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고경총서/원오심요圜悟心要

원오심요 下 65. 양무구거사(楊無咎居士)에게 드리는 글

쪽빛마루 2016. 3. 18. 18:12

65. 양무구거사(楊無咎居士)에게 드리는 글

 

 불조가 세상에 나오시어 대비원력으로 무연자비(無緣慈悲)를 일으켜 오직 영리하고 지혜로운 최상근기들을 이끌어 주시는 데 힘쓰셨습니다. 그들은 큰 기량(器量)을 갖추어 가장 오묘하고 뛰어난 기틀을 짊어질 만한 대해탈인으로서, 남들은 하지 못할 일을 해내어 무리중에 뛰어났으니, 손가락 튕기는 사이에 무생인(無生忍)을 증득하며 선 자리에서 과해(果海)를 뛰어넘었습니다. 눈으로는 동서를 보나 마음은 남북에 있어, 마치 날쌘 매가 구름을 타고 잽싸게 날아오르듯 하였습니다. 바람을 휘몰고 햇빛속에 번뜩이며 달과 해의 빛을 잃게하며 영특하고 신령하게 번쩍들어 열어 젖힙니다. 이는 당초에 마지막 한 도리를 들어보인 것이니, 번개치고 유성이 나르듯하여 머뭇거림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온통 그대로 속박을 벗고 당장에 한 털끝 만큼도 지적해 낼 필요가 없어짐을 기다렸다가 열어 젖히고 철두철미하게 깨치면 곧 두 손으로 부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탕과 취향이 마치 사나운 용이 물을 만난 듯, 날쌘 호랑이가 산을 의지한 듯하여, 구름이 피어오르고 바람이 휘몰아치듯 사람의 간담을 쏟아내고 사람의 심목(心目)을 비춰보아야만 본분의 씨앗이라 할 만합니다.

 그 때문에 유마대사는 마왕의 큰 집회에서 수능엄정(首楞嚴定)을 나타내고, 마군의 세계에서 저 문수 · 보현 · 금색 두타 등과 더불어 물들지 않는 보살의 짝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무리 가운데서 빼어나, 하루아침에 꽃을 들 때 가만히 전수받았으니 어찌 보통 일이라 하겠습니까. 달마가 서쪽에서 오자 신광(神光)이 홀연히 깨닫는 데 이르러서는 이로부터 기량을 잴 수 없는 큰 인물들이 나와 특출하고 정밀하게 통달하였습니다. 눈을 깜짝이고 눈썹을 드날리는 동작과 말하고 침묵함, 펴고 말아들임과 놓고 잡음, 주고 빼앗는 등의 작용을 나타내는 가운데 긴 시간 동안의 자기 생각을 등한히 노출하지 않으면서 우뚝히 움쩍하지도 않았을 뿐입니다. 도대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으나 막상 부딪치면 무리를 놀라게 하고 대중을 동요케 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렇긴 해도 그 지극한 도리를 따져 보면 애초에 이런 일들이란 없고, 당장에 현묘한 도리를 밝혀서 일체가 무심일 뿐입니다.

 만일 배움과 알음알이를 버리고 놓아버려 한가할 수 있다면 성스러운 진리라도 굳이 할 것이 없습니다. 또한 위로부터 내려오는 강종(綱宗)에 자연히 계합하여, 바로 이 선불장(選佛場)에 들어가서, 아직 제도받지 못한 중생을 제도하고 아직 교화하지 못한 사람을 교화하니, 인간 세상에 재림하여 어느 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배움이 끊긴 사람으로서 격식을 넘어선 진정한 도인이 아니겠습니까.

 

 소사관찰(紹使觀察)인 양무구(楊無咎) 공은 식견이 높고 박학다재한 분이다. 더욱이 조사의 도에 조예가 깊어 지혜와 근기가 밝고 민첩하므로 거량하기 전에 먼저 알고 말하지 않아도 먼저 꿰뚫는다. 도읍 아래 있을 때 매일 만나뵐 수 있었는데 이제 황제의 명을 따르는 중 선무사(宣撫司)를 시켜 금관(錦官)에서 거듭 만나게 되었다. 특별히 도를 굽히고 내려오셔서 다시 언어문자를 찾기에 나는 이 변변찮은 글을 꺼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