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2)
서(2)
온 서중(無慍恕中)스님은 호구(虎丘)스님의 8대손으로서 큰 도량에 앉아 법을 설하고 중생을 제도하여, 승속 모두에게 귀의할 바를 제시해 주었다. 그의 「이회어(二會語)」는 무상거사 송렴(無相居士 宋濂 : 明代 學者)이 서문을 쓴 바 있지만 「산암잡록(山艤雜錄)」에 대해서는 서문이 없었는데 스님의 큰제자 쌍림사(雙林寺) 주지 현극 정(玄極頂)선사와 전 남명사 주지 운중 선(萊中瑄)스님이 함께 나를 찾아와 서문을 청하였다. 나는 한두 차례 훑어본 후 현극스님과 운중스님에게 말하였다.
“지난 날 「이회어(二會語)」를 읽어보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천갈래 강물이 한 근원에서 흐르는 듯 세찬 문장력을 구사했는지, 어쩌면 그렇게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번개처럼 번뜩이는 필치를 휘둘렀는지, 어쩌면 그렇게도 다듬은 흔적을 찾을 수 없이 막힘없고 원만하게 써 내려갔는지, 어쩌면 그렇게도 가지와 덩쿨을 잘라버려 쓸모없는 말이 없으면서도 구별[町疃 : 밭두덕]을 초월하여 정식(情識)의 경계에 떨어지지 않았는지! 그것은 아마도 참다운 불법에서 흘러나온 문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쪽 저쪽에서 주워 모아 문장을 구사하는 자들과 비교해 보면 어찌 구만리 차이 뿐이겠는가. 그의 말을 통해 그의 깊이를 살펴보면 그는 부처와 보살의 경지에 이른 분이시다. 그러나 후인을 격려하고자 간간이 제창하신 법문은 불법의 요체를 밝히고 자신의 큰일을 끝마치는 것으로 목적을 삼으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널리 미쳐줄 수 있는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이 책을 살펴보니, 위로는 조정에서부터 마을과 시장거리 및 아래로는 산림속에 이르기까지 인물, 행적, 사실, 문장 등을 선하다고 써야 할 곳과 그렇지 못한 곳, 옳다고 써야 할 곳과 그렇지 못한 곳, 마땅히 이래야 할 곳과 그래서는 안될 곳, 우수하다고 써야 할 곳과 그렇지 못한 곳을 빠짐없이 써놓고 있다. 이로써 선을 권장하기도 하고 악을 징계하기도 하니, 유학자 · 불교도 · 도교인 · 관리 · 은거한 선비 · 늙은이 · 어린이 · 부귀한 자 · 비천한 자 · 상인 · 예술가 · 백정 · 농사꾼,
그리고 나아가서는 부녀자와 가마꾼 노비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유익한 책이 되었다.
자비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면 한 치의 땅도 덮어주지 않는 곳이 없고, 불법의 비가 줄기차게 내리면 한 포기 풀잎까지도 적셔주지 않는곳이 없고 해와 달이 동쪽에서 솟아 서쪽으로 기울 때 어두운 거리를 비춰주지 않는 곳이 없으며, 위로는 하늘이 덮어주고 아래로는 땅이 실어주어 모든 생명을 붙잡아 주지 않는 게 없다. 이 책을 지으신 마음도 이와 같아서 대자대비로 일체중생을 가엾게 여기사 많은 방편으로 교묘히 인도하여 삿됨과 망녕됨을 버리고 참다운 지혜에 어둡지 않도록 하니, 차이가 없는 평등이란 이런 것이다. 부처님 같은 스님의 자비가 여기에 있기에 참으로 부처와 보살의 지위에 이른 분이라 한 것이다.
이 책을 한 번 보고서 훌쩍 돈오(頓悟)한다면, 선을 권하고 악을 징계하지 않는 데에서 비롯하여 무엇이든 권하고 징계하는 데에 이르게 되고, 권하고 징계하지 않는 것이 없는 데에서 다시 권하니 징계하니할 것도 없어진다. 그리하여 바른 길로 말미암아 깨달음의 경지로 들어감으로써 굳어진 습기(習氣)에 부림을 당하지 않고 업식(業識)에 매이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스님께서 이 책을 편찬하신 깊은 마음을 체득하는 것이며, 현극스님과 운중스님이 이를 서둘러 간행하고 이를 유포하는 그 마음도 스님의 같은 마음이다.
아! 그저 보통 붓 나가는대로 기록하여 부질없이 견문만을 넓히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지껄여대는 따위의 책들과 이를 견주어 볼 수 있겠는가?"
나는 이 말로서 서문을 가름하는 바이다.
홍무(洪武) 25년(1392) 겨울 10월 24일 무문거사 미산(無聞居君 眉山) 소백형(蘇伯衡)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