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 下 33~39.
33. 오로지 하는 일은 도적질
복건(福建)에 한 관리의 아들이 있었는데 오로지 하는 일이 도적질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심하게 꾸짖었으나 고치지 못하여 그 이유를 조용히 물어보니, "어찌 도적질을 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다만 밤마다 한 남자가 찾아와 끌고 가기에 마지 못하여 그를 따라 도적질을 합니다”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만일 오늘밤에 또다시 찾아오거든 알려달라고 당부한 후 활과 화살을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 이윽고 밤이 이슥하자 과연 문밖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아들이 그를 가리키며 알리자 그의 아버지도 과연 그 사람을 보고서 활을 당겨 쏘았는데, 도리어 아들의 가슴에 꽂혀 즉사하였다.
34. 썩지 않은 시체
지순(至順) 경오(1330)년, 절서(浙西) 지방에 매년 흉년이 들어서 항주 고을에 굶어 죽은 자의 시체더미가 서로 뒤엉키자, 관리들은 마을의 우두머리에게 인부를 부려 육화탑(六和塔) 뒷산에 큰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매장하도록 하였다. 그 속에 한 노파의 시신이 있었는데 십여일이 지났는데도 썩지 않고 매일 여러 시신 위로 올라와 있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 나머지 그의 몸을 뒤져보니 품 속의 작은 주머니 속에 염주와 세 폭의 아미타불도가 들어 있었다. 이 일을 관리에게 알리고 널을 구입하여 시신을 안치하고 화장을 하자, 연기와 불꽃 속에 불보살의 모습이 찬란하게 현신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신심을 내어 염불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35. 전생 일을 깡그리 잊어버리다 / 말산(末山)스님과 서응(瑞應)스님
건령부(建寧府)에 한 승려가 있었는데 그의 법명은 말산(末山)이다. 후일 그의 일생을 점친 한 행의 시를 살펴보니 '한 그루의 나무를 잿마루 위에 옮겨심는다[一木移來嶺上安]'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는 조물주가 그의 이름을 미리 정해 놓은 것이다.*
그는 좋은 인연 만들기를 즐겨하여 길을 닦고 교량을 놓아주는 등 수없이 많은 선행을 하였는데 그가 죽은 후 그 고을 추씨(鄒氏)의 꿈에 현몽하였고 태어날 때도 그의 친구가 같은 꿈을 꾸었다. 그러나 자라나면서 그는 전신이 승려였음을 스스로 알면서도 승려들과 사귀기를 싫어하고 목석처럼 어리석고 멍청했다.
한편 항주 천목산(天目山)의 의 단애(義斷崖)스님은 고봉(高峰)스님을 뵙고 깨달아 그에게 귀의한 자가 매우 많았다. 그가 죽어서는 오흥(吳興)의 가난한 집안에 현몽하여 다시 태어났으며 후일 승려가 되었는데 그의 법명은 서응(瑞應), 자는 보담(寶曇)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장성할 때까지 사람들의 예배와 공양을 받아보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내가 천계사(天界寺)에 있을 무렵 보담스님도 그곳에 있었는데,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며 그가 하는 일을 살펴보니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변변찮았고 때론 자신의 내력을 묻는 이가 있으면 오직 부끄러워하였다.
이 두 사람의 전신은 모두가 비범한 자들이었는데 어찌하여 전생에 익혔던 바를 이토록 깡그리 잊어버릴 수 있을까? 옛사람의 말에 의하면, 성문도 오히려 모태에서 나올 때 깜깜해지고 보살도 생을 바꾸면서 혼미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수행인이 어찌 삼가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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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목(一木)'이란 끝 말(末 : 一+木)자를 의미하며 '영상(嶺上)'이란 산(山)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를 합하여 '말산(末山)'이라는 이름으로 본 것이다.
36. 8식 가운데 남아있는 무명의 뿌리
강서의 절학 성(絶學誠)스님은 산사에 살며 세상에 나오지 않았는데 그 회하의 일곱 제자는 참선을 함께 하기로 맹세를 하였다. 그 중에 가장 어리면서도 경지가 탁월한 사람이 있었다. 성스님이 그를 시험해 보기위하여 삼관(三關)화두를 들어보이자 그는 마치 북을 치면 소리가 울리듯 명확하고 신속하게 대답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요절하여 산사 아래 민가에서 다시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에게 모두 현몽을 했었다. 5세가 되어 글을 읽어보라 하니, 낭랑하게 소리내서 읽으며 스승을 번거롭게 하는 일이 없었고 글의 뜻도 잘 분석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아버지가 그를 데리고 산사를 찾아 성스님을 친견하자 성스님은 그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전생에 나에게 답한 세 마디를 기억할 수 있느냐?”
"한번 말씀해 보십시오.”
성스님이 그 말을 꺼내자 머리를 끄덕이며 자기가 한 말이라고 수긍하였다. 성스님은 그의 부친에게 이 아이를 잘 보살펴 기르도록 부탁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다른 사찰의 승려가 그의 집에 많은 재물을 주고 그를 제자로 삼아 어산범패(魚山梵唄)를 가르쳤다. 그 뒤로 시주 집의 청을 받고 범패를 하며 많은 보시를 얻게 되자 교만하고 사치하는 마음이 동하여 세속의 비행을 자행하기에 이르렀다.
성스님은 이 일로 세 가지 대원(大願)을 세워놓고 학인을 채찍질하였다. 대체로 참선하는 사람들이 고요한 정(定) 가운데 어떤 환희를 얻게되면 잡된 시달림이 잠시 사라지고 밝은 지혜가 조금 나타나게 되지만 그것만으로 다 됐다고 할 수 없다. 무엇 때문일까? 팔식(八識) 가운데 아직도 무명(無明)의 뿌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바위 밑에 깔린 풀과 같으니, 바위를 들춰내면 깔렸던 풀이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후세 학인들은 이 점을 미리 경계해야 한다.
37. 불법에 조예 깊은 사대부 / 왕문헌공(王文獻公)
전조(前朝 : 元) 천력(天曆) 원년(1328) 천하에서 글씨 잘 쓰는 승려와 유생을 불러들여 항주 정자사(淨慈寺)에 모두 모아놓고 금가루로 대장경을 쓰게 하였는데, 왕문헌공(王文獻公)도 부름을 받고 참여하였다. 그는 반드시 대중 승려와 함께 식사를 하였으며 만일 따로 음식을 차려주면 불쾌히 여겼고, 더 나아가서는 팔꿈치를 끌고 욕해도 먹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지금도 그가 어느 스님을 위해 절벽 위의 난초를 그린 그림에 쓴 시가 생각난다.
간지러운 봄바람 어디엔들 불지 않으랴만
가파른 절벽 위에 몸을 맡김은 무엇을 위함이뇨
그를 따라 스스로 전도망상 피웠으니
절벽에서 손 놓을 때를 보아야 하리.
嫋嫋春風一樣吹 託身高處擬何爲
從渠自作顚倒想 要見懸崖撒手時
소동파의 영정에 쓴 글[題]은 다음과 같다.
오조스님은 세속 바깥의 사람이라
사바인연 끊은 지 이미 오래 전인데
텅 빈 솜씨로 그 아득한 모습 그려낼 자 누구기에
후세에 몸 밖의 몸을 찾으려 하오.
五祖禪師世外人 娑婆久矣斷生因
誰將描邈虛空手 去覓他年身外身
황산곡(黃山谷)의 영정에 쓴 글은 다음과 같다.
그 당시 회당 노스님 비웃더니
만나자마자 계수나무 꽃향기를 이야기했네
그림을 펼쳐보니 옛모습 그대론데
어찌 일찍이 콧구멍이 크고 작고 하였으리오.
笑殺當年老晦堂 相逢剛道桂花香
披圖面目渾依舊 鼻孔何曾有短長
그는 한 시대의 큰 유학자였지만 불법에 조예가 깊었다. 그래서 문장으로 표현하려고 마음먹지 않아도 저절로 옛스님들이 제창한 법어와 일치된 것이니 우러러볼 만한 인물이다.
38. 대원경으로 서로를 비춰보다 / 고정 조명(古鼎祖銘)스님과 구양규재(歐陽圭齋)
고정(古鼎祖銘)스님이 항주 중축사(中竺寺)의 주지로 있을 때였다. 구양규재(歐陽圭齋)는 복건성 안렴사(按廉使)로서 임기가 만료되어 서울로 가는 길에 항주에 들러 고정스님을 찾아왔다. 정분어린 법담을 주고 받으며 열흘이 넘도록 머물다가 떠날 때 고정스님은 서호(西湖)까지 나가 송별하니 규재가 말하였다.
"이번에 헤어지면 다시는 만날 기약이 없겠습니다.”
"대원경(大圓鏡) 가운데서는 그대와 한 번도 이별한 일이 없습니다.”
이 말에 규재는 기뻐하였다. 그 후 얼마되지 않아 고정스님이 경산사로 자리를 옮기자 규재가 게를 지어 보냈다.
스님만이 용무늬 솥을 들어 올리고
하늘의 제일 관문에 눌러 앉으셨으니
서호에서 헤어질 때 들려주던 대원경으로
희끗한 나의 모습을 비춰보고 계시리라.
上人方擧龍文鼎 坐斷凌霄第一關
湖上別來圓鏡語 想應照我髩毛斑
39. 죽천(竹泉)스님의 대보름 상당법문
영은사의 죽천(竹泉)스님은 인품이 꾸밈새가 없고 깨침이 온당했으며 법어가 정밀하였다. 정월 대보름에 상당법문을 하였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
눈발이 멈추면 맑은 봄을 보리로다
얼마나 많은 절에서 천 등에 불이 켜지나
하늘에는 둥실한 대보름달
고요한 밤 깨는 범종소리
마을에서 법석이는 풍류소리
이 모두가 원통의 경지인데
굳이 따로 나루터를 물을 건가.
今朝上元節 雪霄見晴春
幾刹燈千點 長空月一輪
鼓鐘喧靜夜 歌管鬧比隣
總是圓通境 何須別問津
입적한 삼감사(森監寺)스님의 다비를 하며 말하였다.
"삼라만상이란 한 법에서 찍혀나온 것이다. 이제 너에게 금강권과 율극봉을 들어 보여 주리니, 무엇을 한 법이라 하는가? 하나는 둘로 말미암아 있는 것인데 하나, 그것마저 지킬 수 없구나. 불꽃 속에 새까만 거북이가 사자후를 하도다.”
그의 어록 가운데 이 두 단락이 빠졌기에 기록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