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
본서(本書)는 천동각화상송고보은노인시중(天童覺和尙頌古報恩老人示衆) 이라고도 부르며, 약칭하여 종용록(從容錄)이라고도 한다.
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본서는 천동각화상(天童覺和尙)이라는 분이 고칙을 찬송(贊頌)한 것과 그 송고(頌古)에 대하여 만송노인(萬松老人) 또는 보은노인(報恩老人)이 종용암(從容庵) 이란 곳에서 평창(評唱) 혹은 시중(示衆)한 것을 합편(合編)한 것이다.
그러면 천동각화상이란 누구인가? 그는 청원 행사(靑原行思)의 14세 법손인 단하 자순(丹霞子淳)선사의 법사로서 송(宋) 철종(哲宗) 6년(1091)에 탄생하여 11세에 출가, 득법하고, 34세에 천동산(天童山) 경덕사(景德寺)에 주석하신 후 남송(南宋) 고종(高宗) 소흥(紹興) 27년(1157) 67세로 입적하시기까지 그곳에만 머무셨다. 그의 법명은 정각(正覺)이요, 천동(天童)은 주석한 곳에 따라 호가 된 것이고, 고종이 굉지선사(宏智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천동산은 중국 명주(明州)라는 곳에 있는데, 원래는 태백산(太白山)이었던 것이 언제인가 의흥(義興)이라는 도인이 철저히 수도하고 있노라니 천상동다(天上童子)가 평생 동안 공양을 갖다 바쳤다고 한 데서 유래한 명칭이라고 한다.
이러한 연고가 있는 선사(禪寺)의 주지로 발탁되신 정각선사(正覺禪師)는 산문(山門)을 대흥(大興)하는 한편 선문(禪門)의 시폐(時蔽)에 대항하여 묵조선(默照禪)에 힘썼다. 이것이 저 유명한 대혜보각선사서장(大慧普覺禪師書狀)에서 누누이 거론, 비판하는 바 되었고, 내외지식(內外知識)에 능한 재필(才筆)로 저술한 「굉지선사광어(宏智禪師廣語)」 9권과 본서 즉 송고백칙(頌古百則)이 가장 유명하다.
송고(頌古)란 고칙(古則)을 송했다는 뜻이다. 선문(禪門) 전래의 일사안(一事案 : 公案)을 1칙이라 하며, 이를 거량(擧揚)하는 방법으로서 시중(示衆) · 광어(廣語) · 대(代) · 별(別) · 징(徵) · 송(頌) 등의 형식이 있는데, 송이란 시구로 표현 · 설명한 것이다.
이렇게 찬술된 천동(天童)의 송고에다 평창(評唱)을 가(加)한 만송노인 또는 보은노인은 누구인가? 남송이 효종(孝宗) 건도(乾道) 2년(1166)에 탄생하여 이종(理宗)의 순우(淳祐) 6년(1246)에 81세로 입적하신 행수선사(行秀禪師)이다.
그분 또한 조동종 계통으로서 동산(洞山)의 13세 법손인 설암 만(雪岩滿)의 법을 이었고, 그 뒤 남송의 영종(寧宗) 가정(嘉定) 16년(1223)에 순천부(順天府) 보은홍제사(報恩洪濟寺 : 일명 報恩寺)에 들어가 이 평창(評唱)을 저술하여, 보은노인이라 불리게 되었고, 또 나중에는 보은사(報恩寺) 산내(山內)에다 만송암(萬松庵)이란 암자를 짓고 거기에 머물렀기 때문에 만송노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만년에는 종용암(從容庵)이라는 암자를 다시 짓고 평창집(評唱集)을 끝냈기 때문에 종용록(從容錄)이라 부른다.
그러면 평(評)과 창(唱)이란 무엇인가? 천동(天童)이 고칙(古則 : 話頭) 하나를 들고는 그에 대한 송을 썼는데 만송은 본칙(本則) 앞에 시중(示衆), 또는 수시(垂示)라는 것을 썼고, 본칙(本則)과 송 끝에는 각기 착어(着語)라는 것을 붙이니, 이것이 평창(評唱)이요, 본칙과 송의 구간(句間)에 단평(短評)을 각주(脚註)로 넣으니 이것 또한 평(評)이다.
그러나 만송(萬松)의 평창(評唱)은 그 시자(侍者)인 이지(離知)라는 분에 의해 수록되었으므로 그 서술에 있어 "시중운(示衆云)" 또는 "사왈(師曰)"하여 녹취(錄取)했음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이루어진 「종용록(從容錄)」 6권은 조동종계의 송고서(頌古書)로서 임제종계의 「벽암록(碧巖錄)」 10권과 쌍벽을 이루는 선적(禪籍)이다. 여기에 임천(林泉)의 「공곡집(空谷集)」과 「허당집(虛堂集)」을 합하여 평창(評唱) 4가(四家)라 하여 유명하나, 우아한 문장, 예리한 기지(機智)에 있어서는 단연 종용록(從容錄)이 으뜸인 것으로 유포되고 있다.