 이에 용계스님은 말하였다.
"여러분의 주장자가 들썩인다고 말하지 말라. 닷새 후면 나의 주장자도 들썩일 것이다."
그 후 5일이 지나 목욕하고 법당에 올라갔다가 방장실로 돌아가 가부좌로 앉은 채 입적하였다. 다비를 하니 오색 영롱한 사리가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이는 보안사(保安寺)의 노스님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22. 절옹 순(岊翁淳)선사의 법문
절옹 순(岊翁淳)선사는 복주 석절현(石岊縣) 사람이다. 타고난 성품이 남의 착한 일에 칭찬하기를 좋아하였고, 후진에게 힘을 다하여 자리를 잡도록 추천하였으며, 개법(開法)하기 전부터 그의 법어는 총림에 두루 퍼졌다. 경성사(慶成寺) 주지로 있을 때 방장실에 앉아 말하였다.
"이 곳을 열면 저쪽 길이 막힌다. 어째서 그런가. 난치병을 다스리고 죽을 사람을 일어서게 하기 때문이다. 사 도구(謝道舊)가 말하기를 '검지(劍池) 곁 송봉(松峯) 아래, 깎아지른 절벽 위를 몇 번이나 함께 갔던가? 당나귀를 끌고와 말이라고 우겨대는구나'하였다. 악! 이 무슨 이야깃거리냐."
또다시 말하였다.
"2월 초하루 좋은 소식 하나는, 복사꽃은 붉게 타고 오얏꽃은 하얗게 핀 것이라. 검지연못 곁 양대백(楊大伯)이 웃음웃다 허리띠를 잊어버리고 지금까지 찾지 못했네. 악! 무슨 상관이냐?"
또다시 말하였다.
"마른 나무 둥지를 싸늘히 지키고 앉았다가 몸 돌릴 곳이 없게 됨은 대부분 때를 놓쳤기 때문이다. 한 차례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가 지난 뒤에 몸과 마음이 풀리고 상쾌해지면 따뜻한 봄바람이 흠뻑 불어오는 법이다. 참선하는 납자가 방울같은 두 눈으로 하늘 땅을 꾸짖고 신기(神機)를 놀리면 세상의 풍운도 스스로 달라지게 된다. 이에 술잔을 올리고 종이돈을 불사르고 머리를 조아려 풍년을 축하하려 해도 차가운 바람 우수수 불어 나뭇잎 휘날리면 담장 위에 뽕나무 가지는 버들가지를 흔든다. 가장 괴로운 것은 북선(北禪)스님이 농악을 울려 큰 길의 소[露地牛]를 삶는 일이니, 지옥에서 들려오는 덜덜 떠는 소리를 어찌할꼬? 사람들을 부추켜 가죽과 뼈를 챙겨 놓고 여유있는 웃음속에 칼을 감춰 넣는구나. 쯧 쯧! 태평세계에는 창 · 칼을 쓰지 않는 법이니라."
이 글을 읽어보니 마치 엿을 먹은 뒤에는 자연히 나물국 생각이 없어지는 것과 같은 기분이 된다.
아! 고선(枯禪自鏡 : 절옹스님의 스승)스님은 법 전할 곳을 얻었다고 할 만하다. 법유(法乳)는 한 근원이어서 다른 맛이 없음을 분명히 알겠다.
23. 감당키 어려운 주지노릇 / 벽지암주(辟支巖主) 입견(立堅)
벽지암주(辟支巖主) 입견(立堅)은 삼산(三山) 어계(漁溪) 사람이다. 처음에는 쌍공후(雙箜篌)를 켜며 생계를 꾸려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개달은 바 있어 응림산(應林山)으로 들어가 양식을 마련한 후 큰 나무 밑에 살았다. 그의 처자가 뒤쫓아 찾아오자 다급하게 삭발을 하고서 포주(莆州) 낭산사 벽지암에서 숨어 지냈으며, 그 후 탁발승이 되었다. 순우(淳佑 : 1241~1252) 연간 군수 임희일(林希逸)이 귀산(龜山) 진침사(陳沈寺)의 이선도량(二禪道場)으로 그를 초빙하자 어쩔 수 없어 취임하였지만 얼마 후 벽지암을 그리워한 나머지 도반에게 서찰을 보냈다.
"무릇 주지란 대중의 모범이 되어 부처님을 대신하여 법을 펴는 자이다. 그러나 나는 평소 도덕과 언행이 높다는 명예도 없고 인의예법의 근원도 모른다. 풀 위에 앉고 삼베 옷을 입으며 나무열매를 먹고 시냇물을 마시며 사는 것마저도 부끄럽게 생각했던 내가 사람들에게 추대되어 대중 앞에 나섰으니 실로 감당키 어렵다."
이에 옷을 털고 일어나 곧바로 벽지암으로 돌아갔으니 입견스님의 처신은 승려들에게 도움이 없지 않다.
24. 동곡 광(東谷光)선사 영전에 바친 제문 / 동간 탕한(東澗湯漢)
동곡 광(東谷光 : 曹洞宗)선사는 맑은 풍모와 정밀한 식견을 지닌 사람이다. 조 명극(慧祚明極)스님을 찾아뵈었으며 실재 장공(實齋蔣公)과 불법의 희열을 함께 하였는데 장공이 서암(西庵) 게송 3구를 동곡스님에게 보내자 이에 게송으로 답하였다.
서암이 작다고 하지 말아라
전혀 테두리도 없고 밖도 없으니
그대가 직접 와 본다면
그때는 낱낱이 알게 되리라.
莫道西庵小 了無邊與表
還他親到來 一一方分暁
서암이 적막하다 하지 말아라
무쇠소의 울부짖는 소리 진동을 하고
노주와 등롱이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거린다.
莫道西庵靜 鐵牛吼聲震
露柱與燈籠 點頭相共應
서암이 곤궁하다 하지 말아라
허공을 삼키고 다시 허공을 토해낸다
금속여래(金粟如來 : 유마거사의 전신)를 만나니
섣달에도 훈훈한 봄바람 부네.
莫道西庵窮 呑空復吐空
相逢金粟老 臈月鼓春風
영은사의 주지를 지내던 중 뜻하지 않게 입적하였다. 이에 동간탕한(東澗湯漢)이 제문을 지어 스님의 영전에 올렸다.
"동곡스님 그 자태 학 같은데 냉천(冷泉)에서 주지 한 지 얼마되지 않아 병세를 보이더니 급작스런 죽음이 웬말입니까. 내 비록 스님을 안 지 얼마 안되지만, 스님은 입을 열면 진실을 토로하고 정성스레 안부를 물었습니다. 발길은 뜸했어도 마음만은 가까웠는데 뜻하지 않게 보내온 그 서찰은 옛 명필의 필적이었습니다. 이제 떠난다는 이별의 말씀을 넋 잃고 보는데, 한점 한점을 자세히 살펴보니 힘차고 빼어난 필치였습니다. 도량을 헤아릴 수 없는 분이라서 삶과 죽음이 한결같겠지만 우리 범부의 마음으로야 어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강호에 찬 눈이 가득한데 여윈 말을 달릴 길 없어, 한 묶음 향을 들고 선실에 찾아가 조의를 표합니다."
스님께서 도를 강론하고 서로 왕래하던 인물은 모두 벼슬 높은 사람들이었으니 이를 두소 '널리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